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열애설이 덮은 위험한 진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 영화 ‘찌라시’

“‘찌라시’의 95%는 거짓이야.” 가진 것은 없지만 사람 보는 안목을 믿고 연예계에서 버텨온 매니저 우곤(김강우 분)은 증권가 사설 정보지 이른바 찌라시 때문에 자신의 배우 미진(고원희 분)과 3선 국회의원의 스캔들이 터지자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찌라시의 파급력은 폭발적이었다. 미진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출연과 광고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 스캔들은 급속도로 퍼지자 유곤은 자신을 믿고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미진에게 “헛소문이 맞지”라고 조심스레 묻는다. 찌라시의 질긴 생명력은 은밀한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나온다.  찌라시에 힘을 싣는 건 따로 있다. 찌라시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나겠느냐‘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의심이다.

결국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찌라시의 한 줄 내용 때문에 미진은 목숨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유곤은 직접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아 나선다.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이른바 증권가 찌라시의 제작과 유통 과정을 담아낸다.

▲ 영화 ‘짜라시’ 포스터
찌라시는 1980년대 증권가에서 기업의 정보 수집을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연예계 ‘루머의 온상’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故 최진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악성 루머를 퍼트린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고(故) 장자연씨의 성상납 의혹은 찌라시를 통해 증폭됐다. 또 최근 불거진 '연예인 성매매 의혹 사건'의 경우 연예인 실명이 거론된 ‘찌라시’가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무차별 유포되기도 했다.

SNS 등장으로 찌라시의 파급력이 더욱 커지자 피해자들의 대응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소문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면 법적 대응 등을 통해 명예훼복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찌라시의 출처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최초 유포자를 잡는 게 쉽지는 않다.

누가, 왜 이런 찌라시를 유포하는지 추적하던 유곤도 난관에 부딪힌다. 찌라시가 회원들에게만 배포하는 폐쇄적인 유통방식을 고집하면서 ‘철통 보안’을 지킨 탓이다. 유곤은 가까스로 찌라시를 유통시키는 박사장(정진영 분)의 도움으로 찌라시 제작 현장인 정보 회의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각 기업 정보 담당, 국회의원 보좌관 등 각계에서 모인 정보맨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확인 절차를 거쳐 찌라시를 제작한다.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역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도청 등 불법이 자행되고,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의 모습을 통해 은밀한 제작과정만큼 어두운 이면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유곤은 여기서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에 따라 조작된 정보가 결국 미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한다. 청와대 정책실과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준 한 대기업이 신도시 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야당 3선 의원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미진을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다. 정치 이슈와 연예계 스캔들이 연달아 터질때면 제기되는 ‘음모론’이나 ‘물타기’ 의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이수근, 토니안, 탁재훈 등 유명 MC들이 불법 도박 혐의로 무더기 기소된 사건도 이 같은 의혹을 받았다. 불법도박 사건이 터진 날이 공교롭게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에 대한 감찰 결과와 성 접대를 받은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무혐의 처분이 나온 날과 겹쳤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유곤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오자 청와대와 정책실장 박영진(김의성 분)과 기업의 해결사 역할을 한 차성주(박성웅 분)이 미진의 ‘동영상’을 흘려 물타기를 시도한다.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해 방송사 대본 입수를 지시하거나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막는 영화 속 장면도 실제 뉴스에서 접한 일들이다. 2010년엔 삼성이 MBC 뉴스 시스템에 오랫동안 접속해 온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2006년 <시사저널> 폐간 사태는 <시사저널> 사장이 삼성에 불리한 기사를 삭제하면서 시작됐다.

거대한 음모를 추적하는 <찌라시>의 소재는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찌라시’의 정보가 좌지우지된다는 문제 제기를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찌라시>는 에둘러 말한다.

‘찌라시’를 소비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책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SNS에서 찌라시를 퍼나르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선 경각심을 일깨운다. 관객이 차성주가 유곤의 손가락을 꺾는 순간을 가장 섬뜩한 장면으로 꼽는 걸 보면 영화의 의도는 전달된 듯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