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상태바
장해랑 칼럼
자리
  • 승인 1997.12.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이 바뀐다. 실로 50년만에 처음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정부가 탄생하였다. 그런 만큼 기대도 크다. 이제 우리 방송환경도 바뀌겠지. 그리고 누구 눈치도 안보고 마음대로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겠지.문득 어느 선배가 썼던 칼럼이 떠오른다.어느 날 개혁성향의 사장이 왔다. 그는 더 이상 방송이 정권의 하수인이 아님을 대내외에 천명하고(우리가 꿈꾸는 BBC와 같이), 그야말로 눈부신 개혁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이내 외부와 내부의 적들에 의해 개혁은 좌절되고 그는 쫓겨난다. 아닌데, 이래서는 안되는데…. 발버둥치다 깨어보니 꿈이더라는.사회전반이 그러하겠지만 방송도 진정한 개혁에 굶주려 있다. 알아서 기는, 한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던 암흑에서 벗어나 철학과 비전이 보이는 내 ‘자리’에 목말라해 왔다.그럼에도 스스로가 인정해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싫든 좋든 그 ‘자리’는 분명 내가 앉아 있었던 ‘자리’이고, 부끄럽거나 버리고 싶어도 결국 그 ‘자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90년 파업 후 많은 동료들이 회사로부터 쫓겨났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그때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 어둡고 차가운 겨울 동해바다를 마주보며 소주잔을 기울였었다. 그리고 폭설로 입산금지된 설악산 정상에 올랐을 때, 눈보라와 마주한 채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그 소나무의 ‘자리’에 드러누워 무심토록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생각했다. 그래 돌아가자, 내 ‘자리’로.푼수같이 옛 얘기를 꺼낸 것은 그때 내가 만난 한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서다.화가 K씨.이 땅의 왜소하고 부끄러운 역사가 싫었다. 자연히 이 땅의 문화도 예술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떠나기로 했다. 위대한 서양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내 예술혼을 불태우리라. 떠난 지 십수년만에 유럽의 대표적 미술관에 자신의 그림이 소장될 정도로 성공한다. 그러나 왠지 허전하다. 그때 K화백은 그가 버렸던 우리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돌아가자, 내 땅으로.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자리’로 돌아가자.그는 강원도 오지에서 분단의 상징인 38선이 관통하는 폐교된 분교를 찾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K화백은 세계지도에 자신의 초상을 그린다. 그의 그림에선 여전히 분단된 조국 땅, 한반도는 항상 그의 심장이나 배꼽위치에 놓여진다. 그때 그는 말했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히며 살겠다, 그리고 쓰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고 싶다.K화백의 ‘자리’.회사로 복귀한 후 첫 번째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내 책상 앞에는 아직도 그의 사인(sign)이 담긴 엽서가 꽂혀있다. 옛 우리복장에 한 손에 해골을 든 채 두 눈을 부릅뜬 무표정한 한 남자의 얼굴. 나는 아직도 그 그림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더더욱 K화백의 예술혼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다만 부끄러워 버리고 싶었던 ‘자리’로 돌아와, 자신과 치열하게 마주하며 살아가는 그가 부럽고 존경스러웠을 뿐이다.정권이 바뀐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정부가 실로 50년만에 들어섰다. 그런 만큼 기대도 크다. 그러나 오늘 우리 ‘자리’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87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또다시 염치없이 그 ‘자리’에 무임승차할 것인가.불현듯 그해 겨울 어둡고 차가웠던 겨울바다와 설악산 정상의 당당하던 소나무가 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