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잊어선 안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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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잊어선 안 되는 것들
  • 김한기 청주방송 PD
  • 승인 2014.07.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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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참혹했던 진도 앞바다로부터 71일 만에야 학교로 돌아온 단원고 아이들의 팔목에는 ‘리멤버 0416’(remember 0416)이라고 적힌 노란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일면 역설적인 다짐이다. 그날의 참혹했던 순간순간은 뇌리에 깊게 팬 상처로 새겨졌을 것이고, 그 기억은 틈만 나면 아이들의 마음을 난폭하게 난도질하고 있을 텐데도 아이들의 다짐은 ‘기억하자’이다. 상처를 자꾸 들추지 말고 자신들을 평범한 18세 소년 소녀로 대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희망을 전하면서도 세상에 그날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잊고 싶은 일이 있지만 반드시 기억하고자 하고 꼭 기억되었으면 하는 희망이 공존한다. 기억과 관련해서는 어찌 보면 역설적인 아이들의 이 희망 속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가 갖춰야 할 기억의 윤리가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현장검증 자리에서 한 생존자로부터 어이없는 증언이 제기되었는데, 어렵사리 구명보트에 올라타는 자신에게 한 해경이 구조현장을 사진에 담아야 하므로 다시 바다로 뛰어들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막상 진상규명에 반드시 필요한 각종 기록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삭제되고 편집되는 일이 빈번했음을 상기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일그러지고 추악한 ‘기록정신’이다. 온전한 기록의 윤리는 온전한 기억의 윤리로부터 비롯된다고 봤을 때, 이로부터 우리 사회가 견지하고 있는 기억 윤리의 전반적인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

▲ 지난 5월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차 범국민 촛불행동 참가자들이 행진을 마친 뒤 서울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노컷뉴스
그야말로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언론의 주요한 사명 중 하나이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기자는 세월호 참사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71일 후 힘겨운 마음으로 학교에 돌아온 생존 학생들의 첫마디는 다른 것도 아닌 언론으로부터 얻은 상처의 토로였다. 이는 한 번쯤 그대로 가슴에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많은 기자가 우리를 둘러싸 사진을 찍고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 수도 질문에 대답할 상황이 아닌데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바빴습니다. 아직도 기자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떠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가 저희에겐 다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팽목항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기 전까지도 많은 기자가 사진을 강제로 찍었습니다. 싫다고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촬영을 강행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카메라 뒤로 보이는 한 기자의 웃는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진도항으로 이동해서도 저희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기자들을 차단하지도 않고 저희를 방치했습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많은 기자가 인터뷰를 권유했고 그 역시 친구들에게는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친구들의 생사도 모르는 우리에게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론이 저지른 여러 잘못을 나열할 필요도 없다. 결정적 오보를 했고, 권력에 아첨하느라 축소하고 더러는 미화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진도 현장에서 철수했다. 그 시점이 시의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언론의 참사이기도 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큰 상처로 남을 원초적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기자는 공포가, 카메라는 상처가, 취재행위는 사리사욕이나 채우려는 행위가 되었다. 자신의 참사 앞에서 웃음 띤 기자의 얼굴은 평생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김한기 청주방송 PD
이제 언론은 모든 재난 앞에서 표정관리를 할 것이다. 함부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카메라 뒤에 숨어있던 ‘웃는 얼굴’의 잔인한 기억을 지울 순 없다. 요란한 취재전쟁 후엔 기억의 윤리마저 저버리는 행위가 계속되는 한은, 참사현장에서의 취재행위가 진정한 기록과 기억을 위한 것임이 납득되기 전까지는, 진짜 세월호 보도는 이제부터라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 언론은 두고두고 잔인한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무엇을 내려두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리멤버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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