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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킹’ PD 석연찮은 교체…작가 입김·시청률·간접광고 압박 심해

MBC가 <호텔킹>(연출 김대진·장준호, 극본 조은정) PD를 일방적으로 교체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단순히 ‘PD와 작가의 불화설’로만 치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드라마 시장에서 ‘작가의 입김’뿐 아니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연출자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8일 MBC가 “일신상의 이유로 <호텔킹> 김대진 PD가 하차한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김대진 PD가 방송 10회 만에 갑작스레 교체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PD와 작가 간 의견차가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김 PD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요구로 갑작스레 교체됐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MBC 측과 연출자가 밝힌 사유가 엇갈리면서 드라마 평PD들은 지난 13일과 14일 세 차례에 걸쳐 긴급 총회를 통해 사태의 경위를 공유하고 최창욱 드라마 국장과의 면담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드라마 평PD들은 ‘김대진 PD 즉각 복귀’를 요구하는 항의 성명을 냈고, 오는 22일에는 장근수 드라마본부장과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다.

▲ MBC <호텔킹> ⓒMBC

드라마 평PD들은 국장과의면담한 뒤인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처음에 알려진 ‘PD의 일신상 이유’ 따위는 없었다. 단지 작가가 연출을 교체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본을 쓸 수 없으니 결방과 연출 교체 중 택일하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라며 “어떤 잘못 없이 PD를 일방적으로 교체하는 식의 의사 결정은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드라마 PD나 작가가 교체되는 일은 이전에도 가끔씩 있어왔다. 방송사들은 드라마의 순항을 위해서 제작진 교체가 필요하면 방영 전에 매듭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방영 도중에 제작진을 교체하기도 한다. 지난 2010년 SBS <대물>은 방송 초반에 PD와 작가의 의견차로 작가에 이어 PD까지 모두 교체됐다. KBS <감격시대> 작가도 방영 도중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하지만 <호텔킹> PD 교체에 대해 드라마 PD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이유가 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도중에 명확한 사유 없이 ‘작가의 입김’에 따라 교체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과거 드라마를 연출하는 PD들이 드라마 제작 현장을 진두지휘했다면 현재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 시장에서 PD들의 연출권이 예전만 하지 못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KBS 드라마국의 한 PD는 “PD와 작가 모두 작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파트너이므로, PD에게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면 교체할 수 있지만 PD와 작가의 트러블로 방영 도중 PD를 교체한 이번 사건은 흔치 않은 일로, 연출자의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드라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검증된 미니 시리즈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3억원을 훌쩍 넘는데다가 제작비의 60~70%가 스타급 배우와 작가에게 쏠려있어 연출자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진 실정이다. 드라마 PD들은 유명한 작가들의 입김을 비롯해 치열한 시청률 경쟁, 과도한 간접광고(PPL) 등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드라마를 연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유명 작가가 ‘드라마 편집권’을 행사할 때도 있다. MBC 드라마 PD는 “어떤 작가의 경우 편집실에 직접 와서 편집에 일일이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서로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해서 시너지를 발휘하는 게 드라마인데 일부 작가가 PD의 연출 방향을 믿지 못하겠다며 도를 넘어선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른바 ‘큰 작가’들이 작가라기보다 ‘기획자’처럼 행동하는 건 외국 드라마 시장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PD와 작가 간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광고 수입과 직결되는 시청률 문제도 드라마 PD들이 신경 써야 할 필수 요소가 됐다. 최근 일부 드라마를 제외하고 시청률 10%대를 넘기기 어렵게 되면서 실험적인 연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현실이 됐다. 간접광고 역시 연출권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난 2009년 방송법 개정으로 간접광고가 합법화됐지만 제작사에서 드라마의 흐름과 상관없이 특정 브랜드가 노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지면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산업 논리에만 치우치면서 PD의 연출권이 좁아진 현실에 대해 MBC 드라마 PD는 “PD입장에선 사전제작제 시스템이 아닌 상황에서 드라마를 잘 만들기 어려운 요소들이 더 많아 질까봐 우려가 크다”며 “드라마 시장에 투입되는 돈의 단위가 커지면서 이름값 있는 제작진 간 힘겨루기로 시청자가 피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남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도 “<호텔킹> PD 사태는 드라마 제작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며 “경영진이 작가와 PD의 역할을 전체적으로 조율하지 않았다. 경영진이 드라마의 완성도보다 시청률을 쫓다보니 조급하게 (PD 교체를)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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