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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KBS 파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몇몇 선후배들과 동기들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었다. 40여 년 전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과 관련하여 쫓겨난 동아투위 언론인들이 힘들어했던 것도 바로 시위를 같이 했으나 결국은 복귀했던 이들과의 관계였다고 한다.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적절한 행태로 전임 KBS 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민낯이 드러났다. 비록 많은 간부가 파업에 동참하는 마음에 보직 사퇴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위 무사를 자처하며 자리를 지켰던 간부들도 있었다. 그중 몇몇은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이들이었기에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민낯이었을까.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다른 고민이 있었을까.

동시에 뒤늦게 보직 사퇴를 했지만, 그 이전 행태를 봐서는 기회주의적 변신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사장 해임이 결정된 날 저녁 기념 술자리에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며 앉았던 이들은 어느덧 개선문을 통과하는 무리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어두컴컴한 술집 안에서 민낯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 5월14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2층 로비에서 열린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조합원 총회에 참석한 내부 구성원들이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PD저널
민낯을 보게 되면 여러 가지 미움이 마음에 쌓이게 된다. 작고 큰 미움, 미묘한 미움, 애매한 미움, 이해 가는 미움과 이해 불가의 미움. 지난 2012년 방송사 공동파업 당시에는 이런 복잡한 미움을 담아 개인적으로 살생부를 작성해 본 적이 있다. 개인적인 ‘데스노트’에 몇몇의 이름은 추가되었다가 지워지고, 고민 끝에 다시금 추가되었다가 지워지곤 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는 가운데 개인적인 미움을 둘러싼 마음의 번뇌만 쌓이게 될 뿐이었다.

그런데 2012년 파업과 이번 2014년 KBS 파업을 거치면서 어찌 그들만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가 미워하는 그들도 나름 우리의 민낯을 보기도 했으리라. 그리고 그들도 나름의 논리에 따라 살생부를 쓰고 지우고 또 몇몇은 실제로 집행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 고민을 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조직이론 중 인간관계이론에 따르면 한 조직의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사기와 생산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실제로 작금의 MBC를 보면 이러한 상황이 극단에 이른 듯한 느낌이 든다. 뉴미디어가 강력하게 도전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나머지 한 축인 KBS도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 게다가 더 똑똑해지고 눈이 높아진 시청자가 방송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같은 공영방송의 종사자들은 마음의 번뇌로 서로와 이야기하기 싫어하고 미워하고 반목하고 의심하고 슬퍼하고 고민하고 있다. 공영방송이라는 조직은 무너지고 있다.

▲ 염지선 KBS PD
지난 금요일 드디어 신임 KBS 사장이 청와대의 임명을 받았다. 임명이 늦어지게 된 이유에는 청와대에서 신임 사장의 ‘충성도’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풍문도 있었다. 새 사장의 임기가 전임 사장의 잔여 임기인 1년 4개월에 불과하여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16개월에 불과한 임기 동안 신임 사장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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