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주민들, 언론 때문에 두 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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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주민들, 언론 때문에 두 번 울었다
강제 철거 인권유린 외면…일방통행식 국책사업 문제 지적 없어
  • 방연주 기자
  • 승인 2014.06.12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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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가 지난 11일 공권력을 투입해 송전탑 반대 주민들 농성장 5곳을 철거한 가운데 지상파 방송사인 MBC와 SBS는 경찰과 주민 간 충돌로 전하는 데 급급했다. 9년간 끌어온 밀양 송전탑 문제가 갈등의 조정 과정이 생략된 채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파국으로 치닫았는데도  말이다. 정부가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농성장 철거에 들어갔다는 비난과 철거 과정에서 인권 유린이 속출했지만 KBS 보도에서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나머지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보수 일간지 역시 ‘일방통행식’ 국책사업으로 빚어낸 갈등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검찰과 경찰의 금수원 압수수색 상황을 보도하는 데 주력했다.

밀양시는 이날 오전 6시부터 경찰과 공무원 2500명의 공권력을 투입해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농성장을 모두 철거됐고,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 공사에 착수했다. 지난 2005년 정부와 한전이 밀양 송전탑 건설을 공표한 이후로 주민들은 송전선로 지중화 추진 및 기존 345kV 선로를 통한 우회송전 등 대안 모색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이 비용 문제를 이유로 주민과 대화와 타협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밀양 송전탑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MBC, SBS

이처럼 밀양 송전탑 사태가 9년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언론의 외면을 받아온 가운데 MBC <뉴스데스크>와 SBS  <8 뉴스>에서는 이번 사태의 쟁점을 분석하기보다 철거 현장에서 충돌 소식을 전하는 데 그쳤다. SBS<8뉴스>는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주민 격렬 반발’라는 리포트를 내보내기 전에 앵커가 “건강의 위해성과 재산권 침해를 걱정한 주민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라고 주민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 사태의 경위를 심층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도 ‘밀양 송전탑 '움막 5곳' 철거…주민들 분뇨 뿌리며 저항’이라는 리포트에선 주민들이 농성장 철거에 저항하는 모습을 위주로 보도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이나 대책위 대변인의 인터뷰는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MBC는 “한전은 현재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가운데 93.3%인 28개 마을이 보상에 합의했고 송전탑 69기 가운데 68%인 47기를 완공했다고 밝혔다”며 한전 측의 입장을 리포트 말미에 전했다.

KBS <뉴스 9>와 JTBC <뉴스9>에서는 철거 현장 소식을 전하는 데 한 발 나아가 쟁점을 부분적으로 짚었다. 특히 길환영 KBS 사장의 해임제청안이 지난 10일 처리된 뒤 방송된 KBS <뉴스 9>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부적절한 발언 등을 단독 보도한 데 밀양 송전탑 사태도 두 꼭지에 걸쳐 내보내는 등 주요 뉴스로 처리했다.

KBS는 ‘밀양 송전탑 농성장에 공권력 투입…부상자 속출’과 ‘밀양 송전탑 사태 9년 갈등…쟁점은’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사태의 쟁점을 다룬 리포트에서 “공사가 강행된 지난 9년 동안 전쟁터처럼 변한 밀양 30개 마을 노인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밤낮없이 공사 중단 요구 시위에 나섰다”며 “공사는 11차례나 중단되고 주민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한전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또 “갈등 8년 만인 지난해 9월에야 한전은 개별보상책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이마저 거절했다”며 “건강과 재산권을 맞바꿔야 하는 보상금은 한 가구당 평균 4백여만 원에 불과했다. 공권력으로 밀어붙인 밀양 송전탑 현장은 주민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며 한전의 보상 문제를 꼬집었다.

이어 KBS는 철거 현장에서 빚어진 인권 유린을 짚기도 했다. KBS는 “반대대책위원회는 경찰이 불법 행위를 하지 않은 주민을 끌어내고, 부상자 구호 조치도 소홀했다고 주장했다”는 최민식 대책위원장의 인터뷰를 실은 뒤 농성장 철거 과정에서 공권력의 인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 조사할 방침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 KBS <뉴스 9> ⓒKBS

JTBC <뉴스9>는 ‘밀양 송전탑 농성장 강제철거 충돌…실신·부상 잇따라’라는 리포트에서 “한전이나 정부가 시간을 두고 반대 주민들을 좀더 설득하거나 대화에 나섰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해 한전 고위관계자가 아랍에미리트 원전수출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수출용 모델인 신고리원전 3호기를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고 밝힌 적이 있어 단지 전력난 해소 때문이라는 한전 측 설명을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 일간지들은 밀양 송전탑 농성장 철거 사태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반영하는 대신 이날 오전 검찰과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작전을 벌이기 위해 안성 금수원을 2차 압수수색한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달했다. <세계일보>는 1면과 5면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도 1면과 12면에서 두 꼭지 기사를 할애해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14면에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고, 12면에 유병언 전 회장과 관련한 기사를 네 꼭지를 실었다. 검경의 금수원 압수수색 현장을 담은 ‘땅굴 탐지기-헬기 투입하고도…김엄마-신엄마 못잡아’, ‘카메라 150대…침실엔 대형금고…스위트룸 접견실’, ‘목포 일부 신도 자취 감춰…밀항 차단 비상’ 등의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12면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5곳 모두 철거’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지만, 공권력의 농성장 철거 진행 과정과 한전의 송전탑 건설 현황을 전하는 데 그쳤다. 중앙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정의당, 환경운동연합 등 100명이 주민들과 함께 저항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 <한겨레> 2014년 6월 12일자.

그러나 <한겨레>는 1면과 5면에서 현장 르포 기사를 비롯해 밀양 송전탑 사태의 전말과 향후 전망을 분석한 기사를 비중있게 실었다. ‘한전, 사업 초기 주민과 대안협의 외면해 사태 키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민들은 대책 마련을 위한 대화를 요구하는데 정부와 한전은 국책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상을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도 6면 기사에서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설득작업에 나서는 ‘일방통행식’ 사업방식이 문제였다”며 “이 과정에서 한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앞으로는 한전이 내규를 바꾸며 마을 공동보상에서 피해가구에 개별보상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국책사업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과제로 남아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일보>는 ‘노인 끌려가는데…뒷짐 진 인권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철거 현장에서 소극적 대응을 비판했다. 한국은 “이날 각종 충돌 현장에서 인권위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70~80대 노인들이 끌려나오고 주민들이 목에 걸고 있던 쇠사슬이 강제로 끊기는 등 여러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인권위는 경찰을 적극 제지하지 못했다”며 “그저 간간히 자제를 요청하는 호루라기를 불 뿐이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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