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받지 못한 취재, 부끄러움 없는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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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유족 뜻대로의 세월호 특별법 불가 이유 묻지 않는 지상파 보도

16일 지상파 방송 3사가 일제히 전한 풍경이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한 친구들을 추모하면서 47㎞ 도보행진에 나선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지난 15일 학교를 출발해 시민들의 응원 속에 국회까지 행진한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의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단식 농성에 나선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생존 학생들이 한여름 땡볕과 아스팔트 열기를 견디면서까지 47㎞를 걸어 국회까지 온 이유는 간명하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당초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대통령과 함께 합의했던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지 못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은 국내 사법체계를 흔들 수도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에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과 1박2일 도보행진에 나섰던 생존 학생들은 묻고 있다. 왜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어찌하여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지, 그 진상을 추적하는 대신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눈물만 따라다니다 ‘기레기’로 전락한 언론들이 지금이라도 함께 질문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들, 특히 지상파 방송 3사는 생존 학생들의 뒤만 따라다니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의 이견을 정쟁으로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 7월 16일 KBS <뉴스9> ⓒKBS
먼저 SBS와 MBC를 보자. SBS <8뉴스>와 MBC <뉴스데스크> 역시 각각 여섯 번째 리포트 <‘세월호 특별법’ 담판 결렬…수사권 부여 견해차>, 다섯 번째 리포트 <세월호 특별법 합의 무산…‘조사위 수사권’ 두고 이견> 등에서 이날 예정했던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무산됐다고 전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우리나라의 형사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라는 이완구 원내대표의 발언과 함께 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대신 상설특검이나 특임검사를 임명하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전했다. 또 “근본 문제는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강제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말과 함께 조사위에 특별사법경찰관을 배치해야 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도 소개했다. SBS <8뉴스> 보도도 다르지 않았다.

두 방송사의 리포트 모두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여야의 입장, 즉 정쟁 상황만을 전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처럼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정말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인지, 혹시 반대의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인지 질문조차 하지 않고 있다.

KBS는 좀 더 심각하다. KBS는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다섯 번째 리포트 <‘세월호 특별법’ 당 대표까지 나섰지만 합의 불발>에서 여야 대표들의 협상 모습을 스케치하는 데 그쳤다. 1분 21초 분량의 해당 리포트에서 <뉴스9>는 무려 1분의 시간을 협상에 앞서 여야 대표들이 나누는 인사말과 1시간 동안 논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채은 것이다. 1분이 지난 후에야 “오늘 밤 간사 간 협의를 계속하기로 한 가운데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할지와 조사위원 구성 방식 등이 막판 쟁점으로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며 협상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을 뿐이다.

반면 지난 16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는 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에서 제안했던 세월호 특별법의 초안을 만들었던 김희수 변호사(서해훼리호 당시 수사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을 전했다.

“새누리당에선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하면 법 체계를 흔든다고 그러는데 그건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는 국가소추주의를 취하면서도 피해자한테 직접적으로 개인이 이렇게 소추할 수 있는 제도도 만들어져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도 기소배심제도, 대배심제도를 줘서 일반 국민들이 시민들이 기소할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게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이 권력을 어떻게 줄거냐, 왜 이게 필요하냐 이런 문제로 논의를 해야지, 우리 법이 현재 지금 이러니까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논리적인 이야기다. 또 참여정부에서 논의됐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같은 경우도 결국 검사 아닌 사람한테 주자는 얘기였다.”

▲ 단원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16일 오후 목적지인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도착하고 있다. 단원고 학생 46명과 학부모 10명 등 56명은 지난 15일 오후 5시 수업을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을 향해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노컷뉴스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여당의 속내와 관련한 보도도 있다. 17일자 <경향신문>은 6면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새누리당이 수사권 부여를 쉽사리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종료된 감사원 감사와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서 청와대는 유일한 성역이다. 수사권을 가진 진상조사위가 김 실장과 이 전 수석을 수사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 새누리당의 속내로 보인다.”

생존 학생들의 1박 2일 도보행진을 공식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던 언론은 JTBC와 <뉴스타파> 등 4개 매체뿐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슬픔만이 아니라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일에 앞장섰던 언론들이었다. 그리고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들은 동행취재를 허락받지 못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취재하느냐는 매서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언론은 여전히 이 질문을 듣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당연히 지상파 방송 3사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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