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의 대물림, 나는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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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나에게 무엇이었나 ②]황일송 <뉴스타파> 기자

2014년 4월 16일.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다. 20년 가까운 나의 기자 생활은 적잖이 굴곡졌고 끝내 해직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던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고통스럽다. 나 자신이 속칭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난에 자유롭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용기를 내 그동안 감추고 싶었던 나 자신의 부끄러운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기로 했다. 참사 당일 진도실내체육관으로 향하던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수백 명의 기자와 PD들이 마치 스포츠 경기를 생중계하듯 실시간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생때같은 자식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해 울부짖는 부모의 심정은 뒷전이었다.

초년병 시절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한국인 선장의 가족을 인터뷰했던 때의 악몽도 떠올랐다. 선장의 아내가 “당신이라면 지금 심정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책에 귓불이 화끈거렸다.
16일 밤 진도체육관은 혼란 그 자체였다. 수백 명의 잠수사가 동원돼 금방이라도 실종자들이 구조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보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 <뉴스타파>‘정부 재난관리시스템 불신 자초’ⓒ동영상 캡처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곳곳에서 분통이 터져 나왔고, 울다 지쳐 쓰러진 실종자 가족들도 많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애가 타는데 공무원들은 우왕좌왕했다. 혼란을 수습할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기운을 차리라며 억지로 입에 음식을 넣어주려는 여동생의 손을 “내 자식은 물속에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며 강하게 뿌리치는 한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오전까지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이렇게 만든 ‘정부 재난관리시스템 불신 자초’라는 제목의 리포트는 유튜브에서만 조회수가 100만건을 넘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이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20년 가까운 기자생활을 해왔으면서도 나 역시 재난보도 준칙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기레기가 아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만약 <뉴스타파>가 아니라 속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다른 매체에서 일했다면 분명 기레기로 전락했을 것이다. 기자 개인의 소신과 양심이 아니라, 과도한 특종 경쟁과 무분별한 베껴 쓰기를 강요하는 언론사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황일송 ‘뉴스타파’ 기자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감춰졌던 우리 사회의 부패와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민들은 일부 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잃어버린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좀 더 열심히 해’라는 주문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편집권을 보장하고, 속보가 아닌 정확한 보도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루 평균 서너 꼭지의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베껴 쓸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기레기’는 대물림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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