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 2000일’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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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 2000일’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YTN 기자 6명 오는 28일 해직 2000일 …징계무효소송 3년째 계류· 불법사찰 의혹 여전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4.03.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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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서울지방법원 민사법정 477호.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워장 등 4명이 국가와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공판이 변론재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날이었다.

지난달 14일 YTN 해직기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선고공판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재판부의 변론재개 결정에 따라 재판이 속행됐다. 변론을 재개한 재판부는 양측에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라는 석명준비명령을 내렸지만 피고측은 원고 4명 긴급체포의 적법성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원고측은 수시기관이 파업을 앞둔 2009년 3월 17일에 갑자기 노종면 등 4명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물으면서 당시 체포영장신청서를 증거 자료로 제출해 달라고 피고측에 요구했다. 당시 경찰은 YTN 기자들이 세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원고측은 경찰과 출석일을 협의해 여러차례 조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체포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다.

피고 측 대리인은 정부 다른 기관과의 서류 협조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재판에 출석한 원충연 전 조사관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다 YTN 기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체포, 구속까지 겪은 ‘YTN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5년 전의 일이지만 사장 반대 투쟁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일요일 새벽 긴급체포까지 당해야 했는지, 공직윤리관실은 무엇 때문에 YTN 노조의 동향을 파악했는지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언론장악 논란은 YTN 기자 해직과 노조 탄압을 시작으로 KBS, MBC 등으로 번졌다. 언론계 안팎에서 ‘YTN 사태’의 해결을 MB 언론장악의 실체 규명과 언론 정상화의 출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25일 피고측의 증거가 미흡하다는 원고측의 지적에 판사가 “정치적인 이유로 그랬더라도 (피고가)사실대로 밝히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YTN 사태는 정치적인 배경과 뗄 수 없는 사건이다.

▲ YTN해직 사태 4년을 맞아 2012년 10월 5일 개최된 ‘YTN 해직 4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에서 YTN 해직기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PD저널

사법부 늑장 판결 정부 눈치 보나= YTN 사태가  길어지고 있는 이유는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정부와 사법부, YTN 사측이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다. 해직기자 6명이 낸 징계무효소송은 대법원에서 3년째 잠을 자고 있다. 2011년 2심 재판부는 YTN 기자 6명 중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기자에 대한 YTN의 해고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1심은 ‘전원 복직 판결’이라는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YTN 기자들의 해고무효소송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서 사법부가 판결을 미루고 있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불법사찰 관련 소송도 지지부진 한 건 마찬가지다. 해직무효소송에서 해직자들의 원상 복귀가 판가름난다면 불법사찰과 관련한 소송은 YTN 노조 탄압의 배후를 밝히는 것이다. 이미 2012년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이 공개되면서 불거진 YTN노조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확인된 증거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사장 선임 동향 보고’ 문건, 원충연 전 조사관이 YTN 부근에 상시로 출근한 정황, 원 전 조사관이 당시 남대문 경찰서장을 만나 YTN노조 수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고측 변호를 맡은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는 “국무총리실에서는 YTN노조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가 파업이 가결되니까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원고들이 경찰과 충분히 협의를 거쳐 출석일을 미룬 것도 출석에 불응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이하 YTN노조)가 지난해 불법사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을 업무상 횡령과 직권남용, 방송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1년이 넘도록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은 고소인 조사를 지난해 5월 한 차례 진행했을 뿐이다. YTN노조는 “고소인 조사만 받고 이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검찰로부터 전해 들은 건 전혀 없다”는 전했다.

사법부와 검찰의 대응은 해직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정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과 관련해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게 언론계의 중론이다. 언론노조는 해직언론인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던 국민대통합위원회에 대해 “언론계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인 해직 언론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해체 선언을 하기도 했다.

YTN 사측도 해직언론인 문제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엔 YTN 고위 간부가 오는 4월 사옥 이전을 앞두고 내보낼 예정이었던 회사 홍보영상에서 우장균 기자가 등장하는 장면의 삭제를 제작부서에 지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YTN은 “해사행위로 해고된 인물을 회사 홍보물에 넣을 수는 없다”는 이유를 대며 해직언론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법원 판결 전에 해결 단초 마련해야”=정부와 사측, 사법부가 동맹을 맺은 것처럼 해직언론인 문제를 외면하는 사이 해직기자들은 오는 28일 기념할 수 없는 ‘해직 2000일’을 맞게 됐다.

지난 22일 개국으로 분주한 국민TV 사무실에서 만난 노종면 기자는 “해직 문제를 해결한 권한을 가진 이들의 결정을 마냥 기다린다면 결국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직자들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셈”이라며 “불법 사찰 등의 소송은 1심이 아니더라도 진실은 꼭 밝혀  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직 2000일을 맞아 해직기자들은 다시 한 번 문제 해결과 사회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현덕수 기자는 “국회가 해직언론인 결의문 형태로 내놓은 것조차도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YTN의 문제는 대선때 대통령을 도운  인물을 언론사 사장에 앉히려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당연한 반응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사회적 고민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4월 상암동 사옥으로 이전하는 전날인 28일 해직기자들과 조합원들이 ‘해직 2000일을 버틴’ 서로를 격려하고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권영희 YTN지부장은 “징계무효소송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 계기를 만들어 빨리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해직 언론인 문제처럼 갈등 요인이 큰 사안은 중재자가 필요한데 이런 역할을 기대할만한 정부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측과는 해직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 인식은 같이 하고 있다”며 “배석규 사장이 남은 임기 1년 안에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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