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기] 솔직히 말해요, 못생겨서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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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기] 솔직히 말해요, 못생겨서 문제라고
  • 박희정 여성주의저널 <일다> 기자
  • 승인 2014.03.10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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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코미디빅리그>에서 요즘 가장 잘나가는 코너를 묻는다면 역시 ‘썸&쌈’이 꼽힐 것이다. ‘썸&쌈’은 대조적인 두 남녀커플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장도연, 유상무 커플은 사귀기 전에 호감을 가지고 서로를 탐색하며 미묘한 신호를 보내는 ‘썸’타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박나래, 이진호 커플은 상대의 행동을 무조건 ‘썸’이라고 오해하는 여자와 이를 못마땅해 하는 남자 사이의 ‘쌈’박질을 보여준다. 이 극단적 상황의 대비가 빚어내는 재미가 ‘썸&쌈’의 중심이다.

▲ tvN <코미디 빅리그> ⓒtvN

‘썸&쌈’의 상황과 캐릭터는 단순한 풍경화나 인물화가 아니라 캐리커처이다. 캐리커처의 핵심은 과장과 비틀기다. 이를 통해 희화화나 풍자를 시도한다. 캐리커처는 코미디에 쓰이는 여러 표현 방식 중 하나다. 그런데 ‘쌈’파트에서 박나래가 맡은 캐릭터는 과장이 매우 극단적이다. 그는 상대역 이진호가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명백한 의사를 밝히는 데에도 자신의 왜곡된 믿음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호의를 연애감정이 섞인 의도로 오해하는 일은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드물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오해의 대부분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다. 대개는 착각을 수정할 다른 기회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설령 혼자만의 착각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면 딱히 문제될 일은 없다. 그러나 잠깐의 오해나 혼자만의 착각을 넘어서 망상의 수준까지 나아가 상대를 괴롭힌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쌈’은 이런 상황에 이른 극단적인 캐릭터를 내세워 이진호가 박나래에게 퍼붓는 막말과 폭력적 행동을 정당화한다. ‘쌈’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쌈’의 한 장면을 보자. 이진호는 ‘섹시댄스’를 추는 박나래의 엉덩이에 ‘뜨거운’ 커피를 끼얹는다. 엉덩이를 있는 힘껏 차버리기도 한다. 이진호가 퍼붓는 말은 인격모독이라 불러도 될 만큼 독하다. 인격모독의 말잔치가 공연 내내 펼쳐진다. 그 독함이 웃음코드가 되는 이유는 ‘당할 짓 했으면 무슨 짓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썸’과 ‘쌈’에 등장하는 두 개그우먼은 둘이 처한 상황의 차이만큼이나 대조적인 외모로 등장한다. ‘썸녀’는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미녀고, ‘쌈녀’는 짧은 다리에 스타일도 촌스럽게 묘사된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분장으로, 주제 모르고 도끼병에 걸린 성격도 이상한 못생긴 여자가 완성된다. ‘쌈녀’에 대한 노골적으로 독한 행동들이 웃음코드가 되는 것을 그녀의 ‘외모’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외모 비하는 오랫동안 웃음의 단골소재였다.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성에 대한 조롱 없는 코미디 프로가 있었던가 싶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하철 광고판이 온통 성형광고로 도배되는 세상이다. 한 성형외과에서는 실적을 자랑한답시고 턱뼈로 탑을 쌓아 외국뉴스에 오르고, 성형외과 수술대 위에서 사망하는 여성들 소식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코미디를 낳는 토대이기도 하면서, 이러한 코미디에 쉽게 관대해질 수 없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썸&쌈’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외모에 더해 행실을 문제 삼아 여성비하를 맘껏 즐기는 형국이라 맘 편히 보기 힘들다. 김치녀니, 된장녀니 운운하는 요즈음의 여성혐오는 ‘개념’을 문제 삼아 여성을 비하하는 속내를 가리려 든다. ‘썸&쌈’이 선보이는 웃음코드는 이러한 경향과 결코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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