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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나에게 무엇이었나 ①]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그 날 아침, 마지막 인터뷰는 여느 때보다 더 훈훈했다. 혼혈 농구선수 문태종·태영 형제의 어머니는 인터뷰 내내 두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며 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하지만 그것이 2014년 봄, 마지막 웃음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어, 무슨 일이지?” 생방송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뜬 속보. 곧 TV에선 뉴스특보로 사고 현장의 화면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기울어가는 거대한 세월호의 모습이 생생하게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너무도 큰 배가 침몰하는 걸 우리는 그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특보를 맡은 앵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탄식을 쏟아냈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황이 급합니다.” 공허한 말들이 공중으로 흩어져갔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렇게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그 후로 수없이 많은 세월호 관련 인터뷰를 했다. 사고가 나던 순간 마침 갑판 위에 있었던 덕분에 구사일생 살아난 이 모 군. 이 군은 사고 당시 반 아이들의 단체 카톡방 문자를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그 메시지가 떠오르겠지.

배가 기울어지는 그 순간 난간을 잡고 마지막 동영상을 촬영한 故 김동현 군. 김 군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담담히 읽어가다가 그 동영상 속의 한마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란 말에서 결국 목 놓아 울고 말았다.

▲ 세월호 사고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 및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등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위한 350만 국민서명 국회의장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컷뉴스
역시 단원고 희생자인 故 박수현 군. 박 군의 아버지는 NHK 기자가 찾아와 보여준 사고 당시 촬영 필름을 잊지 못한다. 그 필름에는 물에 잠겨가는 배의 옆쪽 창문을 깨기 위해 아이들이 의자로 문을 내리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기자는 그 창문이 수현이의 방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렇다. 이번 참사가 우리를 더 아프게 하는 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실시간 문자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울어가는 배를 UHD TV로 손에 잡힐 듯 담으면서도 단 한 명도 건져내지 못했다. 초정밀 비디오로 조그마한 창문 속 움직임까지 포착해내면서도 구해내지 못했다.

특히 뉴스특보로 침잠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생생히 중계만 해댄 방송인들. 이 못난 ‘입’들은 더욱더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날 그 순간 마이크를 잡았든 아니든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비참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혹시 ‘입만 살아 동동거리는’ 무책임한 어른, 무책임한 저널리스트는 아니었던가.

잔인한 봄은 그렇게 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가 낭만의 푸른빛을 쏟아내며 손짓하는 계절이 왔다. 사람들에게서 세월호는 잊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끝까지 세월호를 놓지 않아야 한다고. 이 모든 부조리를 기억하고 끝까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나는, 결코, 입만 동동거리는, 부끄러운 저널리스트는 아니어야 한다고. 2014년 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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