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정조 대왕께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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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정조 대왕께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
  • 최영기 독립PD
  • 승인 2014.03.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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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휼전측(字恤典則)은 조선시대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구호 방법을 규정한 법령집이다. 정조 7년(1783년), 정조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특히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자 이러한 법령을 제정해서 백성들을 구했다. 이 법령은 과거 <시간여행 역사 속으로>(KBS)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고, 이 법령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현실적이고 세밀한 복지제도임에 그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대학 사회복지학과 논문으로도 소개된 바 있다. 이렇게 역사 안에는 백성을 살피는 국가의 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2014년 지금,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능성은 어떠한가? 과연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안녕한가? 최근 철도노조 파업과 철도 민영화가 큰 이슈가 되었고, 의료분야에서도 민영화가 예고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언론에선 이를 흔히 ‘의료 영리화’로 표현하고 있다. 병원이 영리 자법인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고, 여러 부대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지금은 장례식장 등을 제외하고 병원의 영리활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병원이 경영난을 겪고 있으니 규제를 완화하고, 적자를 상쇄하는 물꼬를 터주겠다는 취지이다. 겉보기엔 환자랑 무슨 상관인가 싶다. 또 ‘원격진료’로 의료서비스가 향상되면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속내가 숨어 있고, 한 번 물꼬를 터 주었을 때 자본의 발톱이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인가는 지극히 의문이다. 특히 소외계층에 치명타가 될 의료민영화의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욕심을 재생산해내는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복지가 태동했다고 배웠다. 더욱이 '복지의 꽃'은 사람의 생명 문제가 달린 의료라고 배웠다. 따라서 의료 문제엔 자본 논리가 가장 적게 적용돼야 한다. 현재 의료복지 정책은 제자리걸음에 있다.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인 공공병원은 최근 8년 사이 급감하다가 지금은 전체병원의 10% 미만까지 떨어졌다. 유럽의 선진국은 공공병원 비율이 90%가 넘고, 의료 민영화의 대명사라 불리는 미국도 25%가 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정부는 지금 ‘의료 영리화 정책’에 힘을 쏟기보다는 ‘국민건강보험제도 발전과 의료복지 정책’에 눈을 돌려야한다. 의료복지정책이야말로 국가의 강력한 순기능과 정상적인 권력이 작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 통합을 외치며 탄생한 정부라면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을 살피는 의료복지 정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시민 역시 정부가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쓴소리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과거 전국에 타 올랐던 촛불의 의미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지켜내기 위한 저항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고개를 들던 공공재의 민영화 정책도 막아낼 수 있었다.

시민정신은 국가의 미래를 지키고, 곧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특히 의료정책에 관해서는 이 땅의 어른이고 부모라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저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 많이 살아야 30~40여년 남은 게 어른들의 목숨이고,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이 땅에서 살아야 하지 않은가?

정조 대왕께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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