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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PD대상 수상자 연수기]

제26회 한국PD대상을 수상한 PD 14명이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로 올해의 PD상을 받은 정한성 PD가 8박 9일 동안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유니버셜스튜디오와 그랜드캐년, 라스베가스 등을 보고 느낀 바를 연수기에 담았다. -편집자주-  

사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매일 대여섯시간은 버스를 탔으니 ‘관광’이라고 해야 맞나? 사막은 처음이었고, ‘관광’도 최초였다. ‘사막관광’이 그다지 내키진 않았는데, 하필이면 40~50 대 아저씨 선배님들과 동행해야 했다. 사막과 아저씨와 관광버스라니….

‘공짠데 할 수 없지’라고 체념부터 하는 나. 말없이 태블릿에 ‘미드’와 e북과 MP3를 가득 챙기는 나. 하지만 미드와 e북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사막은 생각보다 훨씬 멋졌고, 동행한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기분 좋은 쿨가이들이었다. 그래도 여러 곡의 노래를 챙긴 건 잘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절로 음악을 찾기 마련이니까. 사막을 건너는 내내, 나는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흥얼 거렸다. 하여 내 생애 첫 ‘사막관광’은 몇 곡의 ‘브금’(BGM)과 함께 근사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 정한성 CBS PD.
사막의 초입에서, 조슈아 트리(Joshua Tree)를 처음 보았다. 짤뚱하지만 존재감 있는 독특한 느낌의 나무, 조슈아 트리.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U2의 5집 앨범 타이틀이 바로 죠슈아 트리인데, 그 앨범은 결국 U2의 최대 히트작이 됐다. 버스 안에서 보니, 조슈아 나무가 드문드문 자라는 적막한 풍경이 무척 멋져 보였다.

음, U2가 반할 만하군. 차안에서 조슈아 트리를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엉뚱하게 KBS의 K선배 뒷통수만 찍게 됐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까지 탔으니 훨씬 더 기분이 좋아야 할텐데, 어째 뒷모습이 배경처럼 적막한 건가. 사막을 건너는 이 순간에도 KBS의 동료들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에 아마 맘이 편치 않은 가봐. 선배의 옆모습과 배경으로 흘러가는 사막을 보며 스스로를 위해 선곡을 했다. 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우리가 지나가는 사막의 이름은 모하비. 오래전부터 이 사막에서 살아온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모하비 인디언들은 부족의식이 각별한 사막의 전사들이었는데, 우리가 잘 알 듯, 이젠 사막의 주인이 아니다. 몇 군데 인디언 보호구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관광객들은 면세 담배나 술 따위를 사러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리곤 한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도 사막 어딘가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찾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어떤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한 선배가 놀린다. 나이가 몇인데 그런 노래를 부르니 너는? 응? 38살이 ‘Indian Reservation’을 부르면 이상한가,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인디언의 모습을 찾았는데, 몇 안되는 직원들은 모두 백인이라 약간 실망.

실제 인디언들을 만난 건 며칠 뒤, 한 중국음식점이었다. 모하비 인디언의 후예들이 중국집에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하나같이 몸집이 비대했다. 뚱뚱한 사람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한때 사막을 호령했던 날렵한 전투민족이 시골뷔페에 모여 닭고기를 먹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서글프더라.

평생 못 잊을 사막의 일몰을 봤기 때문일까. 여행 세 번째 날엔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날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알코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해발고도가 높으면 금방 취한다는데, 여러 잔을 비운 후에도 PD들은 잠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추측컨대, 네바다의 맑은 밤공기와 싸고 맛있는 맥주와 암울한(?) 환경에 대해 터놓고 얘기 할수 있다는 사실이 시너지를 일으켰기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도 라디오 피디 몇몇은 난데없이 선곡 배틀을 했다. 각자 스마트폰에 담긴 노래로 사막의 밤에 어울리는 노래를 서로에게 들려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골여관방에서 검정치마, 신촌블루스, 루 리드의 노래를 함께 들었던 우리. 불콰해진 얼굴의 라디오 피디 세명은 각기 스마트폰을 높이 쳐들고, 자신의 선곡이 ‘갑’이라고 주장했다. 모하비의 밤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 뭐였는지, 사막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사막여행의 끝판왕은 바로 라스베가스. 며칠간의 시골여행 끝에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야경과 분수쇼를 보고 난생처음 슬롯머신도 해봐야지. 하지만 LA에서 현찰을 털어 비싼 일렉기타를 사버리는 바람에 수중의 돈이 간당간당했다.

도박 강행이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 하는데, 참으로 적절하게 베가스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영화 <행오버>가 생각났다. 영화의 주인공만큼은 못 놀겠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가이드의 조언대로) 밤 11시경 엘리베이터 근처의 슬롯머신을 공략했는데, 고작 30불을 따고도 얼마나 기쁘던지! 그러고 보니 영화 행오버에선 이런 노래도 흘렀었다. It’s now or never!

여행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까지 몇시간 짬을 이용해 LA시내의 아메바 레코드를 찾았다. 아메바레코드는 LA와 샌프란시스코에만 있는 음반가게인데, 규모도 크고, 음반 가격도 착해서 음반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믿거나 말거나, 스캇 맥킨지의 샌프란시스코를 개사한 노래까지 있다. For those who come to San Francisco~ Be sure to get~ some songs from amoeba~ 중고CD는 1.99달러부터 시작하는데, 세장을 사면 무려 한 장이 공짜! 9달러에 가진 폴 사이먼의 박스셋을 포함 득템득템득템에 성공했다. MP3와 디지털의 시대, 음반을 사는 사람이 귀해진 21세기에도 아메바레코드여, 부디 영원하라.

문득 모하비 사막에서 본 신기루가 떠오른다. 분명히 큰 물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자리에 가면 물 비슷한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신기루를 보고 나니, 신기루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들 가득한 즐거운 사막관광이라니, 꼭 신기루 같지 않나요? 같이 여행한 형님들! 누님들! 덕분에 신기루 같은 좋은 추억을 얻었습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만나서 사막의 밤을 추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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