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하루가 또 흘러갔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려오고 있지 않다. 처음부터 우왕좌왕했던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사흘째였던 지난 18일 탑승객과 구조자·실종자 수를 정정하면서 다시 한 번 무능을 입증하며 애끓는 마음으로 무사귀환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분통을 터트리게 했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속보 경쟁으로 오보를 내고, 피해자 가족들의 비통한 마음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보도를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이자 국가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지난 18일 오보를 냈다. 이날 오후 4시 30분께 KBS <뉴스특보>에선 <구조당국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확인”>이라는 자막을 1분 20초 정도 방송했다. 앵커는 “선내 엉켜있는 시신이 다수”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KBS <뉴스특보>는 이어 전한 <해경, 오후 3시 49분 화물칸 진입 성공> 리포트에서 구조당국이 선내에 엉켜있는 시신 다수를 확인했다는 내용을 또다시 전했다.
그러나 해당 소식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브리핑을 통해 오보로 확인됐다. 민간 다이버 두 명이 입수해 세월호 2층 화물칸 출입을 개방해 선내 안쪽에 진입했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게 당시 해경의 설명이었다. 해당 브리핑을 중계한 KBS는 앵커를 통해 “시신은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라고 정리했다. KBS 스스로 마련한 ‘재해·재난보도 지침’의 불확실한 내용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보도해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억제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못한 보도였다.
물론 재난주관방송사라 하더라도 오보를 낼 수는 있다. 현장의 기자들도 우왕좌왕 하는 정부 발표 속 의도치 않게 잘못된 보도를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사고 발생 후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계속 보도를 해야 하는 기자들의 상황도 녹록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문제는 태도다. 앞서 잘못된 소식이 내보내진 데 대해 분명하게 잘못이었다고 정정하고 혼선을 빚은 데 대해 사과하는 태도 말이다. 물론 KBS 입장에선 해경의 브리핑 과정을 중계한 뒤 “구조대가 선내에 진입해 확인 중이며 시신은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라고 밝힘으로써 정정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의 혼란이라도 차단하기 위해선 분명한 정정의 표현을 사용했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KBS는 오보를 전하면서 “선내에 엉켜있는 시신”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엉켜있는”이라는 묘사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선내 시신 다수 발견”이라는 건조한 표현으로도 상황의 전달은 가능하다.
영국 BBC ‘프로듀서 가이드라인’은 △재난 발생 시 시청자들이 불필요한 고민이나 근심을 하지 않도록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비참한 장면을 오래 다뤄선 안 된다 △사망·부상·실종자에 대한 보도 시 가족이나 친척들이 받게 될 충격을 충분히 고려해 이름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완성되진 못했지만 지난 2003년 한국기자협회가 만들었던 ‘재난보도 준칙’ 역시 자극적인 장면 등에 대한 보도를 금지토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일련의 규정들은 결국 언론이 지켜야 할 하나의 태도로 수렴된다. 정확한 보도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시청자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고, 사실을 보도하더라도 이런 배려를 잊어선 안 된다는 것. 오보를, 그것도 “선내에 엉켜있는 시신”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전한 KBS는 길어지는 특보 체제 속에서도 이런 태도를 잊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6일 MBC <특집 이브닝뉴스>는 열아홉 번째에 배치한 리포트 <“두 달 전 안전검사 이상 없었다”…추후 보상 계획은?>에서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단체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여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상해사망 1억 원, 상해치료비 500만원, 통원치료비 15만원, 휴대폰 분실 20만원 등을 보상 한다”고 전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두가 마음을 졸이던 시간에 언론이 목숨 값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보험 수혜 여부는 장기적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여전히 구조가 진행되는 상황 속 보상 액수부터 말하는 건 어떻게 봐도 피해자와 가족들을 배려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MBC는 지난 18일 <뉴스데스크> 여섯 번째 리포트 <대형 크레인 속속 도착…인양작업은 미정>에서 세월호 인양을 위한 대형 크레인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인양 방법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물론 정부 당국이 실종자 가족들의 동의를 받은 후 세월호를 인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사실도 함께 전했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선체를 인양할 경우 ‘에어포켓’에 바닷물이 밀려들어 생존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함께였다.그러나 누리꾼들은 “MBC, 벌써 선박 인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도한다. 제정신인가”, “지금 인양이 뭐가 중요한가” 등 항의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쏟아냈다. “인양=구조작업 포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공영방송 메인뉴스에서 주요 리포트(방송시작 20분 이내)로 인양 관련 소식을 전하는 걸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들까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18일은 제대로 된 구조작업이 시작된 첫 날이었다.
같은 날 JTBC <뉴스9>도 여섯 번째 리포트 <구조 작업 끝난 뒤 인양 가능…환경적 요인도 고려해야>에서 크레인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인양 방법을 소개하고 정부 역시 인양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해당 리포트에 이어 해난구조 및 선박 인양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인양 시기는 구조를 포기하는 순간이어야 한다. 구조 작업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돌아가신 분들을 다 모시고 나왔거나 전부 잊기로 한 다음이 될 것이다. 이제 3일 지났다. (구조작업) 초기로 제대로 시작도 못한 단계”라고 강조하는 것을 내보냈다.
MBC와 JTBC에서 전한 리포트 내용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JTBC <뉴스9>는 리포트에 이어진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아직은 인양 시기가 아니다”라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했고, 시청자들은 이 차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JTBC는 사고 발생 첫날 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 여학생에게 친구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언론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질렀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 잘못을 규탄하면서도 JTBC 보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 차례 잘못 이후 JTBC가 실종자 가족들이 느끼는 사고 현장에서의 답답한 정부의 대응과 정부 발표만을 받아쓰는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에 귀 기울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JTBC는 사고 발생 첫날의 잘못에 대해 보도담당 사장인 손석희 앵커가 나서 아무 변명 없이 인정하고 사과했다.
물론 인정하고 사과했다 해서 잘못이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노력은 시작된다. 그렇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나흘째, 공영방송들은 피해자 가족들의, 그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시청자에게 전한 잘못된 보도와 사려깊지 않은 태도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공영방송들이 연일 이어지는 특보에 미처 돌아볼 당장의 시간이 부족하다면 지금의 상황이 일단락 된 후에라도 돌아보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영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는, 즉 공적인 그릇으로의 최우선의 역할을 하는 공영(公營)방송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보도 윤리의 기본마저 저버린, 그리하여 영혼 잃은 공영(空靈)방송으로 남을 것인가. 결국 그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