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이사들의 강행처리, 결국 수신료 인상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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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방통위원들 “내용·절차 모두 문제”, 야당도 “폭거” 주장

KBS 이사회(이사장 이길영)가 지난 10일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7인의 여당 이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한 다음날 KBS는 주요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임직원 한마음 결의대회’를 진행한 데 이어 길환영 사장이 나서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수신료 인상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KBS의 이 같은 절박함에도 수신료 인상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여당 추천 이사들의 ‘강행 처리’가 오히려 수신료 인상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안 방통위로 넘겼지만…“절차적 민주주의 담보하지 않은 안, 동의 어렵다”

KBS는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안 강행 처리 다음날인 지난 11일 메인뉴스인 <뉴스9> 18~19번째에 그날 오후 있었던 길 사장의 기자회견과 심층 리포트인 ‘앵커&리포트’를 연이어 배치해 “공영방송이 광고에 의존하는 수입 구조에서는 시청률 경쟁으로 공영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적책무의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KBS는 수신료 인상과 함께 광고 2100억원 축소안을 함께 제시했다.

KBS는 여당 추천 이사들이 처리한 수신료 인상안과 함께 △사회적 약자 배려 프로그램 확대 △통합 디지털 재난재해방송 시스템 구축 △지역방송 편성비율 확대 △KBS월드 커버리지 및 KBS월드 라디오 다국어 뉴스 확대 △고품격 다큐멘터리 제작 △UHD(초고화질) TV 제작시스템 구축 △무료 지상파 HD다채널 방송 실시 등의 구체적 계획을 담은 공적책무 확대 방안을 12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제출했다.

방통위는 KBS에서 넘어온 수신료 인상안 등에 대한 검토를 60일 이내에 마치고 검토 의견을 첨부해 국회로 넘겨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고비다. 야당 추천의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벌써부터 KBS 이사회에서 처리한 수신료 인상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김충식 부위원장은 12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인상액과 인상안 처리의 절차 모두 문제가 있는 만큼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수신료가 30년 동안 묶여있었다고 하나 현재에서 60%를 인상하는 것은 (국민에게) 부담이고, 여야 이사들의 합의가 아닌 여당 추천 이사들끼리 강행 처리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 길환영 KBS사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수신료 조정안 기자회견’에서 “공영성을 회복해 KBS가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도 수신료 인상은 절실하다”고 밝히고 있다. ⓒKBS
양문석 상임위원도 “수신료 인상안의 내용과 (처리) 형식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며 “(여당 이사들끼리 강행처리한 것은)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도 담보하지 않은 행위로, 어떻게 그 안을 방통위에서 검토하겠으며 동의를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양 위원은 앞서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KBS 야당 추천 이사는 방통위 야당 측 상임위원들이 추천하는데, 야당 추천 이사와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반대하는 수신료 인상을 야당 의원들이 받아들일 순 없는 구조”라며 “박근혜 정부에서의 수신료 인상은 물 건너갔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방통위 상임위원 인적 구성비가 여야 3대 2인 만큼 이경재 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추천 위원 전원이 찬성하면 통과는 되겠지만, 이렇게 처리된 수신료 인상안은 그만큼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신료 인상의 3단계인 KBS 이사회와 방통위, 국회 중 벌써 두 단계에서 ‘반쪽’의 동의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당 추천 KBS 이사들이 지난 7월 수신료 인상안을 단독 상정한 직후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9%가 수신료 인상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여론은 물론 절차적 명분 또한 담보하지 못한 상태로 국회에 수신료 인상안이 넘어가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야당·국민여론 눈치 볼 수밖에 없는 與, 수신료 인상 밀어붙이기엔 근거 빈약

당장 수신료 인상을 위한 국회에서의 첫 관문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에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0일 KBS 이사회의 수신료 인상안 의결 직후 전원 명의로 성명을 내고 “국민에겐 세금과도 같은 수신료를 군사작전 하듯 모여 날치기로 단독 처리한 것은 폭거와 같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미방위 여야 구성 비율은 각각 12인씩으로 같다. 새누리당은 그간 정부와 함께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지만,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월 4000원의 인상안을 밀어붙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실례로 18대 국회 시절인 지난 2011년에도 미방위엔 KBS 여야 이사들이 합의해 올린 수신료 인상안(월 3500원·2TV 광고 유지)이 넘어왔고, 인적 구성 또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여당은 밀어붙이지 못했다.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는 ‘독박’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지난 10월 23일 미방위의 KBS 국정감사 당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야당 추천 KBS 이사들이 주장하는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 방안 마련과 함께 1TV와 2TV 회계분리 등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수신료 인상안의 합의 처리를 주문한 배경이기도 하다.

여당에서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선 야당 추천 KBS 이사들이 내세웠던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마련 등 수신료 인상의 선결 조건의 현실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8개월 동안 운영한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에서조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의 독립 등을 위한 방안을 합의하지 못하고 “현재대로가 좋다는 게 우리(새누리당)의 입장”이라는 말만 반복했던 상황이었음을 감안할 때 설득을 위한 ‘협상안’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수신료 인상과 함께 연간 광고를 2000억원 이상 축소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설득력을 갖추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수신료 인상안 표결에 불참했던 야당 추천 KBS 이사 4인이 지난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연간 광고를 2000억원 이상 축소키로 한 것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아니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등에 광고 물량을 빼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한국투자증권도 수신료 인상으로 종편의 광고 수익이 최대 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편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7개 언론·시민단체는 “정치적 독립과 지배구조 개선, 보도 공정성과 제작편성의 자율성 회복 등 KBS 정상화의 길을 철저히 외면한 채 처리된 수신료 인상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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