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켜있는 시신 다수’…표현은 문제, 오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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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방심위 의견진술서 주장…사망 보험금 계산 MBC도 반성 없어

세월호 침몰 관련 부적절한 보도로 물의를 빚은 공영방송들의 반성은 결국 없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8일 개최한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에서 자극적인 오보로 물의를 빚은 KBS <뉴스특보>(4월 18일 방송) 제작진은 표현상의 잘못만 인정할 뿐 오보는 아니라고 버텼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사망 보험금을 계산해 비판을 받은 MBC <특집 이브닝뉴스>(4월 16일 방송) 제작진은 “해당 보도를 두고 사망자 몸값을 따졌다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건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제작진의 일련의 항변을 들은 방심위 방송소위원들은 KBS와 MBC 보도에 대해 각각 법정제재인 ‘경고’(벌점 2점)와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다. 일부 위원들의 이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수 위원들은 두 보도가 모두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KBS 측 “‘선내에 엉켜있는 시신 다수’ 멘트 이후 구조 늘어” 주장

이날 방송소위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KBS <뉴스특보> 제작진의 입장은 일관됐다. KBS <뉴스특보>는 지난 18일 방송에서 “구조당국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을 1분 20초 가량 내보냈고, 앵커도 “선내 엉켜있는 시신이 다수”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이를 두고 자극적 언어로 오보를 전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잘못만 인정 가능할 뿐 오보는 내지 않았다는 게 제작진의 입장이다. 오히려 이 보도로 인해 다음날부터 선내 구조작업이 활발할 수 있었다고 KBS 측은 강조했다.

이날 방심소위에 출석한 정인철 KBS 보도국 뉴스제작 3부 부장은 “우리(KBS) 입장에서 볼 땐 오보보다 표현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큰 사고를 당한 실종자들의 가족과 국민 감정을 감안할 때 ‘시신이 엉켜있다’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그러나 “오보라고 보긴 어렵다”고 주장하며 “해당 멘트가 있고 다음날부터 그간 수습되지 않았던 시신들이 하루에도 30~50여구씩 수습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방송소위의 다수 위원들은 오보가 아니라는 KBS 측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엄광석 위원은 “잠수부의 얘기를 듣고선 구조당국이 발표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오보가 아닌가”라며 KBS 측의 상황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 4월 18일 KBS 1TV <뉴스특보> ⓒKBS
이에 정인철 부장은 “구조당국의 발표 여부가 아니라 엉켜있는 시신이 많이 있었는지 여부를 놓고 오보를 따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 부장은 또 “앞의 (구조당국에서 발표했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확인을 더 해봐야 한다는 멘트가 있었다”며 “핵심은 선내에 시신이 엉켜있다는 부분이 오보인지 여부”라고 거듭 강조했다.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방송사 측에서 심의해야 할 핵심 내용을 정하는, 다시 말해 심의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모양새다.

엄광석 위원은 “세계 어느 나라의 방송이건 재난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불명확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게 중요한 가치 기준”이라며 “구조당국에서 발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고 말하고 자막까지 내보낸 건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장낙인 위원도 “해경에서도 (해당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발표했다”며 오보를 인정하지 않는 KBS 측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정인철 부장은 “(KBS 보도가 오보라는 해경 발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장낙인 위원은 “구조당국이 발표했다고 (잘못 보도) 해놓고 구조당국이 (KBS 보도를) 오보라고 한 것은 인정 못하는 KBS는 대체 뭔가”라고 따져 물었다. 박성희 위원도 “구조 당국의 발표가 없었음에도 (리포트와 자막을 통해) 있다고 했으니 오보 맞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이어 “왜 (시청자들이) KBS에 수신료를 내겠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아닌 공영방송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해선 안 되지 않나. (다른 곳에서 마구잡이 보도를 해도) KBS에서 보도하지 않았으니 확인 사실이 안 된 것이라고 (시청자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낙인 위원은 KBS 1TV <미디어 인사이드>(4월 20일 방송)에서 외부 전문가뿐 아니라 KBS 기자까지 해당 보도를 두고 “오보로 확인됐다”고 인정한 것을 언급하며 KBS 측의 의견진술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정 부장은 “(<미디어 인사이드>는) 우리 기자들과 연관성 있게 일하지 않는다”며 수긍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장 위원은 KBS가 사과방송을 한 시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뉴스특보> 보도 직후부터 비판 여론이 높았음에도 5일 후인 지난 23일에야 KBS 측이 사과 방송을 했는데, 이 시점은 방심위의 심의 결정(4월 22일) 직후라는 것이다. 장 위원은 “(심의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사과를 했을까”라고 지적, 심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보여주기 식’ 사과 방송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방심위원들의 일련의 지적에도 KBS 측은 자신들의 보도가 이후 구조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KBS 기자 출신의 권혁부 부위원장(방송소위 위원장)이 “해당 보도 이후 (구조 당국의) 선내 구조 활동 강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이 있다”고 말하자 정 부장은 “그렇다. 이 멘트(선내에 엉켜있는 시신 다수)가 있고난 뒤 시신이 30~50여구씩 수습 됐다”고 답했다.

또 “그때(보도 전)까지 해경은 민간 잠수사를 동원하지 않았지만, 이 멘트가 있은 후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민간 잠수사를 더 투입해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이 조성돼 민간 잠수사들이 투입됐다”고 정 부장은 말했다. 권 부위원장도 “KBS 보도 이후 (구조 활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선실 구조작업의 계기를 만든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권 부위원장은 KBS의 해당 보도에 대해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권 부위원장을 제외한 4인의 방송소위 위원들은 모두 중징계를 주장했다. 방송심의규정 제24조의 2(재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항과 제24조의 3(재난방송의 내용)항 위반이 이유다. 김택곤 상임위원은 ‘경고 및 관계자 징계’(벌점 4점), 박성희·엄광석·장낙인 위원은 ‘경고’(벌점 2점)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KBS <뉴스특보>는 ‘경고’ 의견 다수로 전체회의에 상정, 최종 제재 수위가 논의될 예정이다.

MBC 측 “보험금 보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충격? 판단 다르다…일부에서 침소봉대 유감”

이날 방송소위에선 MBC <특집 이브닝뉴스>(4월 16일) 방송에 대한 제작진 의견청취도 진행했다. 세월호 침몰 당일이었던 이날 MBC <특집 이브닝뉴스>는 침몰한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사망 보험금 등을 계산한 내용을 전했는데, 이 보도가 방송심의규정 제24조의 4(피해자 등의 안정 및 인권 보호) 4항 가목(피해자 및 그 가족의 수치심이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내용)과 제27조(품위유지) 1항 등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이다.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이진희 MBC 주간뉴스부장은 “과거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나 아시아나 항공기 샌프란시스코 추락사고 당일에도 보험 가입여부에 대한 보도가 있었고, 당일 금융감독원 등에서 단원고 보험가입 여부에 대한 보도자료도 냈다”고 말했다. 재난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보험금에 대한 보도는 일종의 매뉴얼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부장은 또 “우리(MBC)뿐 아니라 당일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들도 보험금 관련 기사를 냈다. 오히려 보도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특집 이브닝뉴스>가 세월호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사망자의 몸값을 따진 것으로 침소봉대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진술에 권혁부 부위원장은 “방심위가 침소봉대를 한다는 것이냐”고 따져 묻자, 이 부장은 “그렇지 않다. 일부 인터넷에서 의견을 개진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 보도에 대한 비판을 ‘일부’의 의견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장은 사망 보험금 계산 보도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의 충격의 강도에 대해서도 자의적인 해석을 내놨다. 엄광석 위원이 “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해 보상금과 관련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진술자의 발언과 의견을 같이 하지만, 전례로 들었던 사건(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등)과 이번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며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이런 보도가 나가면 충격을 받았을 거란 생각을 해봤나”라고 질문한 데 대한 답변에서다.

이 부장은 “침몰 사고 직후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된 줄 알았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텐데, 이후에도 여러 충격적인 내용들이 시시각각 나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보도가 과연 얼마나 (피해자)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엄 위원은 “실종자 다수의 생사 여부를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런(보험금) 보도를 한 게 진술인은 가족들에게 별 일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다르다. 가족들에겐 정신적 충격이 컸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 4월 16일 MBC <특집 이브닝뉴스> ⓒMBC
박성희 위원도 “보도에 있어 진실과 사실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돼야 할 게 휴머니티(인간애)”라며 “(MBC 보도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다”고 꼬집었다. 또 “금감원에서 보도자료를 냈다고 다 보도를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택곤 상임위원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보상비 등에 대한 보도는 당연한 것이나, 이번 사고의 경우 실종자들이 생사불명인 채로 (침몰된 배 안에) 갇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보도임에도 정서에 거슬린다는 게 일반적 의견”이라고 말했다. MBC의 보도 내용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시점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진희 부장은 “그런 식으로 보도된 내용이 아니다”라고 맞받았고, 결국 권혁부 부위원장이 “방송심의규정은 보도 제작자가 아닌 시청자의 시각에서 해당 보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즉 시청자 중심에서 만든 것”이라고 심의의 취지를 설명하는 상황까지 갔다.

박성희 위원도 “(MBC 보도가 불쾌했다는) 민원이 있었기 때문에 심의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이 부장은 “알지만 민원이 제기된 데 대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거듭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MBC 측의 일련의 의견진술에 방심위원 다수는 문제를 제기했다. 박성희 위원은 “보도 매뉴얼 자체가 잘못”이라며 “어느 선진국에서 재난사고 발생시 보험금이 얼마인지 보도하도록 하는 매뉴얼을 갖고 있나. 그 자체로 잘못인 만큼 ‘주의’(벌점 1점) 의견”이라고 밝혔다.

권혁부 부위원장도 “보험금 보도는 실종자들의 생사가 판가름 난 뒤 있어도 늦지 않다”며 “가족들이 생존에 기대를 걸고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시점에서 이런 보도가 나감으로써 ‘언론이 이렇게 보도하는 걸 보니 희망이 없구나’는 식의,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여지가 충분한 만큼 ‘주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택곤 상임위원과 엄광석·장낙인 위원은 해당 보도 시점의 적절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보험금 보도 가치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 의견을 제시, MBC <특집 이브닝뉴스>에 대한 최종 제재 수위는 ‘권고’로 결정됐다. MBC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사망 보험금 등에 대한 보도를 한 TV조선 <뉴스쇼 판>과 뉴스Y <뉴스특보>에 대해서도 방심위는 ‘권고’ 처분을 했다.

이날 방송소위는 자신을 민간 잠수부라 밝히고 “배 안에서 (실종자들과) 대화를 한 잠수부도 있다”, “(정부 관계자가)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한다” 등 거짓 발언을 한 여성을 인터뷰 한 MBN <뉴스특보>(4월 18일 방송)에 대해선 법정제재인 ‘경고’(벌점 2점) 처분을 주장했고, 사고 당일 구조 작업이 진행 중임에도 세월호 침몰과 관련 없는 시신 운구 장면을 14초가량 방송한 MBN <뉴스공감>(4월 16일 방송)에 대해선 ‘권고’를 의결했다.

또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앵커가 “친구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어 논란이 된 JTBC <뉴스특보>(4월 16일 방송)에 대해 방심소위는 ‘주의’(벌점 1점) 처분 의견을 냈다. 한편 방송소위는 세월호 침몰 현장의 취재진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의 거친 욕설이 그대로 30초 가량 그대로 전파를 탔음에도 시청자에 대한 상황 설명 등을 하지 않은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4월 17일 방송)에 대해선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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