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내는 ‘국민의 보도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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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내는 ‘국민의 보도지침’
검은티행동·시민들, 주요 언론사 앞에서 시위…‘정부 받아쓰기’ 언론 규탄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4.05.10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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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는 필요 없다!”, “언론이 아이들을 죽였다.”, “유족 앞에 사죄하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9일 오후 광화문에 위치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서울신문> 그리고 여의도에 자리 잡은 공영방송 KBS 앞에는 언론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 들끓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더 이상 받아쓰기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보도하라는 내용의 ‘국민들의 보도지침’을 이들 언론사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전달했다.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9일 오후 2시, 네 명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시작한 이른바 ‘검은티셔츠 행동’(이하 검은티행동)에 참여하기 위해 100여명의 시민이 청계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태 이후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함과 이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장만 ‘받아쓰기’하며 국민에게 혼란을 안겨준 ‘언론’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 시민들이 <동아일보> 사옥 맞은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국민의 보도지침을 낭독하고 있다. ⓒPD저널
▲ 검은티셔츠 행동과 시민 100여명이 <조선일보>로 향하는 중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앞에서 경찰 병력 수십 명에 의해 가로막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 ⓒPD저널
“경쟁적·자극적 세월호 취재, 충격적이었다”

검은티행동을 기획한 편집디자이너 권순영 씨(35)는 “세월호 사건으로 정부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고, 언론보도도 처음부터 잘못돼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줬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행동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검은색 티셔츠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검은색 티셔츠 뒷면에는 “구조를 하라니깐 구경을 하고 / 지휘를 하라니깐 지랄을 하고 / 보도를 하라니깐 오보를 하고 / 조사를 하라니깐 조작을 하고 / 조문을 하라니깐 연출을 하고 / 대책이 뭐냐니깐 모금을 하고 / 책임을 지라니깐 남탓을 하니 /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하라”는 서수영 작가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권 씨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한 게 가장 큰 문제고, 생존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경쟁적이고 자극적인 취재를 한 것 역시 충격적이었다”며 “SNS를 보면 진실을 알 수 있지만 SNS를 안 하고 주요 방송사들의 보도만 보는 사람들은 구조 작업 잘 되고 있고, 대통령은 사과했고,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본 동영상 속 유족들의 이야기는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권 씨는 현장과 다른 언론의 모습을 보며 국민이 외쳐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 사이에도 세월호 사건 이후 우왕좌왕한 정부와 함께 오보를 남발한 언론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신호영 씨(52)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폭력에 가까운 행동”이라며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존재하는데, 이건 국민이 없는 공황상태”라고 비판했다.

신 씨는 “언론도 문제다. 언론은 정직하고 공정해야 하는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일부 언론은 현 정권에 유리한 내용만 보도하기도 했다”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국민은 더욱 분노하고 정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이 정확하게 전달해줘서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시민은 “언론이 제대로 사고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팩트에 근거한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 그런 노력의 흔적이 안 보였다”며 “한 명이 이야기하면 자기들 안에서 퍼트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비판했다.

▲ 검은티셔츠 행동에 참가한 한 시민이 “너희는 필요 없다”가 인쇄된 노란 종이 뒤에 “언론이 아이들을 죽였다”는 내용의 문구를 적어 참여하고 있다. ⓒPD저널
“언론은 눈과 귀를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검은티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청계광장에 모인 후 바로 앞에 있는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프레스센터 및 <서울신문>, 대한문을 지나 <조선일보>로 향했다. 이들은 각 언론사 앞에서 검은티행동 주최측이 준비한 ‘국민의 보도지침’을 큰 목소리로 외치며 진실보도의 사명을 다할 것과 받아쓰기 보도 중단하고 파렴치한 망언들을 모두 공개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늘 우리는 묻는다. 왜 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가. 국민보다 대통령이 소중한가. 기레기 언론은 눈과 귀를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며 “우리는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정권의 나팔수 노릇하는 언론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반성하지 않는 언론, 파렴치한 언론, 정권 앞에 침묵하는 언론은 필요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들은 “구조를 기다리면서 몸부림치던 아이들 앞에,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 속에 KBS로, 청와대 앞으로 달려오신 유가족 앞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 앞에, 참담한 현실을 살아가는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게 언론의 사명을 다하라”라며 “우리는 침몰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세월호의 언론보도부터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 검은티셔츠 행동과 시민들이 경찰 버스과 경찰 수십명에 의해 가로막힌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국민의 보도지침을 낭독하고 있다. ⓒPD저널
“KBS, 염치없는 수신료 타령 그만하라”

검은티행동에 모인 시민들은 한 목소리가 되어 ‘국민의 보도지침’을 낭독했지만 <조선일보>로 향하는 중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앞에서 경찰 병력 수십 명에 의해 가로막혀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경찰 측은 “길이 좁고, 우리는 신고 내용대로만 할 뿐이다. 여기서부터는 집회신고를 20명만 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검은티행동 관계자는 “집회신고가 20명으로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 측에서 그 이상은 받아주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들은 20여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조선일보> 앞에서 ‘국민의 보도지침’을 낭독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티행동은 <조선일보> 관계자에게 보도지침을 전달하려 했으나, 휴일이라 아무도 없다며 보안책임자가 대신해 나오자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한 시민은 <조선일보> 앞에서 “길은 경찰이 막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길을 막는다고 한다. 기레기 뿐 아니라 경레기(경찰+쓰레기)도 필요 없다”며 “어제(9일) 청와대 앞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에게도 이렇게 길 막고 무례하게 굴었다. 나중에 경찰들도 일정이 끝나면 안산에 가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성토했다.

<조선일보>에서 나뉘어 ‘국민의 보도지침’을 외친 시민들은 이후 지하철을 타고 5호선 여의도역에서 내려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KBS본관 앞으로 이동했다. 이들의 경로를 미리 파악한 경찰은 여의도 공원 입구부터 이들을 따랐다. KBS본관 앞에는 이미 경찰 버스 2대와 경찰 수십 명이 본관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시민들은 다른 언론사 앞에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도지침을 낭독하며 KBS의 보도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KBS는 들어라! 박근혜 헌정방송 KBS에는 2500원도 아깝다. 국민의 허락 없이 수신료 인상 어림없다”며 “공영방송, 국가재난주관방송사 KBS 자격 없다. 염치없는 수신료 타령 그만하고 부끄러운 정권 나팔수 방송부터 그만둬라”라고 규탄했다.

KBS를 끝으로 검은티행동과 함께 시민들은 오후 6시 경기도 안산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리는 국민촛불켜기에 참여하기 위해 안산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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