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추천 방심위원들, ‘정치 심의’ 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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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추천 방심위원들, ‘정치 심의’ 보이콧
與 추천 위원들끼리 TV조선·채널A·JTBC 정미홍 출연 방송 ‘솜방망이’ 처분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3.12.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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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야당 추천 위원들이 26일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 회의에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공정성·객관성 심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과 야당 위원들 사이에서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등의 상황도 연출됐다.

이날 회의에서 김택곤 상임위원은 “위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 심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방송소위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위원들이) 저마다 각각의 문제의식을 내세운 뒤 수(정부·여당 추천 위원들 뜻)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형태로 고착화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상임위원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미리부터 결론이 내려져 있는) 심의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기보단 차라리 비키는 게 낫다고 판단, 앞으로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공정성·객관성 심의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방심위의 전체 위원 비율은 여야 6대 3이며, 방송소위는 3대 2로 구성돼 있다. 여야의 추천을 받아 위원에 위촉됐다 하더라도 개개인의 방송의 전문성과 상식의 선에서 심의가 이뤄져야 함에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여야가 각각 나뉘어 대립하고, 결국 수가 많은 여권 추천 위원들의 뜻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실례로 지난 11월 말 한국방송학회 세미나에서 유승관 동명대 교수(방송영상학과)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기인 현 방심위에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심의의견은 심의 결과와 83% 일치한 반면, 야당 추천 위원들의 심의의견은 23% 일치하는 데 그쳤다. 방심위원들, 특히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자신을 추천한 정치권의 이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심의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 상임위원의 발언에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발끈했다. 엄광석 위원은 “심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순 있지만, 국민이 바라는 대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발언은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 위원은 “‘일부 국민이 바라는 대로’ 등의 표현이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금 상임위원은 방심위가 국민이 바라는 대로 심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이는 틀린 얘기인 만큼 속기록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소위 위원장인 권혁부 부위원장도 “어떻게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심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걸 빌미로 상대(정부·여당 추천 위원들)를 매도하는 식의 표현을 할 수 있나. 자신만 양식이 있고, 나머지는 비양식이라고 표현하며 심의에 불참하다니, (김 상임위원) 본인이 그간 얼마나 터무니없는 의견을 말했는지부터 돌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상임위원은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심의하는 우리(방심위원들)의 심의도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는데 그간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각자 주장만 난무하고 결론은 결국 수에 따라 나왔다. 심의가 다수의 뜻에 따라 일방 결정되는 건 방심위 출범 취지에도 어긋나고 국민이 바라는 바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상임위원은 계속 자신의 발언을 속기록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 위원을 향해 “삭제할 권한이 (엄 위원에게) 있지 않다. 내 발언에 문제가 있다면 징계를 하라”고 맞받았고, 이 과정에서 엄 위원은 김 상임위원이 자신에게 반말과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상임위원과 엄 위원은 서로에게 삿대질을 했고, 고성도 오갔다. 결국 회의는 정회됐고,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퇴장한 후 TV조선 등의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 출연분에 대한 심의가 끝날 때까지 회의장에 복귀하지 않았다.

회의장에서 퇴장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택곤 상임위원은 “전문성을 담보한 이들이 상식을 갖고 심의를 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 늘 6대 3으로 나뉘어 결론을 냈다”며 “정치적 사안에 대한 심의일수록 공정성과 객관성을 더욱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의 심의 구조가 이를 보장할 수 없고, 그렇다고 운영의 묘를 살릴 부분도 없어 심의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입장을 설명했다.

이날 통신심의 소위원회를 마치고 김택곤 상임위원과 장낙인 위원을 만난 야당 추천의 박경신 위원도 “방심위원들은 결국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심의를 한다는 건, 아무리 공정하게 하려 해도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등장한 이후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이렇게까지 편향되게 할지 몰랐다. 더 이상 정치적 사안에 대한 공정성 심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택곤 상임위원은 “그동안은 종국엔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 뜻대로 심의 결론이 난다 할지라도 심의에 참여하면서 일종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이라도 하려했으나, 이제는 그조차도 무의미해졌다”며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주도하는 운영구조를 합리화 시키는 하나의 수단, 들러리가 된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일부에선 방심위원으로서의 불성실을 지적할 수도 있다는 질문에 장낙인 위원은 “오죽하면 이런 결정을 했겠나. 그간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의 일방 심의에 대해 수없이 얘기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날 정부·여당 추천 방송소위 위원들은 야당 추천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3인을 ‘종북’으로 규정한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를 출연시킨 TV조선 <뉴스쇼 판>,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 JTBC <뉴스9>에 대해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권혁부 부위원장은 정 전 아나운서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종북’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내용들의 사실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성에 정밀하게 부합하지 않아도 (박 시장 등에 대해) 종북 성향이라 주장하며 든 예시는 문제될 게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권 부위원장을 비롯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소식을 다룬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9>에 대해 정부 결정에 반대하는 쪽 의견의 출연자들을 출연시켰다는 이유 등으로 ‘관계자 징계 및 경고’(벌점 4점)의 중징계를 의결한 바 있다.

한편, 이날 방송소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시국미사에서 강론을 했던 박창신 원로신부를 인터뷰 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대한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의견진술은 법정제재 가능성이 있는 안건에 대해 진행하는 것으로, 앞서 지난 17일 방심위 자문기구인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 위원 다수는 해당 방송이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을 위반했다며 제재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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