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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제재 남발에 행정소송 줄이어…PD연합회 등 헌법소원도 검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심위)의 제재 결정이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 프로그램을 검열 수준으로 심의하고 있다는 불만이 점차 쌓여 방송사와 제작진이 방심위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송사들이 심의 제재에 불복해 소송에 나서는 움직임은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제재 처분에 불만이 있더라도  방송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 이하 방통위)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최근 방심위로부터 제재를 받고 재심을 청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한 프로그램 대부분은 정부와 다른 의견을 전달한 경우로 모두 공정성·객관성 심의규정 위반에 걸렸다. 박창신 천주교 전주교구 원로신부를 인터뷰해 방심위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고 재심 청구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대표적이다. 방심위는 지난 23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제재수위를 확정하면서 ‘연평도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한 게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언론노조 등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의 ‘편향심의’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PD저널
JTBC <뉴스9>도 통합진보당의 해산심판 청구 사건을 다뤘다가 ‘해당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JTBC는 당사자인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과 정부에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낸 헌법학자를 출연시킨 게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는 방심위의 처분에 불복,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JTBC 관계자는 “징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행정소송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방심위가 재심을 받아들인 비율이 높지 않아 재심 청구는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승만·박정희 전직 대통령의 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백년 다큐>를 방송했다가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은 시민방송 RTV는 재심이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방심위의 제재가 법적 다툼으로 비화되는 건 정부에 불편한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 안팎의 압박이 임계점을 벗어났다는 경고의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미 방송사 내부에서 진통을 겪고 방송 내용이 상당 부분 수정된 프로그램까지 방심위가 제재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방심위가 외압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방송된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 편(이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방송을 앞두고 한차례 불방 논란과 내부 심의실의 강도 높은 심의를 거친 뒤에도 방심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공정성과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KBS는 방심위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편을 둘러싼 논란은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을 다룬 KBS <추적 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의 되풀이다. 당시 불방 사태와 청와대 외압 의혹을 겪은 ‘천안함’편은 우여곡절 끝에 방송됐지만 방심위로부터 또다시 경고를 받았다. KBS는 같은 해 재심을 거쳐 행정소송을 제기해 선고를 앞두고 있다.

실제 법원에 간 방심위의 처분은 연달아 철퇴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단은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문준필)는 박근혜 대통령 얼굴 옆에 북한 인공기를 배치한 뉴스 영상을 내보낸 MBC <뉴스데스크>에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처분을 한 방심위의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CBS도 최근 항소심 재판부에서 1심과 같이 방통위가 <김미화의 여러분>에 내린 ‘주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정부 정책을 시사프로그램에서 일방 비판을 했다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런 법원의 판단을 방심위는 수용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방통위는 지난 24일 <김미화의 여러분> 에 대한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은 “사실상 행정기구 성격이 강한 방심위가 공공성과 공정성을 이유로 방송 콘텐츠를 심의, 제재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며 “다양한 정치, 사회적인 견해가 자유롭게 소통되는게 방송 공정성의 목표인 만큼, 방심위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심의규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언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PD연합회와 언론노조, 참여연대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방송심의 제도 개선 TF(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정치 심의’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방심위가 일관된 기준 없이 제재를 남발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방송심의규정이 개악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방심위의 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며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비롯해 방송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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