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실패의 경험 꺼내 드니 글이 술술 ~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PD 글쓰기 캠프

지난달 30일 제천 시내에서 20㎞ 남짓 떨어진 남짓 E 리조트에 소속과 경력이 다양한 PD 14명이 짐을 풀었다. PD교육원이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PD 글쓰기 캠프’에 참여한 PD들이었다. ‘PD글쓰기 캠프’는 ‘PD의 생각, 창조,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4일까지 5일 동안 이어졌다. 전쟁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산속에서 오로지 ‘글밭 가꾸기’에 몰두한 시간이었다. ‘PD 하계 글쓰기 캠프’의 현장을 담아봤다.

“칼럼 쓰기는 ‘나는 과연 누구인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주장이나 주관을 먼저 펼치면 뻔한 글쓰기가 될뿐더러 민망해지거든요. 나만 아는 경험을 글의 소재로 발전시키는 것이 요령입니다.”

캠프 셋째 날인 7월 2일 캠프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글쓰기를 공유하는 시간. <PD저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는 김민식 MBC 드라마 PD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뻑과 굴욕을 오가며 해학적인 칼럼을 선보인 김 PD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 등 4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칼럼론은 시트콤과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쌓은 경험이 토대가 됐다.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일정한 거리두기거든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에피소드를 객관화해보면 다른 사람이 못 보는 시각과 통찰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글의 소재로 녹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교육생의 질문에 김 PD는 ‘특급 노하우’를 공개했다. “피드백에 신경 쓰진 마세요. 얼마 전에 JTBC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선배를 만났는데 PD가 대중의 눈치를 보면 PD 100명이 만드는 작품이 모두 똑같아진다는 조언을 해주더군요. 남의 평가에 신경 쓰다 보면 글을 못 씁니다.”

▲ 지난 2일'PD글쓰기 캠프'에 참여한 PD들이 글쓰기 노하우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PD저널
김 PD에 이어 글쓰기 노하우 전수에 나선 손현철 KBS PD도 <PD저널>에 기명 칼럼을 게재하고 있지만 글의 주제와 분위기는 김 PD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손 PD가 연재하고 하고 있는 ‘스마트 TV'는 급격하게 변하는 미디어업계의 동향과 이런 변화가 지상파 방송에 미치는 영향 등이 주된 소재다.

“방송을 보는 환경이 바뀌면서 앞으론 TV수상기를 통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는 10%도 안 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젊은 세대는 본방송을 아예 안 보고 스마트폰 등에서 영상을 저장해서 보는데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빠져나간 시청자를 어떻게 다시 끌어모을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죠. 시청자가 찾는 플랫폼이 안 된다면 시청료와 광고료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무겁고 거창한 담론이지만 손 PD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김 PD의 글쓰기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2010년 아이패드를 사고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집에서도 TV를 안 보게 됐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도 생방송을 안 보는데 젊은 세대는 어떤 식으로 미디어를 소비할까 궁금했던 거죠.”

1996년 <문학동네>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손PD는 스마트 미디어에 대한 글쓰기를 일종의 의무감이라고 했다. “이런 고민을 방송사에 있는 동료들과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에세이나 소설을 쓰는 게 꿈이지만 우리가 왜 망하고 있는지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쓰고 있죠.”

두시간 남짓한 ‘글쓰기 노하우 공유 시간’에 이어진 건 구자범 전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의 특강. 글쓰기 캠프는 ‘어떻게 글을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교육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 1일엔 진화학과 과학철학을 연구한 장대익 서울대 교수의 ‘21세기 인문학’의 강연과 3일엔 전문강사에게 배우는 ‘드럼 수업’이 진행됐다.

‘PD 글쓰기 캠프’를 기획한 이채훈 PD교육원 전문위원은 “기획안 작성부터 스태프와 소통 등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에게 글쓰기는 중요하다”며 “글쓰기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PD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이런 기회가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위원은 “일상에서 벗어나 PD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힐링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캠프를 기획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글쓰기 캠프에 참여한 PD들에게 ‘자서전’이라는 글짓기 주제가 주어졌다. 5일 동안 자신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 남짓한 자선전을 써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김민식 PD는 그의 성공작인 <내조의 여왕> 대신 시청률 저조로 조기 종영한 <조선에서 왔소이다>를 대표작으로 정했다. 그는 “성공작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이야기로 자서전을 채우면 민망해서 못 쓸 것 같다”며 “그때 당시에는 죽도록 힘들었지만 도심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오늘 아침 <조선에서 왔소이다>로 글을 쓰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편했다”고 말했다.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마주한 고즈넉한 풍경은 예술적인 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경남 교통방송 PD는 “라디오 PD라서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대표작은 없지만, 일상적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라디오 PD로 살았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현 아리랑TV PD는 “대부분 PD 작가들에게 대본을 맡기는데 글을 잘 쓰면 작품을 시청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캠프에 참여하게 됐다”며 “이번 캠프를 통해 글솜씨가 조금이나마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쓰기 캠프’는 4일 참가자들이 ‘자서전’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정이 끝났다. PD교육원은 PD들의 자서전을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