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의 답답함, 정도전으로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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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강병택 PD

현실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실망을 느낀 사람들에게 개혁을 실천한 정도전은 대리만족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주인공 ‘정도전’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1월 4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정도전>은 꾸준하게 시청률이 오르더니 지난 15일(21회) 전국 시청률 16.9%(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만난 <정도전>의 강병택 PD는 “초반에 무척 고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빨리 올 줄 몰랐다”며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지성인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런데 정도전은 바로 실천하는 지성인이에요.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 사상가이자 정치가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강병택 PD. ⓒKBS
강 PD는 대하사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1997년 공채 24기로 입사해 <용의 눈물>을 시작으로 <태조 왕건>, <장희빈> 등의 조연출을 맡았다. 역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강 PD에게 대하사극은 역사의 재미를 인도한 안내자이기도 하다.

당시 경험이 ‘정통사극’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정도전>은 KBS 정통 대하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시작하게 됐다. 강 PD는 “앞뒤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역사가 재밌다”며 “사극을 통해 시청자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강 PD가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약 4년 전부터다. 지난 KBS 대하드라마가 왕이나 영웅, 무인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강 PD는 대책 없을 정도로 무모하기까지 한 정도전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조선 건국에 앞장서게 되는 일종의 ‘성장담’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유일한 나라가 조선이에요.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태어났고 이를 설계하고 실제 추진한 정도전은 대단한 인물이죠. 세계적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는 사상가이자 정치가에요.”

600여 년 전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라고 외친 정도전의 철학은 정치의 근본을 알려준다. 강 PD는 딱히 지금 시대라서가 아니라 어느 시대든 정치에 대한 회의와 불만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나온 정치 드라마이기도 한 <정도전>을 통해 시청자는 몰입하게 되고 현실 정치의 해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강 PD는 “어느 시대나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현 시대에 대한 불만은 상존한다”며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이 드라마를 통해 감정이입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 PD는 지난 4년 간 정도전에 관한 웬만한 학술 서적과 논문을 섭렵했고 드라마에 들어가기 전에는 제작진과 함께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했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미술 부분에서도 문헌을 바탕으로 복식과 칼의 패용법 등 세세한 부분까지 재현하려 노력했다. 강 PD는 “그동안 축적된 KBS 사극미술의 힘에서 비롯됐다. 최고의 제작진이 자긍심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드라마를 지탱해주고 있다”며 “나는 단지 스태프를 꾸리고 독려해서 그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이라고 강조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의상과 소품은 자료에 맞춰 만들면 되지만 촬영 장소는 제작비 여건상 기존 조선시대 건물을 사용하다 보니 고려시대 모습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사료에 기초해 철저하게 검증한다 해도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여백을 ‘상상’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고증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야기죠. 징검다리에 비유한다면 거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던지 끝이 뾰족해 건너기 골치 아픈 지점이 분명 있어요. 거기에 상상이 안 들어갈 수는 없어요. 상상하되 최대한 설득력과 명분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 <정도전>의 주요 인물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도전(조재현 분), 이인임(박영규 분), 이성계(유동근 분), 최영(서인석 분). ⓒKBS
극중 연기자들의 호연도 <정도전>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조재현(정도전)·유동근(이성계)·박영규(이인임)·서인석(최영)·임호(정몽주) 등 알아주는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에 현실감 넘치는 정치 수싸움 묘사와 맛깔 나는 대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새누리당, 민주당을 오가며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정현민 작가는 실제 정치판을 보는 듯 현실감 있는 대사 처리를 보여주고 있다.

“모름지기 승부가 걸린 곳이라면 전장이든, 조정이든 그 어디든 간에 상대를 속이는 건 전술이지 죄악이 아니다”(이인임)라든지 “세상에 살아남아 있을 수많은 양지(정도전이 역성혁명을 꿈꾸는 계기가 되는 인물, 여기선 ‘백성’을 뜻함)를 위해 고려를 죽일 것이다”(정도전) 등 매회 마다 쏟아지는 ‘어록’은 정 작가의 경험이 녹아난 결과다.

강 PD는 정 작가에 대해 “대단하고 뛰어난 작가”라며 “역사적 사실을 지키려는 투철함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 그리고 필요 이상의 군더더기 없이 대사를 적재적소에 잘 쓴다. 마치 이 드라마를 위해 생겨난 작가인 것 같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정통 사극을 표방한 <정도전>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먼 퓨전 사극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 PD는 정통 사극과 퓨전 사극을 단순 비교할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봐주길 당부했다.

“어느 하나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공존’해야 해요. 드라마 장르가 세분화되는 것처럼 사극 안에서도 다시 여러 갈래로 분화되는 것은 오히려 드라마의 다양성을 꾀할 수 있는 거죠. 다만 시청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정통으로 갈 것인지 픽션으로 갈 것인지 지향점을 분명하게 가져가면서 설득력 있는 구성으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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