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 대통령은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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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기적은 더디 오고 18일 오전 세월호 침몰 사망자 수는 25명으로 늘어났다. 사고 발생 당시부터 우왕좌왕 하는 정부의 모습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뿐 아니라, 기적을 바라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러한 분노의 화살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일종의 언터쳐블(Untouchable) 영역이라고나 할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영역이다.

18일자 <중앙일보> 3면을 보자. 제목은 이렇다. <“마지막까지 최선 다하라…대통령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과 실종자가족대책본부를 찾은 현장을 보도한 기사로, 제목에서부터 최악의 재난사고 구조에 대한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드러난다.

더딘 구조에 애끓는 부모들이 모인 현장에 대통령이 직접 내려가 구조를 약속하고 위로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살핀 것 자체를 뭐라 할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2년 초대형 태풍 ‘샌디’ 피해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찾아 얘기를 듣는 것은 최악의 재난 사고 앞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17일)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대통령과 실종자 가족들이 만난 그 현장의 가감 없는 전달이 아닐까. 즉,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어떤 위로를 전하고 약속을 했는지 뿐 아니라, 대통령을 만난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 그리고 지금 그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들과 감정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 그것 아닐까.

▲ <중앙일보> 4월 18일 3면
하지만 18일자 일부 신문들에선 대통령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한 약속, 그리고 그에 호응하는 반응만이 있었다. <중앙일보> 3면 기사를 보자.

실종자 가족(이하 가족): 제가 두 번 현장에 다녀왔어요. 지휘체계도 문제지만 12명이 작업 중이라고 해 놓고 실제로 가보니 2명만 들어갔어요. (정부와 해경이) 무엇을 했는지를 왜 우리는 몰라야 하나요.
대통령: 가족 분들이 가장 힘들죠. 크레인이 몇 시에 도착할 거고 그런 걸 더 철저하게 요구사항이 있으면 실천을 해야죠.

박 대통령 옆에 있던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크레인부터 말씀 드리겠다”고 하자 실종자 가족들이 핀잔 투로 말을 끊었다.

가족: 잠수부도 못 들어가는데 공기라도 넣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대통령: 공기라도 넣어 달라는 게 가족들 기대인거 알고도 왜 안 되나요.

박 대통령의 질문에 김 청장이 “공기를 넣는 진입로 확보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크레인을 끄는 데 필요한 바지선 승인이 안 났었다” 등 해명하자 가족들이 거친 야유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걸 가족들 위주로 더 자세하게 (공기 주입)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세세하게 아시도록 설명하시는 게 좋겠다”고 즉석에서 김 청장에게 지시했다. (중략)

가족: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리 물살이 세고 캄캄해도 계속 잠수부들을 투입해 식당·오락실에 있다고 하는 아이들을 구하는 겁니다. 1초가 급합니다.

이때 김 청장이 “저희는 어떤 여건에서도 잠수부 500여 명을 투입하고…”라고 해명하려 하자 여기저기서 또 야유가 쏟아졌다. “뻥 치지 마” “**새끼” 등 비난과 욕설이 대통령 면전에서 김 청장에게 쏟아졌다. 야유가 한동안 계속되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서 대통령에게 귓속말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김 비서실장을 손짓으로 밀어냈다. (중략)

가족: 명령을 내려주세요. (공무원들) 말 안 들어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는 얘기를 했고, 이게 바로 (대통령의) 명령입니다”고 말하자 또 다시 박수가 이어졌다.

기사에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을 모두 이해하고 요구를 즉석에서 해결, 혹은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박수를 받았고, 실종자 가족들의 모든 분노는 해양경찰청장 등에만 향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18일자 다른 아침 신문들을 보자. <실종자 가족들 “아들 살려내” “여기가 어디라고 오나” 격앙>이라는 제목의 <국민일보> 2면 기사에선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애가 물속에 살아있어요. 제발 꺼내주세요.” “선장하고 선원들이 먼저 빠져나왔다고 하더라.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 아들 살려내.” “여기가 어디라고 와. 여기 오지 말고 현장에서 지휘하라고.”

17일 저녁 세월호 침몰사고 대책본부가 차려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 박근혜 대통령이 인근 관매도 남서쪽 3㎞ 해상 세월호 침몰 현장에 이어 이곳을 방문하자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터졌고, 박 대통령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가족도 눈에 띄었다…(중략) 박 대통령의 진지한 태도와 대답에 가족들의 분노는 조금 진정됐고, 일부 학부모는 박수를 치기도 했다.

▲ <경향신문> 4월 18일 1면
<경향신문> 8면 기사는 이렇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한 실종자 가족은 ‘우리 애가 물속에 살아있다. 제발 꺼내 달라’고 호소했다. ‘우리 아들 살려내’ ‘여기가 어디라고 와. 여기 오지 말고 (현장에서) 지휘하라고…’라는 고함도 터져 나왔다…(중략) 박 대통령은 일부 가족이 ‘가시면 안 된다. 떠나고 나면 그대로…’라며 의구심을 보이자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일부 가족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들 신문의 기사 외에도 지난 18일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가 공개한 촬영 동영상을 보면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대통령 방문 사실을 알리자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같은 날 JTBC <뉴스9>에서도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관련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일부 말을 하고 서로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그전에 계속해서 해왔던 주문들, 약속들이 다 깨졌다 이러면서 야유와 고함이 나오면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중앙일보>의 기사 어디에도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 대통령을 향한 분노는 없다. “청와대 참모들이 돌발 상황을 우려해 현장 방문을 만류했지만 박 대통령은 ‘가기로 한 것 아니냐’며 만남을 강행”했다는 문장으로 기사의 도입부를 만들고, 다른 신문과 방송에서 전한 박 대통령 입장 과정에서 터져 나온 실종 학생들의 가족이 쏟아낸 항의와 분노의 목소리는 삭제했다.

“박 대통령이 체육관 출입구로 들어서자 누군가 앉아서 큰소리로 ‘애 엄마와 아빠의 생사를 모릅니다. 꼭 구해 주십시요’라며 울부짖었다. 부모 없이 홀로 구조돼 안타까움을 샀던 권지연 양의 고모였다. 권양 고모를 비롯해 실종자 가족·구조자 600여명은 저마다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등 절규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출입구에서 단상까지 100여m를 걸어가는 동안 실종자 가족들의 손을 잡거나 위로의 말을 일일이 건넸다.”

<중앙일보>의 기사만 보면 박 대통령은 재난의 비극 속 단호하고 자애롭게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와 분노는 박 대통령이 아닌 그의 수하들에 향했을 뿐이다.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라는 대통령이야말로 우왕좌왕 정부 대응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임을 지적하지 않은 채,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마음을 박 대통령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으로 만들었다. 

결국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인 18일 오전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해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한다”며 국민을 향해 “아이들을 살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최악의 참사 앞에서도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보도, 그것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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