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호명에 괴로운 언론인, 회사는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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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호명에 괴로운 언론인, 회사는 ‘역주행’
[세월호 참사 100일] 세월호는 우리에게 어떻게 남았나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4.07.22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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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줄어든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100일 동안 대중은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대부분 거뒀다. 일부 언론의 차분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보도가 저널리즘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대부분의 언론들이 ‘기레기(기자+쓰레기)’로 호명되고 있는 현실은 더욱 두드러진다.

‘기레기’라는 이름 앞에 언론인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KBS 양대 노조가 보도 통제 논란의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처음으로 공동 파업에 돌입한 것에서, MBC의 젊은 예능 PD가 인터넷 게시판에 “엠◯◯입니다”라는 자기 비하의 표현으로 반성을 말한 데서 ‘기레기’라는 이름과 마주하는 언론인들의 고통이 읽힌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으로서의 언론은 이들의 괴로움을 직시하지 않는 듯 보인다.

KBS ‘도로 길환영’ 갈림길

청와대 뜻에 따른 보도 통제 논란으로 KBS 양대 노조가 첫 공동파업에 돌입한 지 8일째 날이었던 지난 6월 5일 KBS이사회는 길환영 사장을 해임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녹록치 않다. KBS 안팎에선 ‘도로 길환영’ 체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특별다수제(재적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와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요구했지만, KBS이사회 내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여권추천 이사 7인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이사회가 새 사장에 추천한 이는 언론노조 KBS본부가 ‘부적격’ 명단에 올렸던 조대현 전 KBS 부사장이었다.

조대현 사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제청을 남겨놓고 있지만 KBS는 벌써부터 시끄럽다. 회사 측이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 제동을 걸고, 길환영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주도한 양대 노조 관계자 45인에 대한 징계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일련의 상황들이 조 내정자의 뜻인지 여부는 현재 불분명 하다. 하지만 길환영 전 사장 체제를 지탱했던 이들이 현재도 회사의 경영을 맡으면서 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장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들에게 “조대현 사장 제청자에 대한 충성맹세인가, 청와대를 향한 구애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길 전 사장 퇴진 이전으로의 ‘역주행’을 경계하고 있다.

▲ 길환영 KBS 사장이 지난 6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을 방문해 사과를 한 뒤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다른 지상파 방송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논란은 적었지만 SBS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아이템 불방 논란과 이어진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교회 강연 발언 누락 등으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구성원들의 이어진 요구로 SBS는 노사는 지난 4일 공정방송 실천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하고 탐사보도팀도 신설하기로 하는 등 변화를 위한 방안 모색에 나섰다. 채수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과락을 면하는 게 목표일 수 없는 만큼 문창극 보도 누락 등과 같이 잘못된 의제 설정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성 대신 자화자찬 논란 MBC

반면 MBC에는 세월호 보도 이후 반성을 말하는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드러날 최소한의 공간조차 없는 듯 보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노조 MBC본부는 공정방송협의회(이하 공방협) 개최를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그럴 의무가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지난 2012년 11월 노사간 단체협약이 만료된 후 현재까지 무단협 상태로 공방협 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MBC 사측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자사 세월호 보도 등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권성민 예능 PD에 대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세월호 유족 폄훼 논란을 빚은 박상후 전국부장의 리포트를 <뉴스데스크> 보도 전 입사 동기들과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린 신지영 기자에 대해서도 정직 1개월 처분을 했다. 또 세월호 침몰 100일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MBC <다큐스페셜> 이 모 PD의 ‘성향’을 문제 삼아 교체하는 일도 있었다고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6월 26일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에서 밝혔다.

“전원구조 오보” 등 세월호 보도 문제를 짚기 위해 국회가 KBS와 MBC를 세월호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MBC는 “재난보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은 각사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언론계 내부의 토의, 학계와 시민사회의 제안 등을 통해 적절한 방향과 제도적 보완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며 출석을 거부했다.

문제는 MBC가 자사 보도의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는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개선을 위해선 반성이 우선해야 하지만 작금의 MBC의 모습에선 이런 태도를 보기 힘들다는 지적으로, 실제로 지난 6월 19일 열린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회에서 이진숙 MBC 보도본부장은 자사의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청구가 없는 걸 보면 보도를 잘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MBC 왜곡 보도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언론노조

가족대책위 “8월 세월호 청문회, MBC·이정현 전 수석 불러야”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 등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 평가 발표회’에서 MBC 등 방송사의 “학생 전원구조” 오보에 문제를 제기하며 “MBC 등 언론이 사실보도와 관련해 어떤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내부 규정을 확인하고 (세월호 보도에서) 이런 절차를 어떻게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MBC의 국정조사 불출석에 대한 책임 추궁과 8월 세월호 청문회 출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의 보도개입 논란 역시 진상이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1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 번 도와주소,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했고, 5월 13일에는 백운기 KBS 보도국장이 보도국장 임명 직전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KBS 내부 배차기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또한 5월 16일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으로부터 청와대가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을 너무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가족대책위 등은 “청와대가 언론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법적·정치적 책임 소재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이런 가운데 이정현 전 수석이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차출되면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내달 세월호 청문회에 이정현 전 수석을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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