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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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 무엇이 있을까
[인터뷰] KBS ‘색, 네 개의 욕망’ 김종석·김한석·이성범 PD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4.01.2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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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글로벌 대기획 4부작 <색, 네 개의 욕망>(연출 김종석·김한석·이성범, 1월 10일~31일 매주 금요일 방송)은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 그리고 이 모든 색을 합치면 나오는 하양을 ‘불멸’, ‘소유’, ‘구원’, ‘탐미’에 대비해 인간의 욕망을 풀어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지난 2년에 걸쳐 인도, 영국, 파푸아뉴기니, 일본, 중국 등 30개국을 다니며 네 가지 색과 관련한 이야기를 모았다. 또한 색상을 보다 깊이 있게 표현하기 위해 HD보다 4배 선명한 UHD 4K 촬영을 도입했다. 얼핏 ‘색’이 프로그램의 전부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 다양한 비유와 상징으로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파헤치는 묘미를 선보인다.

<색, 네 개의 욕망>의 ‘빨강-불멸의 마법’과 ‘초록-소유의 괴물’ 편을 연출한 김종석 PD와 ‘하양-탐미의 가면’ 편을 연출한 이성범 PD를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파랑-구원의 기도’ 편 연출자 김한석 PD는 전화로 인터뷰했다.

▲ KBS <색, 네 개의 욕망>을 연출한 김종석·김한석·이성범 PD(왼쪽부터 순서대로). ⓒKBS
‘새로움’에 대한 고민

<색, 네 개의 욕망>은 제작진에게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역사스페셜>(김종석 PD), <환경스페셜>(김한석·이성범 PD)을 주로 연출한 이들에게 ‘색’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었다.

처음에는 ‘오방색’(오행의 기운과 직결된 청, 적, 황, 백, 흑의 색)을 주제로 <차마고도>, <누들로드>와 같은 문명 다큐멘터리를 계획했다. 그러나 아이템이 ‘차(茶)’에서 ‘색’으로 바뀔 뿐 새로운 이야기를 풀기 어렵다고 판단한 제작진은 색으로 물들어진 인간의 욕망에 천착했다. 영화 <색, 계>에서 보듯이 인간은 욕망(색:色)과 절제(계:戒) 사이에서 방황하며, 죽음에 이르면서도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김종석 PD는 “한자 ‘색(色)’은 인간의 욕망으로 등식화할 수 있는 단어다. ‘색’ 자체가 욕망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석 PD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욕망’이고, 색은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부제”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기존 논픽션이나 기록물로서의 다큐멘터리가 갖는 문법과 구성에서도 벗어나고자 했다. 다큐멘터리가 연출자의 의도를 반영해도 되는 건지, 반드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거대 담론을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 그들은 자문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PD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래서 탄생한 게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다.

영상은 잘 찍은 사진을 모아놓은 사진첩 내지는 콜라주 같고 화법은 형식을 따르지 않는 수필에 가깝다. 시간을 멈추듯 화면에 펼쳐진 프로그램의 여백은 ‘불친절’하다. <색, 네 개의 욕망>에 대한 PD 사회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다.

“기존 다큐멘터리가 특정한 하나의 주장을 증명하는 형태라면 우리는 제작진의 창의성이 개입되도록 했어요. 그렇다고 소설을 쓴 건 아니에요. 최대한 별도의 내레이션이나 설명 없이 음악과 영상을 통해 보는 사람이 나름의 생각을 하도록 한 거죠.”(김종석)

제작진은 스스로 정형화된 틀을 깨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던 대로 하면 기본은 나오겠지만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어요. PD들에게 다큐멘터리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해요. 성공과 실패를 떠나 기존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 첫 걸음을 우리가 뗀 거죠.”(이성범)

▲ KBS 글로벌 대기획 4부작 <색, 네 개의 욕망>. ⓒKBS
비유, 상징 그리고 중의성

<색, 네 개의 욕망>의 낯섦은 여백에서 나온다. 복합적인 의미가 담긴 장면에 제작진이 친절한 설명을 붙이는 대신 시청자에게 사색의 시간을 던진다. 영상과 연출, 편집 속에 숨어있는 의미와 비유를 찾도록 했다. 서술된 내레이션으로 재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 과정은 연출자와 시청자의 끊임없는 숨바꼭질과도 같다.

심지어 ‘파랑’ 편에서는 인도 틴디바남의 인디고 블루 염색공 중 한 명이 꿈을 꾸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염색공의 이야기가 꿈이라는 건지 꿈의 일부가 염색공의 현실이라는 건지 모호하다.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특성 상 흔치 않은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염색공이 계단을 앞에 두고 꿈에서 깨며 끝나는데 이 계단을 마지막에 맹인이 오른다.

“계단은 하늘을 향한, 즉 모두가 올라가고 싶은 욕망의 끝이에요. 우리는 주변에서 늘 파랑을 보니 가볍게 여기죠. 구원의 파랑은 우리의 욕심이 투영된 것일지도 몰라요.”(김한석 PD)

제작진은 욕망의 주체가 ‘나’인지 ‘욕망’ 그 자체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록’ 편에서 보듯 내가 원래 추구했던 것과 달리 어느 순간 욕망 자체만 남고 욕망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색, 아름답고 위험한 욕망

이처럼 제작진은 욕망을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욕망은 인간에게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면서도 삶을 타락시켰다. 이성범 PD는 이를 “욕망의 이중성”이라고 표현했다.

자연의 초록을 갈망한 인간이 만든 초록색 안료 ‘셸레 그린’은 치명적인 ‘비소’를 포함하고 있다. 일본 게이샤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사용한 백색 안료인 ‘연백’은 납 중독을 일으킨다. 욕망의 대가(代價)는 ‘죽음’이었다.

제작진은 “욕망 때문에 우리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작진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마지막 ‘하양’ 편에서 드러난다. 김한석 PD는 “‘하양’ 편의 마지막 3분 45분초야 말로 <색, 네 개의 욕망>의 핵심이자 프로그램을 한 마디로 정리해준다”고 강조했다.

“존재하지 않는 색이자 모든 색의 바탕인 ‘하양’은 재밌게도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열한 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욕망이 배제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욕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해요.”(김종석 PD)

“‘하양’은 색의 시작과 끝, 욕망의 시작과 끝을 보여줄 거예요. 인간의 욕망은 삶이 시작되면서 함께 시작되고 죽음과 함께 끝나요. ‘하양’ 편을 보며 시청자가 각자의 삶을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합니다.”(이성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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