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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contsmark0|사람을 다룰 때 프로듀서들은 가슴을 열고 주인공의 삶을 만난다. 역사를 다룰 때 책으로보다 현장으로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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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리얼한 증언과 진실을 바탕으로 하는 인생과 역사는 치열하고 실질적이며 힘이 있다. 당연히 그 결과물인 프로그램은 실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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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들은 살아있는 현장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동시켜, 느리지만 일관되게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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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프로듀서들의 꿈이 좌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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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이 잠시 수면아래 가라앉았다고 해서 정신마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종종 방송사 수장이 ‘명령이 먹혀들지 않는 이상한 집단’으로 치부하여도 자율과 창의를 꿈꾸는 프로듀서들의 자유정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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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주인인 시청자가, 특히 신문 쪽에서 ‘피디 저널리즘’을 하찮은 것으로 비하해도, 오랜 방송 역사동안 신문처럼 ‘아니오’라고 한 선배가 없었다고 우리의 자의식을 추궁해도, 숱한 민주인사들이 피를 흘릴 때 너희는 어디 있었느냐고 우리의 기회주의와 이기주의를 질타해도 그것을 부끄러워할망정 ‘양심’은 죽지 않았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프로듀서들의 신념과 꿈이 사라진 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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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음의 근저에는 한번도 실행하지 못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절대명제가 있었다. ‘땡ㅇ 뉴스’라는 오명, 불공정과 편파로 비롯된 수신료 거부운동에 대한 부끄러움, 돌팔매질로 상징되는 취재거부라는 좌절감......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렇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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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희망은 권력과 방송은 생리적으로 긴장과 갈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그 ‘영원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만이 방송을 제자리에 돌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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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형태가 되어 여전히 그 성패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지금의 독립적 방송위원회는 십 수년간 싸워온 방송인들의 이런 믿음과 실천의 결과물이었다. 방송독립은 우리의 장기적 과제이고 우리는 지금 그 목표를 향한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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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개혁과 변화를 내건 참여정부에서 또 다시 반복되는, 아니 오히려 후퇴한 일이 벌어지는 지금의 현실은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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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은 자들의 ‘전리품’ 정도로 방송을 인식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이제껏 싸워온 방송인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지금까지의 과정과 미약하나마 그 성취결과의 싹마저 짓밟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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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인물에 대한 맹신이었다면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한 결과가 방송계에 끼친 해악에 대한 진지한 성찰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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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낙점된 개인이 아무리 개혁적이고 인격이 훌륭하더라도 결국 임명권자의 눈치보기로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상식조차 인정하지 않는 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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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가 결정되었을 때 ‘코드’가 일치했던 프로듀서 후배들은 새로이 전개될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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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후배들에게 기대는 하되 여전히 우리는 또 다른 권력에 대한 건강한 비판으로 새로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란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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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상과 일치하는 일이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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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내막을 모른다고 추천과정에 전혀 간여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도 없고 공개추천이라는 진일보한 과정의 결과물이니 선선히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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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이때다 싶은 또 다른 세력이 이를 이용해 공격 실마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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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랬다. 욕심은 무리를 낳고 무리는 또 다른 공격을 낳았다. 모두들 자기를 합리화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본질은 그 설자리를 잃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보자. 본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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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권력일 뿐, 어떤 권력도 방송을 손에 잡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 모든 정권이 한번도 방송을 국민의 품에 돌려준 적이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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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권력과의 관계는 ‘언론은 제 4부’라는 교과서적 원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일, 그것이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 프로듀서들의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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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랑kbs 교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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