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간 국민참여재판, MBC 파업 170일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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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 국민참여재판, MBC 파업 170일을 말하다
[분석] 배심원단 6대 1 ‘무죄’ 판결의 의미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4.05.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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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본부)의 2012년 170일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는 무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MBC본부는 지난 1월 정영하 전 MBC본부장 등 노조원 44명이 MBC를 상대로 낸 해고 및 정직 무효 소송과 MBC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연이어 승소한 데 이어 국민참여재판에서도 이겼다. 특히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유의미하다.

사측, 파업의 도화선 제공

지난 26일 남부지방법원 대법정에는 판사 3명, 예비 배심원 1명을 포함한 8명의 배심원단, 검찰 측 검사 5명, 피고 측 변호인 1명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정영하 전 MBC본부장과 집행부 4명(강지웅·이용마·장재훈·김민식)이 자리했다. 재판은 오전 11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새벽 4시 30분까지 장장 17시간가량 진행됐으며 검찰 측과 변호인 측 간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졌다.

이날 재판의 핵심은 MBC본부가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공정방송 실현을 내건 170일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느냐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31일 정 전 MBC본부장과 집행부에게 △파업에 따른 업무방해 △출입문 봉쇄에 따른 업무방해 △재물 손괴(현판·기둥에 페인트 문구) △김재철 전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 등 비밀 누설(정보통신망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은 최근 대법원이 변경한 업무방해죄 판례를 근거로 하되 해석이 갈렸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철도노조가 2006년에 진행한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를 판결하면서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전후 사정과 경위에 비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며 업무방해죄의 요건을 강화했다.

검찰 측은 MBC본부가 임금, 복지 등 근로조건이 아닌 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을 파업의 목적으로 내세웠고, 총파업 찬반투표 후 조정절차 없이 파업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기 파업으로 회사가 큰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무한도전> 등 MBC 프로그램이 결방 또는 단축된 방송이 986회에 달하고, 광고손실 547억, MBC 브랜드 가치는 890억원이 하락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단체협약으로 보장된 공정방송협의회 개최 요구를 사측이 수차례 거부한 데 이어, 불공정 보도에 문제를 제기한 박성호 전 MBC 기자회장을 앵커에서 보직 해임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사측이 파업의 도화선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 변호를 맡은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MBC에선 2011년 내내 방송 공정성을 둘러싼 노사 대립이 존재해왔다”며 “노조는 그해 11월 단체협약에 따라 보도국 쇄신 인사를 촉구하고, 수차례 총파업 사전 예고를 했던 만큼 MBC는 노조의 파업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MBC본부의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신 변호사는 “파업 참여자들은 7개월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켰고, 오히려 2012년 4월 11일 총선 당시에는 유노무임을 했다”며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대한 자유를 침해한 적도 없어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확인한 파업의 정당성

이날 재판정에서 공정방송 실현을 내건 MBC 파업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MBC본부는 사측이 2011년 이후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협의회 정례회를 단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MBC본부는 또 2011년 총 14회에 걸쳐 정례 및 임시 공방협을 사측에 요구했지만, 네 차례만 개최돼 제작거부 및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최승호 전 MBC PD는 “단협 내 공정방송 조항은 근로조건이라는 용어로 규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명확한 것”이라며 “공정방송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노조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인에게 공정방송은 근원적인 근로조건이고, 이게 무너질 때 서로 힘을 합쳐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이진숙 보도본부장(전 기획홍보본부장)은 “노조가 공방협 개최를 요구했고, 회사는 사장 대신 부사장을 포함해 노사 동수 5명이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노조는 사장이 나오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주장해 열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신인수 변호사는 “방송법 4조와 6조에 따라 회사는 공정방송을 실현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며 “사측은 공정방송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구성원의 의견을 억압해 근로조건을 악화시켰기 때문에 노조가 쟁의행위로 나아가는 건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 2012년 MBC본부 170일 파업을 이끈 정영하 전 MBC본부장과 집행부 4인(이용마, 강지웅, 김민식, 장재훈)이 27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장장 17시간에 걸쳐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맨 좌측부터 정영하 전 MBC본부장, 이용마 전 홍보국장, 강지웅 전 사무처장, 김민식 전 편제부문 부위원장,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의 모습. ⓒ언론노조

김재철 법인카드 내역공개도 ‘무죄’

17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을 지켜본 배심원단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 6명, 유죄 1명, 출입문 봉쇄로 인한 업무방해와 김 전 사장의 법인카드 내역 공개에 따른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전원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다만 현판과 기둥에 페인트로 구호를 적은 행위에 대한 재물손괴 혐의는 6명이 유죄, 1명이 무죄로 봤다.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정영하 전 MBC본부장은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거꾸로 가고 있는 방송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공정방송을 잘 감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여한 것”이라며 “MBC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직 많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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