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송이 코트, PPL 그리고 우리가 잃는 것
상태바
천송이 코트, PPL 그리고 우리가 잃는 것
[박성우의 공공연한 비밀]
  • 박성우 문화연구가·성균관대 겸임교수)
  • 승인 2014.04.18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기 드라마 SBS <별에서 온 그대>가 불러온 여러 논란 가운데 일명 ‘천송이 코트’가 있다. 중국 등 해외 한류 팬들이 한국의 복잡한 공인인증 절차 및 컴퓨터 상거래 환경 때문에 이 코트를 온라인상에서 구매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는데,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미디어 이벤트성 공식 석상에서 이를 직접 언급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 일련의 내러티브 가운데 주목해야 할 점은 복잡한 인터넷 쇼핑과 관련된 시스템 제도 개선보다 오히려 우리 방송에서도 어느덧 자연스러워진 간접광고 즉 PPL(Product PLacement)이다.

우선 오랫동안 금지되어왔던 방송 간접광고는 허용된 배경부터 아이러니하다. 간접광고가 도입된 주된 이유는 드라마, 오락물 같은 방송 콘텐츠의 제작비 상승과 제작 환경의 고충, 특히 상업방송과 독립 제작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0년 이후 불과 3년 만에 간접광고 시장이 거의 20배 정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2010년 30억원, 2013년 236억원, 올 상반기 350억원, 지상파방송 간접광고 매출 기준)은 방송광고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제작환경의 어려움과 다시 조우할 수도 있지 않겠나.

▲ SBS <별에서 온 그대> ⓒSBS
즉, 광고주 입장에선 굳이 비싼 방송광고를 제작하느니, 그만큼 효과가 있는 PPL이 여러모로 더 나을 수 있다. 이처럼 방송 제작 환경의 타개를 위해 도입된 간접광고 제도는 오히려 방송광고 구조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다소 허술하고 소극적인 PPL 제도 아래서는 협찬과 광고, 상품 로고를 가리는 것과 노출하는 것, 방송 시간인지 광고 시간인지 등 모호한 부분이 많아짐에 따라 간접광고에 대한 제재와 대안은 필수적이다.

더불어, 시행 3년 만에 새로운 방송 생산 양식의 하나로까지 주목받는 PPL 제도가 사실은, 은밀한 수신료 혹은 제2의 수신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은밀한 수신료 논란은 특히 공영방송 제도를 운영하는 우리의 경우엔 더욱 심각한 문제다. 간접 광고비 확보를 위한 재원은 해당 상품, 서비스 업체의 마케팅 비용으로 전가되어 장기적으로 보면 고객이 지불하게 되는 상품, 서비스의 판매 가격 인상과 연결된다는 근원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즉 현 제도에서 공영방송 시청자는 직접 수신료 지불과 함께 이러한 형태의 은밀한 간접적 수신료 지불 시스템에서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에서의 PPL 허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실제 영국이나 유럽 공영 방송제도 운영 국가들만 보더라도 간접광고를 허용하는 대상은 오직 상업방송들뿐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점은, 우리의 경우 과연 누구를 위한 PPL인가 하는 점이다. 원래 취지처럼 이 제도는 어려운 상업방송과 독립제작사에 재정적 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 ‘천송이 코트’ 사건과 대통령, 정부의 대응만 놓고 보더라도, 천송이 스타일을 창조(?)한 외부 상품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의 보편화 속에서, 혹 점점 더 복잡하고 과도해지는 PPL로 인한 광고의 직∙간접적 효과가 프로그램의 편집권적 독립성과 의미를 훼손하거나, 결국 광고와 방송이라는 두 경계까지 모호하게 통합한다면, 시청자는 궁극적으로 방송, 특히 공영방송에 대한 그나마 남아있던 신뢰(trust)까지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 박성우 문화연구가·성균관대 겸임교수
최근 <꽃보다 할배> 등 케이블, 종편 프로그램들에서 노골적으로 행하는 간접 광고는 이제 어디까지가 방송이고 어디까지가 광고인지조차 쉽게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헷갈리는 점은 중국 팬들이 사고 싶어 하는 ‘천송이 코트’를 놓고 쏟아지는 많은 요구 사이에서 점점 잃어가는 우리 방송 제작 환경에서의 기본적 원칙과 방송에 대한 믿음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