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이 감당해야 할 욕, 듣지 말아야 할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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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론이 감당해야 할 욕, 듣지 말아야 할 욕
  •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
  • 승인 2014.04.22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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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라는 말이 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말이다. 원래는 인터넷을 떠도는 불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흥미 위주의 기사를 쓰는 것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말인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에 아부하는 기자’의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이 ‘기레기’라는 말이다.

이런 거친 비난에 언론은 할 말이 없다. 이번 사고 보도 와중에 한국 언론의 모든 병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기꾼을 인터뷰해 혼란을 야기하고, 정부가 발표하는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다 오보를 남발했고, 상업주의에 함몰되어 선정적인 편집을 일삼았고, 사고현장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고, 이 와중에도 대통령에 아부하는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승객을 버려두고 먼저 도망간 선장, 그리고 우왕좌왕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함께 언론은 이번 사건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다. 그런데 거짓말도 착한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이 있듯이, 욕도 먹어야 할 욕과 먹지 말아야 할 욕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순기능을 위해서는 먹어야 할 욕도 있기 때문이다.

▲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선수쪽 선저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모두 침몰한 가운데 구조대원들이 야간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노컷뉴스
무엇이 먹어야 할 욕일까.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보도하지 않아서 먹는 욕이 그렇다. 아무리 의혹이 팽배하더라도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확인 없이 보도하는 것은 안 된다. 실종 학생이 배에서 보낸 메시지라고 떠도는 것, 수색 작업에 참여한 잠수부가 보낸 메시지라고 떠도는 것, 이런 것은 실제로 그 메시지를 보내거나 받은 사람을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면 불필요한 갈등만 키우게 된다.

한미연합훈련 때문에 항로가 변경되었다는 것, 작전 중인 잠수함과 부딪쳐서 침몰했다는 것, 이런 것들은 함부로 의혹을 중계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의혹을 가진 사안인 만큼 검증은 필요하겠지만 의혹을 중계방송해서는 안 된다. 의혹 자체에 합리적 의심을 품고 확인을 거쳐서 보도해야 한다. 이런 보도를 해주지 않아 실종자 가족과 누리꾼들로부터 욕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욕은 감당해야 한다. 간절한 호소를 핑계로 확인이 안 된 것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따라야 하는 것은 진실이지 여론이 아니다.

다음은 먹지 않아야 할 욕을 먹는 경우다. 실종자 가족이나 누리꾼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줘야 한다. 정부 당국이 발표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무능한 중앙재난대책본부 때문에 영혼 없는 ‘받아쓰기’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대부분의 특종은 합리적 의심을 바탕으로 직접 정보를 찾아보는 노력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가 연출하는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구조작업’ 모습을 중계하고 있을 때 뉴스타파 등 일부 언론은 정부 발표를 현장에서 검증했다. 동원된 잠수부가 수백 명이라도 실제 수색 작업을 벌인 잠수부가 몇 명이고 몇 분 동안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취재해서 알려주었다. 이런 냉정한 보도는 중요하다. 현장에 대해서 냉정한 판단을 이끌어 대안을 찾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최선을 다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면 대안을 찾을 기회를 잃게 된다.

▲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NHK는 재난보도와 관련해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지켰다. 피해자 유가족을 근접 촬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청자와 유가족 사이의 거리두기를 통해 시청자들이 유가족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을 차단했다. 이에 반해 우리 방송은 처절한 슬픔을 있는 그대로 중계 방송해서 피해자 가족의 슬픔을 전 국민에게 전이하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국가우울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긴급히 마련해 공지했다. 우리 언론이 좀 더 사려 깊은 보도를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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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2014-05-05 17: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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