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도전과 우크라이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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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도전과 우크라이나 사태
  •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 승인 2014.03.2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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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광’인 필자가 요즘 빠진 드라마가 있다. 바로 KBS 대하사극 <정도전>이다. 지난 23일 방송에선 최영과 이성계-사림 연합이 요동정벌을 놓고 본격적인 대결 상황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인임을 몰아내기 위해 건곤일척의 연합을 이뤘던 두 세력이 분열한 것이다.

또한 정도전과 정몽주는 이성계에게 각각 ‘사(史)’와 ‘충(忠)’을 권함으로써 이후, 그들의 끈끈한 우정도 고려의 운명을 놓고 대립으로 돌변하리라는 것도 예고했다. 오호, 이합집산의 정치 세계로고...

보통 역사드라마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은, 온갖 고난을 뚫고 결국 승리할 역사적 주인공을 현재의 어떤 이,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투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4년 한국의 ‘정도전’은 누구이고, 고려말은 지금과 어떤 점에서 유사할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는데 상황은 비슷하다. 드라마 정도전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원명 교체기다. 명청교체기에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내세워 청나라 편을 들다가 병자호란을 당한 걸 상기한다면 이성계-사림의 외교론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역사의 가정이란 부질없는 짓이라 해도 최영의 주장 또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검토해 볼 만하다. 어쨌든 양쪽 모두 격변하는 세계 정세를 국내의 정치에 이용한 것은 사실이다.

▲ KBS 대하사극 <정도전> ⓒKBS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글로벌 헤게모니가 흔들리는 가운데 유럽에서 극우주의가,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세계를 또 다시 ‘신냉전시대’로 몰고 갈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이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EU와 러시아라는 양 강대국 사이에 있다. 이 사건은 EU를 향해 발길을 옮기던 우크라이나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급격하게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돌린 데서 비롯됐다. 격분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야누코비치를 하야시켰고 러시아가 크리미아 반도 인근에 군대를 출동시킨 가운데 크리미아 시민들은 압도적으로 러시아 합병에 찬성했다.

러시아 쪽에서 보기에 키에프(우크라이나 수도)의 새정부는 친미괴뢰정부일 테고 미국이나 EU는 크리미아 사태에서 그 옛날 ‘쉬데텐 위기’를 떠올릴 것이다. 1938년 나찌가 쉬데텐지방을 합병했는데 영국의 챔벌레인 수상이 뮌헨회담에서 이를 추인한 사태말이다.

엉뚱해 보일지 모르지만 난 중국의 반응에 촉각을 세웠다. 브릭스의 일원인 푸틴의 러시아는 ‘유라시아공동체’를 내세워 서진하고 있고, 또 다른 브릭스 강대국 중국은 아시아의 동쪽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세계의 대전환기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부활한 과거의 호랑이들이 아시아 대륙의 양 경계에서 기존 강대국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한 복판에 우크라니아도 있고, 한반도도 있다.

중국은 UN 안보이사회 투표에서 기권을 했다. 티벳과 신장자치구를 생각한다면 크리미아의 국민투표를 인정해선 안 되지만 미국과의 대립이라는 더 큰 구도를 생각한다면 러시아를 고립시켜도 안 되기 때문일 테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도 여차하면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분쟁지역이 있다.

일본, 베트남 등과의 영토분쟁 뿐 아니라 아시아의 핵폭탄이 될 수 있는 한반도도 있으니 중국으로선 마냥 기존의 국제질서를 옹호할 수도 없다. 내 보기에 아베 수상이 미국의 압력에 밀려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선언하고 박근혜 정부가 베를린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도 이런 크나 큰 구도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가운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고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 구상에 찬성하는 것은 명백히 한 쪽 편을 드는 짓이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에도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편입, 그리고 유럽의 MD 구상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로는 무엇일까. 원명교체기든, 명청교체기든 사건이 터져야 갑론을박하는 우리의 선조를 드라마로 보며 혀를 차다가 지금 우리는 무에 그리 다를까, 한탄을 한다.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는 양 쪽이 동의할 수 있는 구상을 먼저 제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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