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철의 스마트TV] ‘콘타비전’ 들여다보기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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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초 독일에서 새로 시작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두고 뜨거운 법적 논란이 벌어졌다. 독일 RTL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방송의 제목은 <베이비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환영합니다>. 산부인과 병동에 30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입원한 산모들이 출산하는 과정을 담는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영국에선 채널4가 2010년 <원 본 에브리 미닛>(One Born Every Minute) 이란 제목으로 시작해서 시즌 4까지 방송이 나갔다. 시청률이 검증된 사실기반(factual) 인기 포맷이니 RTL은 제작해서 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법의 제동이 걸렸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영국의 <원 본 에브리 미닛>은 한 달 동안 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에 40대의 고정 카메라를 설치하고 출산하는 산모와 가족, 의료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진통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남편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모습을 담담하게 관찰하고, 새 생명을 기다리는 부모와 의사의 진솔한 인터뷰가 내레이션을 담당한다. 프로그램의 핵심부는 출산의 순간. 산모의 처절한 비명, 이어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시청자에게 안도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영국에서는 산모와 가족이 촬영과 방송에 동의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 영국 채널4 리얼리티프로그램 <원 본 에브리 미닛> ⓒ채널4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베를린의 독일 상원은 방송이 신생아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작을 금지시켰다. 독일 아동법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생아는 아동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고 본다. 설령 부모가 동의를 했다하더라도, 신생아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출생 순간이 담긴 방송 자료를 보고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한 번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질주하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집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수백만 시청자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빅 브라더> 이후, 리얼리티 쇼는 방송의 주류가 됐다. 출연자가 동의만 한다면 살인·절도 같은 범죄 행위 외에 어떤 사적인 언어와 행동도 방송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허용됐다. 미국 truTv 의 프로그램 <오버 더 리미트>(Over the Limit)은 술에 취해서 경찰관을 껴안으려는 여자, 파자마 파티에 가려고 과속으로 달리다 잡힌 십대 소녀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보여준다. 그들이 촬영 후 동의만 했다면 말이다.

<빅 브라더>가 처음 방송된 해는 1999년, 21세기의 시작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1920년대 <북극의 나누크> 같은 정통 다큐멘터리의 영상 문법과는 다르게, 인류는 더 시시콜콜하고 리얼하게 실시간으로 남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빅 브라더> 사이트에서는 편집되지 않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웹과 모바일로 보여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반인 출연자의 24시간 삶을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 영화 스타, TV 탈렌트,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TV쇼의 연기자, 주인공이 됐다. <빅 브라더> 이전의 극장용 다큐, TV 의 다큐 프로는 소수 관객과 시청자의 시선만 사로잡았다. 21세기의 리얼리티쇼, 다큐소우프(Docusoap)는 드라마나 시트콤만 보던 다수의 시청자를 팩추얼(factual)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 손현철 KBS PD
외부세계와 타인의 삶을 ‘멀리서 지켜본다’ 는 텔레-비전(Tele-Vision)의 ‘Tele’ 는 그리스어의 ‘멀다’에서 나왔다. 21세기의 TV는 내 이웃의 삶을 바로 ‘지금, 여기’ 인 것처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는 ‘콘타-비전’(Konta: 그리스어로 ‘가깝다’를 뜻한다)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구글글라스가 비디오카메라가 되는 모바일 시대, TV는 얼마나 더 가까이, 매 순간 타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될까? 카메라 앞에서 개인의 자유, 사생활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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