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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한 세상 보기’

|contsmark0|"영화를 통한 세상 보기" 94년 3월에 신설돼 올해로 방송 10년을 맞이하는 ebs <시네마 천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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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사회와 문화의 거울’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영화를 해석해내는 <시네마천국>은 ebs에서 손꼽히는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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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은 성공한 상업주의 영화가 아니라 고독한 작가주의 영화, 흥행하는 실패했지만 놓칠 수 없는 영화들을 분석하고 소개하는데도 불구하고 매니아층까지 만들어가며 한결같은 인기를 얻고 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정은 어땠는지 거슬러 올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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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학파 의기투합 “우리만의 평론 프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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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의 출발은 90년대 초반 영화인들 사이에서 일기 시작한 ‘영화의 대중화’ 붐과도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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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월간 ‘키노’ 편집장인 정성일, 김홍준 감독, 현재 영상 미디어 센터 소장인 김명준 씨, 서강대 교육학과 교수 정유성씨 등 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유학파들은 90년대 초 ‘우리만의 영화 평론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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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감독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홍창욱 pd에게 이를 제안했고 그들은 서로 의기투합해 영화 전문 프로그램인 <시네마 천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김홍준 감독은 프로그램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정성일 씨도 선뜻 작가역할을 맡는 등 <시네마 천국>은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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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영화서클 활동을 했다는 홍창욱 pd는 “당시 타사에 ‘출발 비디오 산책’이라는 비디오소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우리는 보다 전문적인 영화 평론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시네마 천국>을 만들게 됐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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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시청자들은 헐리우드 위주의 영화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영화보기’의 폭넓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를 다룰 경우에도 ‘하나의 전쟁 6개의 영화’식으로 테마를 달거나, la 인종폭동을 상기하면서 ‘인종의 불광로 뉴욕’이란 주제를 방송하는 등 <시네마 천국>은 영화와 사회를 결부시켜 접근하는 방식으로 출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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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초반에 홍 pd는 “옛날 영화도 많이 소개했기 때문에 자료가 없어 작품 소장자들을 만나 영화 ld를 카피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며 “어떨 때는 자료를 구하지 못할 때도 있는 등 자료확보가 힘들었던 기억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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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계에서 제작자의 발이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자료 소장자를 아는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당시 이에 사활을 걸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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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금은 ebs내에도 상당한 영화자료가 축적됐고 각 영화사들에도 많은 자료들이 있어 지금은 방송 초기와 같은 어려움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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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제별로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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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한 세상보기’를 모토로 내걸고 영화의 사회학적 접근을 하고 있는 <시네마 천국>은 매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방송한다. “pd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영화를 매개로 해서 사회와 항상 긴밀하게 호흡하는 저널리스트여야 한다”는 이승훈 pd의 말은 프로그램의 기본 방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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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안에 대해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다큐멘터리제작방식’도 매번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주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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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초기에는 영화 역사를 중심으로 tv를 통한 영화 개론서를, 다음해인 95년엔 영화 100주년 기념으로 ‘영화 작가’ 시리즈를 방송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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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97년은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네마 천국>의 한 코너에서 방송되던 단편영화가 99년에는 고정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는 등 단편영화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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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카데미를 연상시키는 <시네마 천국>에 대해 경향신문은 ‘tv속의 영화학교’라는 별칭으로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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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보다는 함께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길 바란다는 제작진은 99년 ‘나도 영화감독’이라는 아마추어 참여 코너를 프로그램에 도입 해 1년 동안 6개의 작품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 코너는 전문성은 부족했지만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를 준 시도로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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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자처하는 <시네마 천국>의 제작진들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그리고 평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다리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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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2년 후에는 폐지 논의도 잠깐 있었지만 당시 pd들은 ‘좋은 프로그램인데 폐지시키기 아깝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시네마 천국>은 여전히 탄탄한 영화지침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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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이끌수 있는 원동력 ‘시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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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10월 각 pc통신에서는 ‘시네마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천사)의 동호회들이 자발적으로 구성이 됐다. 이승훈 pd는 <시네마 천국>이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시천사’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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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의 튼튼한 버팀목이기도 한 ‘시천사’가 있어서 제작진들은 방송할 때 지치지 않고 항상 힘이 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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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피드백이 있어 프로그램 제작 할 때도 스스로 먼저 평가를 해보게 되고 세세한 부분까지 소홀히 하지 않게 되어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더욱 쌓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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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방향에서 한치의 어긋남이라도 보이면 바로바로 지적을 하는 등 <시네마 천국>이 현재까지 인기를 얻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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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인터넷으로 옮겨 활동하고 있는 500여명의 ‘시천사’ 회원들은 시사회 등 오프라인 모임도 꾸준히 가지면서 함께 영화도 보고 의견도 교환하는 스터디팀도 자발적으로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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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에는 함께 모여서 공부도 하면서 대학원과 영상원에도 진학하고 영화사 등에도 취직하는 등 <시네마 천국>의 예비 일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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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죽고 영화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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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천국>의 장수 비결은 단연 돋보이는 ‘전문성’이다. 프로그램 출발 때부터 전문성으로 영화계에서 호평을 받았던 <시네마천국>은 작가, mc, pd 모두가 영화에 죽고 영화에 사는 말 그대로 ‘영화쟁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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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천국>은 다소 색다른 제작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영화 평론가가 초고작가를 맡아 원고를 작성하면 이 원고를 갖고 대본 작가가 mc와 출연자들에 맞게 다시 작성해 2단계를 거치는 것. 이로 인해 영화에 대한 전문성과 프로그램으로써의 완성도를 동시에 추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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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작을 맡고 있는 이두일pd까지 그간 <시네마 천국>의 연출봉을 잡았던 pd들도 영화에 대한 박식한 지식을 겸비하는 것은 물론 모두 이 프로그램의 조연출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던 이들로 시스템이나 전문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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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동안 <시네마 천국>을 거쳐간 진행자들 또한 방은진, 조용원, 정재형 교수, 이동진 기자 등 영화계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확보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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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연출을 맡았던 이승훈pd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활동사진이기 때문에 책만 보면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런 한계를 <시네마 천국>이 일부분 보완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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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간혹 ‘딱딱하다’, ‘어렵다’는 지적을 받기도 해 ‘대중적으로 좀더 쉽게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승훈 pd는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갈구하는 시청자 층도 분명히 있지만 한 프로그램 정도는 전문적인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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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시네마 천국>에서 다뤘으면 하는 내용에 대해 이 pd는 “자료 부족으로 다루지 못했던 한국 옛날 영화를 정리하고 수용자 역할의 중요성을 전하는 ‘관객 문화를 조명’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에 옛날 영화 자료는 <시네마 천국>에서 방송될 그 날(?)을 위해 현재 차곡차곡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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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네마 천국>을 기획했던 홍창욱 pd는 “ebs가 주체가 되는 단편영화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해 <시네마 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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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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