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신료 제도 훼손하는 강제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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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국영철도에 반대하지 않지만 (아니 도리어 선호하지만) 국영방송이나 관영방송은 반대한다. 일반조세를 통해 KBS 재원을 확보하면 국회는 매년 예산에 관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KBS는 관영방송의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바로 여타 복지 서비스와 다른 공영방송의 특수한 사명 때문에 만든 제도가 바로 TV수신료이다. 그런데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수신료를 강제 납부하는 제도는 수신료의 원래 역할을 훼손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신료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영방송에 “가장 적합한 재원”으로 일컬어진다. 첫째, 수익자부담원칙이 지켜진다. 둘째, 시청자와 방송사업자 상호 간에 책임의식이 생긴다. 셋째, 정부예산과 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게 되므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의 통제와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유럽 국가들의 3분의 2가 공영방송 수신료를 받고 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분의 1 정도가 수신료를 받고 있다.

공영방송의 최선의 모델로 일컬어지는 영국 BBC를 살펴보자. BBC도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가구별로 매년 145.5 파운드를 받는다. 이는 BBC의 예산 대부분(약 80%)을 차지하고 있다. 수신료 납부는 법으로 강제되고 있고 수신료를 내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구류를 살아야 해서 미납률은 5% 정도이다. BBC는 수신료 추징을 위해 TV라이센싱이라는 추심업체와 계약해 전체 수입액의 3% 정도를 추심 비용으로 쓰고 있다. BBC의 문헌들을 보면 “수신료 납부자의 이익”을 최선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을 29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5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KBS 수신료 인상 ‘날치기’ 상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언론노조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바로 BBC의 수신료는 우리나라처럼 ‘강제납부’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강제납부’는 ‘납부의무’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기료가 납부되는 자동이체계좌에서 수신료가 강제로 납부되고 있다. BBC는 납부의무만 있을 뿐 물리적으로 돈을 직접 빼가지는 않는다.

강제납부 여부는 공영방송과 시청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즉 공영방송이 ‘갑’이 되는가 아니면 공영방송과 시청자가 건강한 상호 책임성의 관계를 형성하는가의 문제다. 시청자들이 납부 거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 기회마저 없다면 공영방송은 객관적으로 볼 때 시청자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청자들이 공영방송의 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수신료는 강제 납부된다. 시청자는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상황 속에 놓이는 것이고, 방송사와 시청자 사이의 관계는 억압적인 관계가 된다.

구태여 비교하자면, 수신료의 통합징수는 모든 도로에 최소한 시속 110㎞의 속도제한이 있다고 해서 모든 자동차 액셀의 최고 속도를 110㎞로 한정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운전자에게 순간적으로라도 110㎞를 초과하는 속도로 밟을 자유를 물리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것은 운전자들의 행태를 연구해 적절한 제한속도를 정하는 사회적인 실험과 담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수신료 강제 징수는 수신료를 성실히 또는 불성실하게 납부하는 행태를 통해 공영방송의 질과 적절한 수신료를 설정하는 사회적 담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공정성을 인정받던 일본 NHK도 전액 수신료로 운영되며(매년 13,600엔) 강제납부를 하지 않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기업관련 스캔들에 연루되어 수신료 미납률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추심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엔 NHK 회장의 망언에 반발한 시청자들이 수신료납부 거부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청자와 KBS와의 관계보다는 일본 시청자와 NHK와의 관계는 훨씬 더 건강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터키, 그리스만이 수신료를 전기료와 통합 징수하고 있고 터키와 그리스 모두 이와 같은 통합 징수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신료도 틀림없이 세금이고 공영방송이라는 복지제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원이다. 그런데 세금을 무조건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의감과 도덕 원리에 부합하여 걷는 것이 필요하다. 전기를 끊는다는 위협으로 수신료를 받아가는 것은 국민을 자신의 양심의 자유에 반하게 공영방송의 우월적 지위에 복속시키는 것이며 공영방송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글쓴이 박경신 교수는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이며 방송통신심의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맡으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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