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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해직 언론인]

강추위가 잠시 누그러들었던 지난 22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 법정 310호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본부)의 170일 파업으로 거리에 섰던 이들이다. 해직 언론인들은 지난한 법정 다툼에 고달플 법도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과 악수를 하느라 손이 바빴다. 이날은 ‘MBC 법정의 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MBC본부 전 집행부와 이상호 기자에 대한 해고무효 확인 변론과 선고가 연달아 잡혀 있었다.

파업을 이끌었던 정영하 전 MBC본부장(해직 599일째, 22일 기준)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함께 해고된 이용마 전 홍보국장(628일째), 강지웅 전 사무처장(599일째), 박성제 해직 기자(521일째)도 보였다. 이들 외에도 최승호 MBC PD(521일째), 박성호 전 MBC기자협회장(542일째), 이상호 기자(312일째) 등을 포함하면 해고자는 총 7명에 달한다.

▲ 법원 자료사진 ⓒ노컷뉴스

“진실 감추려는 자, 공영방송의 사장”

오전 9시 50분. 반가운 소식이 먼저 날아왔다. 재판부는 “MBC의 이상호 기자 해고 조치는 무효”라며 이 기자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된 지 312일 만의 희소식이다. 선고를 앞두고 차마 법정에 나오지 못한 이 기자에게 동료들은 “잘 됐다”며 축하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너머의 그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이 기자는 파업과 별도로 지난해 12월 MBC가 북한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 씨의 인터뷰를 추진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고됐다. 대선을 앞둔 MBC의 기획 인터뷰가 사실이라면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사안이었다. 재판부는 당시 MBC의 인터뷰 시도가 사실이었으며 해고 역시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오전 11시 30분. 기쁨도 잠시, 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정영하 외 43인(해고 6명, 정직 38명)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대한 최종 변론이 진행됐다. 방청석에 있던 박성제 기자, 강지웅 PD는 재판 내내 깍지를 끼고 재판을 지켜보았다. 입술도 바싹 마른 듯 했다. 원고와 피고 측 변호사의 입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법정은 조용했지만 긴장감이 감돌았다. 170일 파업을 보는 원고와 피고의 시각은 물과 기름처럼 확연히 갈렸다. 원고 측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최후 변론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해고되고,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은 사장이 됐다. 대한민국 언론계의 분기점이 될 사건”이라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당부했다.

피고 측(사측) 변호인은 파업의 불법성을 강조했다. 김용문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무너진 직장 질서와 경영권 회복을 위해서 파업의 핵심 가담자에 대한 해고는 불가피했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법정 싸움 중인 언론인 71명

법정에 선 언론인의 수는 MBC·KBS·YTN을 비롯해 <국민일보> 등 71명에 달한다. 고통을 함께 견뎌야 하는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그렇게 시작된 법정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엄경철 전 KBS새노조 본부장 외 3인은 지난 6월 파업 참여를 이유로 받은 정직 6개월의 징계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지만 사측의 항소로 여전히 법정 다툼 중이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외 5인의 징계무효소송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2년째 계류 중이다. 지난해 공정보도 쟁취 파업을 벌인 김종욱 YTN 지부장 외 2인은 오는 28일 정직처분무효확인소송 선고 결과를 앞두고 있고, 파업에 적극 가담해 권고사직을 당한 황일송·함태경 <국민일보> 기자도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재판을 참관한 이성주 MBC본부장은 “(해직 언론인들은) 최근 국가기관이 나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4대강 사업,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등에 대한 보도와 프로그램을 지켜내겠다고 파업을 했다가 징계 조치됐다”며 “정권에 대한 비판과 권력에 대한 견제가 사라진 상황을 보면 결국 언론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순치시키는 거대한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불공정 방송 그대로라 가슴 아프다”

강지웅 전 MBC본부 사무처장도 “변론 자료에서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해외 방문 기사가 놀랍도록 비슷해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가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며 “당시 MBC본부의 파업도 불공정한 방송을 깨기 위함이었는데 여전히 그대로라 가슴이 아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언론인들이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의 대가는 만만치 않다. 언론계 징계 무효 소송을 도맡아 하고 있는 신인수 변호사는 “지난 2~3년 동안 사측의 파업을 해결하는 수순을 보면 대화나 타협의 의지가 단절돼 있다. 오히려 일방적인 힘을 발휘해 대량 해고·정직 사태를 만들었다”며 “대화나 타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법과 힘이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낮 12시 20분. 해직 언론인들이 최종 변론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 나오는 신인수 변호사에게 “수고했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방송사 대신 법원을 뒤로한 채 설렁탕 집을 향했다. 날이 반짝 풀렸다고 하지만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지난해 한창 햇볕이 뜨거웠던 여름만 해도 파업하는 MBC 노조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민들이 만든 삼계탕을 먹었던 그들이었다. 내년 1월 10일 1심 선고에서 밝게 웃고 있을 이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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