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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를 읽는 법
강철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contsmark0|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와 간섭을 받는 시대에 들어갔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21세기 한국경제를 선진화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다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세계 10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것처럼 선전한 한국경제가 멕시코나 태국, 인도네시아와 같이 imf의 구제를 받게 된 것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렇게 된 것인가?실은 그 답은 비교적 명백하다. 이번의 위기는 겉으로 나타난 것은 금융·외환위기이다. 현재의 위기는 한국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누적과 재벌의 방만한 차입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융기관의 부실과 재벌의 방만한 차입이 없었으면 이러한 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과 종금사들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 규모가 계속 증가하여 총여신에 대하여 최소 7%인 32조원(정부발표)에서 최고는 총여신의 1/3 이상인 1백20조원(외국 전문기관)이나 누적되었다. 이같은 부실채권을 가진 금융기관에 대하여 믿고 돈을 빌려주려는 해외은행이나 외국 투자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번 한국의 외환위기는 한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감에서 빚어진 것이다. 한국에 외환을 빌려주고 있는 외국 금융기관과 투자가들이 한국금융기관을 불신하고 차입과 투자를 중단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1차적 책임은 금융기관이며 그 부실이 원인이다.그런데 금융기관에 쌓여온 부실채권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재벌들이다. 한보 5조원, 기아 10조원, 한라 6조원 등 재벌계 기업들이 빌려갔으나 부실경영으로 갚지 못하는 부실채권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재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방만한 확장경영과 불투명한 가족경영 방식이 문제였던 것이다.여기에 정부의 정책잘못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관치금융의 책임이다. 재벌에게 그 많은 자금이 공여되게 한 것은 재벌의 로비에 약한 정부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imf가 한국에 돈을 빌려주면서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였듯이 금융기관이 자금을 빌려줄 때 재벌기업에 대하여 엄격한 대출조건을 내세웠다면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금융의 자율성이 없는 가운데 정부나 권력이 뒤에서 큰 대출을 종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른바 정경유착이다. 다른 하나는 연초부터 계속된 부도사태에서, 특히 기아처리에서 전혀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97년 4월에 도입된 부도방지유예협약은 사태를 오히려 그르치는데 한몫을 하였다.한국의 금융·외환위기에 대하여 런던 이코노미스트는 허약한 은행, 부채기업, 오만한 관료, 위협적인 정치인 등의 합작품이라고 적고 있다. imf도 한국의 위기는 금융의 부실채권이 문제이므로 이는 재벌의 방만한 차입위주의 투자와 정부의 관치금융과 관리능력 부재가 원인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한국경제의 위기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듯이 정부-재벌주도 경제성장 방식에 그 뿌리가 있다. 이것은 요즈음 박정희 향수가 나오고도 있으나 현재 위기는 박정희 모델의 오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부가 계획을 세워 기업과 산업에 지원을 하고 지원을 받은 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정부는 지원했기 때문에 간섭을 하는 모델이다. 그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자율성이 전혀 없이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하부기관이 되었다. 더구나 정경유착이 고착화하여 정치발전이 저지되었다.이러한 성장방식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첫째 그 과정에서 재벌이 형성되고 재벌은 남의 돈 즉 은행차입과 정부의 지원으로 방만하게 저부가가치 산업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금융기관은 사업으로서의 은행업무를 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시를 따를 뿐이었다. 둘째 과도한 차입의 재벌들은 금년 들어 연쇄적으로 부도가 발생하였으나 전혀 경영의 투명성을 위한 개혁이나 선단식 경영을 포기하지 않아 재벌내 우량기업까지 함께 망하는 우를 범하였다. 셋째 이러한 재벌-금융의 위기에 대하여 정부의 정책은 이를 경제원리에 따라 냉혹하게 처리하는 대신 부도유예협약이라는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 지원과 간섭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썩은 가지를 싱싱한 가지에 억지로 동여매는 잘못을 저질렀다. 넷째 정경유착으로 지리멸렬한 정치권은 경제위기를 경제문제로 풀려하지 않고 득표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이러한 국내 사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외국의 금융기관과 외국 투자가들이 자금공여를 중단하고 증시를 이탈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도 한국의 재계와 정치권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관련이 적은 금융실명제나 국민의 과소비를 부각시키고 오히려 긴급명령을 통해 부실채권의 원흉인 재벌의 차입금 상환기간을 연장하라는 요구를 합창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재벌주도 경제의 파탄을 정부-재벌주도의 과거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발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해법은 네 가지이다. 첫째 가장 시급한 것으로 금융·외환시장을 안정시켜 외국투자가가 다시 들어오고 해외차입이 원활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구조조정을 제대로 진행할 때 해외에 믿음을 주어 가능해진다. 둘째 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 자율화의 조속실시, 셋째 재벌의 선단식 경영해체와 투명경영 그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 넷째 정부주도 경제운영의 틀을 바꾸어 시장원리가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위기가 국제분업 속에서 보면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보다 한발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이나 동남아 산업이 중국의 추격으로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제수지 적자 누적을 가져왔고 오늘의 동남아 금융·외환위기를 몰고 온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이러한 위기의 본질과 해결방안 등에 대하여 이미 국내나 해외의 학자들이 경고를 아니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세 권의 책이 참고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첫 번째 책은 ‘밖에서 본 한국경제’로 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지난 2년간 해외학자들이 한국경제에 관하여 쓴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보고 있는데 공통점은 시장경제원리 창달, 투명경영 등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논문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의 몰락을 예고한 크르그맨의 경고나 런던 이코노미스트지의 한국재벌의 문제점 등을 지적한 부분이다. 금융개혁에 관한 마커스 놀란의 방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두 번째 책은 ‘한국경제, 위기인가’라는 특집이 실려있는 계간 ‘사상’ 97년 봄호이다. 여기에 한국경제에 관하여 이름 있는 학자들 14명의 글이 실려있다. 이는 집필시기가 이미 1년 전이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볼 수 있다. 학자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으나 나름대로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오늘의 구조적 문제를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하고 구조적 위기 해소방안을 제시한 논문도 있다. 따라서 누구의 견해가 옳은 것이었는지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경실련 정책연구위원회가 펴낸 ‘우리사회 이렇게 바꾸자’ 수정증보판이다. 이 책은 이미 92년 대선 전에 초판이 나온 책이나 그간의 변화된 내용을 보완하여 1996년에 펴낸 증보판이다. 이 책에는 우리경제의 각 부문별 문제점을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집단토론을 거쳐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중시하여 그동안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위기를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에 관하여도 그것의 수정보완 방안이 잘 제시되어 있다. 비밀보장 철저라든가 실명제 이후 세율인하를 통하여 정직하게 세금 내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어 있다.이외에도 한국경제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논문들이 적지 않으나 비교적 평이하고 현실적 감각을 가지고 논한 책으로 위의 세 가지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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