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6 주철환이 만난 사람 -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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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젊은날의 신화

|contsmark0|이번호에 주철환이 만난 사람은 가수이자 작곡가이고 뮤지컬연출가인 김민기 씨다.‘아침이슬’, ‘친구’ 등 그의 노래는 20년이 넘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최근 양희은 씨가 살아있는 그에게 바치는 헌정음반을 내기도 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이제 소극장 학전 대표로, 록오페라 ‘개똥이’와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 연출가로 우뚝 선 그를 만났다. <편집자>
|contsmark1|열일곱살적 내 기억의 바다는 청정해역이었다. 푸른 물감이 묻어 나올 것 같았던 해변 언저리에서 처음 그의 음성을 들었다.“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김민기의 ‘친구’ 중에서
|contsmark2|스물여덟 살. 방송사를 드나들던 어느 기자의 뒷발치에서 처음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삶과 노래는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나의 탐구과제였으므로 용기를 내어 나는 그의 명시거리까지 침범해 들어갔다.“선생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나의 느닷없는 기습에 하회탈처럼 웃던 그는 딱 한 마디를 던졌다.“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contsmark3|지금 나는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방송사 프로듀서가 된 보람을 물어올 때마다 ‘김민기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사연을 은근히 털어놓는다. 그가 중심이 된 ‘겨레의 노래’ 음반 성과와 관련하여 한겨레신문사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그리고 좥대학가요제좦를 수차례 준비하면서 거의 강제로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 수줍음 많은 예술가를 비로소 만났다.
|contsmark4|그의 테마는 사라진 소중한 것들에 대한 순결한 회복의지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노래 ‘친구’의 모티브는 하계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선상에서의 뜻하지 않은 사고에서 비롯되었다-소년 김민기는 70년대라는 ‘긴밤’을 지새우며 거친 광야에서 청년기를 맞는다.
|contsmark5|- 학처럼 마르셨군요.처음 그의 음성을 듣고나서 스물다섯 해가 빗물처럼 씻겨 내려간 후 두 명의 중늙은이는 다시 동숭동 어느 허름한 건물 이층(학전 사무실)에서 해후했다.- 휴지처럼 구겨진거지.웃는 얼굴은 여전히 하회탈이다. 그 주름의 강물 사이로 얼핏 연륜이 스쳤다. 나는 지금 mbc 가요순위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다.- 연전에 mbc 라디오에서 광복 50년 특별기획으로 반세기 동안의 가요순위를 방대하게 조사했는데 무슨 노래가 일등을 했는지 아세요.- ……- ‘아침이슬’이 50년 가요베스트의 왕중왕을 차지한 거예요.- 나도 어디서 전해 듣긴 했어.(참 무심하기도 하지)- 지금 좥가요톱10좦이나 좥인가가요베스트50좦에서 일등을 하는 hot니 지누션이니 터보니 하는 젊은이들의 노래가 과연 다시 광복 백년 종합판 가요베스트 순위에서 몇 위나 할까요.- (진지하게) 글쎄.- ‘아침이슬’이 당시 인기순위 프로그램의 랭킹에 들었던가요.- (웃음)‘아침이슬’은 비록 태어날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남진 씨가 부른 ‘님과 함께’의 파워(?)에 밀려났으나 그 힘의 파장만큼은 스물 몇 해가 지난 지금 오히려 우뚝하고 당당하며 또한 우렁차기까지 한 것이다. 힘은 크기와 방향을 가지기 때문에 벡터량이라고 물리학은 가르친다. ‘아침이슬’의 크기와 방향에 대해 그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contsmark6|- 여러날 갈아입지 않은 내복을 계속 껴입고 있는 느낌일거야. 난 이미 그것을 벗었고 또 벗어 던졌는데 사람들은 내가 던져버린 속옷에 유난스레 집착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부담스러워.- 노래창조자인 형보다 노래수용자인 대중들이 그 힘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겠죠. 노래는 부르는 자의 것이니까요.- 하기야 얼마전 잠시 귀국한 한대수 씨(‘행복의 나라로’를 만든)는 이렇게 말하더군.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관객들이 그것을 평생 몇 번이나 보겠느냐. 그러나 노래는 부르고 또 부르고(부르다가 죽은 사람 그 뒤에도) 또 부르니….- 형의 음반을 들으면, 70년대 초의 그 역사적 음반이나 90년대 중반에 형이 학전의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불렀다는 그 음반이나 한결같이 조심스런, 아니 경건함이 느껴지는 창법인데.- (웃음)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기 때문이지.- 형의 세계관과 형의 창법이 구조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같은 ‘아침이슬’이라도 양희은 씨의 경우는 이 구김살 많은 세상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가난 때문에 노래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의 고백도 있었지만-을 보인 창법인 데 반해 형은 어절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듯 어렵게(?) 부르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신중현 씨나 키보이스, 혹은 히파이브 등의 노래를 들어보면 영어노래를 부를 때와 우리말로 노래 부를 때가 너무 다른 것을 느꼈지. 팝송을 부를 땐 미국 사람보다 더 잘 부르는 것 같았는데 정작 우리말로 부를 땐 너무 어색했거든. 우리말을 새롭고 낯선 풍조의 음악에 얹어 부르려다 보니 그렇게 ‘조심스런’ 창법이 된 걸 거야.
|contsmark7|그는 지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는 공연기획자 겸 뮤지컬 연출가로 변신한 것이다.- 변신이 아니야. 영역의 연대라고나 할까. 원래 난 그림밖에 몰랐고 어쩌다가 노래 쪽에서 이름을 얻게 되었지. 문학에도 관심이 있었구. 나이가 들면서 개별적으로 진행돼왔던 것들을 하나로 엮은 셈이지. 뮤지컬은 노래와 그림과 이야기가 섞인 장르잖아. 하지만 아직도 멀었어. 나는 수련중이야.
|contsmark8|70년대 초부터 마당극에 관심이 있었지만 체제에 대한 그의 불손함은 그를 꿈꾸는 자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contsmark9|- 어느 날 연극벽보를 보다가 형의 이름이 연출로 써 있는 걸 보고 동명이인이겠지 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게 바로 형이었다는 걸 알고 놀랐던 적이 있었죠. 제목도 선명해요. ‘이고진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였죠.- 아마 83년도였을 거야. 공동연출 세 사람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작품이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으로 결정됐다가 취소되었지. 어디에선가 부랴부랴 막았다더군.- 기억에 남는 아픔이었나 보죠.- 아니. (웃음) 그림쟁이들은 원래 빨리 잊는 습관이 있어 아마 자기로부터의 탈출을 늘 모색하기 때문일 거야.
|contsmark10|그가 ‘아침이슬’의 흔적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contsmark11|- 서울 미대를 다니셨죠.- 혼미할 미(迷), 미대를 다녔지.(웃음)- 그림은 지금도 그리시나요.- 못 그리지. 그러나 언젠간 꼭 그릴 거야. 그게 (잠시 쉬고) 나의 꿈이지.
|contsmark12|그림과 그리움은 그에게 동의어가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삼팔육 세대라고 들어 보셨나요.- ……- 삼십대, 팔십년대 학번, 육십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말하는데요. 전 사칠오 세대거든요. 사십대, 칠십년대 학번, 오십년대에 태어난 세대죠. 전 형의 노래가 삼팔육 세대에게는 전설, 사칠오 세대에게는 신화와 같은 존재라고 믿는 편이죠. 우리 세대의 정서적 나이테에는 형의 체취, 혹은 혈흔이 분명 묻어 있을 겁니다.- (고개를 저으며) 무서운 일이야. (깊은 한숨)
|contsmark13|문득 롱펠로우의 시 ‘화살과 노래’(the arrow and the song)가 생각났다.“나는 화살 하나를 공중에 쏘았다.화살은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중략)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 한 곡을 불렀다노래는 어딘지 모를 땅에 떨어졌다(중략)오랜 시간이 지난 후 참나무에서나는 그 화살을 찾았다 고스란히 그대로그리고 그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어느 친구의 가슴 속에서 다시 찾았다.”
|contsmark14|그의 노래는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혀 있다. 나는 그의 노래들을 한 글자도 안 틀리고 고스란히 욀 수 있다고 어린아이처럼 자랑했다. 그는 내내 웃기만 했다. 쑥스러운 분위기를 피하려고 그가 말을 돌렸다.
|contsmark15|- 얼마전에 조용필을 만났지.- 조용필이요.
|contsmark16|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쓰려고 하는 ‘노래의 힘’이라는 논문(?)에 김민기와 동년배의 또다른 가객으로 등장하는 인물 조용필이 시점의 주체인 나도 모르는 새 만나버리다니.- 우리 동네에 그가 노래 부르러 왔다기에(조용필은 지난 가을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가졌다) 내가 꽃과 와인 한 병을 보냈지. 그랬더니 ‘잘 받았다’고 그에게서 연락이 왔어. 그날밤 우린 술이 떡이 되도록 먹었지. 그가 나를 위해 ‘친구여’를 불러 주더군. 그때부터 우린 친구하기로 했어.
|contsmark17|김민기는 51년생, 조용필은 50년생이다.
|contsmark18|- 나한테 미리 알려 주었더라면 6밀리 카메라를 들고 당장 달려 갔을 텐데. 아, 그 한국대중문화사에 남을 기막힌 명장면을 놓치다니.
|contsmark19|- 텔레비전은 보십니까.- (웃음) 알잖아. 난 야간업소주인이거든.
|contsmark20|장기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부터 스스로 ‘개떡이’ 되어 버렸다고 표현한 ‘개똥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도 수업중’인 뮤지컬 학습에 대해 그는 시종일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contsmark21|- 창작뮤지컬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번안도 공부가 많이 되는 것 같애. 마치 시체해부가 예비의사에게 도움을 주듯이 말이지.
|contsmark22|저음에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울림은 천둥소리보다 컸다. 그의 젊은날을 가로막았던 ‘설움’은 이제 풀린 것인가. 살아 있는 젊은날의 신화 앞에서 나는 그것이 내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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