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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특이한 존재다. 무엇보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타고난 욕망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많은 경우 그 욕망은 먹고 사는 문제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에 비해 비현실적인 것 혹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일견 복잡해 뵈는 사건을 다룰 때면 그 이면으로부터 첨예한 이해관계의 긴장과 충돌부터 발견하고 분석하려 드는 태도를 현명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렇듯 어느새 세상일을 바라보는 관점마저 ‘현실적’이 되어버린 자신에게서 이따금 거짓과 불의에 대한 반감이 발견될 때면 참으로 어색하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금 상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사건들은 분명 진실과 정의에 대한 순수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발견한 사람들은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을 간직한 채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젊은 청년들의 노래 공연에서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을 들었다. 1980년대 끄트머리에 처음 접한 이 노래는 당시 내 애창곡이기도 하다. 그 시절 이후 이 노래는 잊힐 만하면 어디에선가 불현듯 들려온다. 오늘날 이 노래를 부르는 저 젊은이들에게 노랫말 속 ‘그날’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지난 시절의 나는 훗날의 나보다 훨씬 더 구체적 지향과 의지를 지닌 채 ‘그날’을 노래했다. 민중가요 ‘벗이여 해방이 온다’도 같은 이유에서 참 좋아했다. 이상하리만치 ‘그날이 오면’을 생각하면 이 노래도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오늘의 저 젊은이들은 혹시 이 노래도 부를까. 그렇다면 ‘그대 타는 불길로’라는 노랫말이 나올 땐 어떤 감흥일까. 지난 시절,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그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불길’로 타오르고 있는 듯 눈물겹고 한 편으론 두렵기도 했는데. 하긴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선배들과 ‘그대’가 벗이던 시대였고, 혹은 ‘그대’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선배이던 시대였으니까.

아! 이런. 이렇듯 선연해지는 노래들. 다시금 ‘한밤의 꿈’이 아니길, ‘헛된 꿈’이 아니길 소망하는 시대. 누군가는 그 소망의 이름을 어딘가에 ‘타는 목마름으로’ 쓰고 있지 않을까. 정작 타는 목마름을 처음 노래했던 시인은 ‘변절’의 두겁을 뒤집어썼는지 몰라도 그가 거짓과 불의를 견뎌내지 못하던 시절 남몰래 느꼈을 타는 듯한 갈증은 분명 허위는 아니었으리라. 그의 한 시절 고백과도 같은 노래가 그러하듯 사람은 분명 진실과 정의를 욕망하고 때에 따라서는 타는 목마름을 느낄 정도로 그 욕망으로부터 잉태된 꿈을 소망한다. 높은 곳에 올라 땅을 내려다볼 때 어둠이 내릴수록 인간들이 문명의 불빛으로 밝힌 길이 더욱 선명해지듯 사람들은 저마다 어둠을 통해 인간들이 지닌 그 특이한 욕망을 자신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요즘 들어 언론이 존재하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 타고난 진실과 정의에 대한 욕망이라고 간결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 욕망의 대행업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업자로서 자꾸 면목이 없어진다. 업계에 드리운 구조적 불리함 또는 내림세가 고착화하는 업황을 고민하다가도 지금은 이럴 단계가 아니라는 자각이 앞선다. 업자라기보다 어둠 속 점점 뚜렷해지는 길 쪽으로 시선을 빼앗기곤 하는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물론 본분을 망각해선 안 되고 버텨내는 것도 미덕이다. 그럼에도 이 업계의 모든 대행기능이 마비되었을 때의 세상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 김한기 청주방송 PD
지나치게 비관적인 상념만은 아닌 듯하다. 최근 한 종교단체는 현 시국에 대처하는 자신들의 상황을 ‘순교자적 자세’라는 표현을 썼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가 그 어느 때보다 선연하게 들려오는 건 다 까닭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감히 소망한다. 부디 순교자적 자세가 아닌 대행업자들의 본분을 다하는 노력만으로도 ‘그날’이 오기를. 어둠이 걷히길 소망하는 마음들이 ‘피맺힌 그 기다림’이 되지 않기를. 세월의 허망함에 탄식하며 달력을 넘기다 보니 내년이 갑오년이다. ‘갑오년’에서 파생되는 연상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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