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거울, 침팬지와 보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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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거울, 침팬지와 보노보
[이채훈의 인문학 생중계]
  •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MBC PD)
  • 승인 2014.07.28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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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팬지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생김새와 하는 짓이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 “침팬지 같다”고 하면 심각하게 화를 낼 것이다. 이 말을 농담이 아니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침팬지와 인간이 ‘진짜로’ 닮았기 때문이다.

▲ 사람한테 “침팬지 닮았다” 하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왜냐?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던 19세기 유럽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격분했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1967)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이 짓궂은 제목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만든 결과였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신념은 21세기에도 요지부동이다. 최근, 미국의 한 인류학자는 친목 자리에서 “침팬지와 인간이 비슷하지 않냐”는 질문에 화를 내며 대답했다. “인간은 침팬지가 아니다!”

침팬지를 아는 게 곧 인간을 아는 건 물론 아니다. 인간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결국 고인류학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간을 비춰 보는 거울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500만년 전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했다. 지구 위에 존재한 생명체들이 이룬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 나란히 서 있는 사촌이다. 침팬지와 인간은 같은 영장류로서 98.6%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꼬리가 없다는 점이 원숭이와 다르다.

참고 영상: 다큐멘터리 <침팬지> (RTBF, 벨기에, 2008)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단단한 기름야자 껍질을 돌로 깨뜨려서 알맹이를 먹는다. 기다란 막대기를 나무줄기 속에 넣어서 흰개미를 잡아먹는다. 침팬지는 거울 속의 자기를 알아보고, 제 모습이 멋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5살 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자의식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는데, 침팬지도 정치적 동물이다. 침팬지도 사람처럼 수컷 사이에 서열과 파벌이 있고, 전쟁을 한다.
침팬지가 정치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수컷 사이에는 서열과 파벌이 존재하며, 한 놈이 왕좌에 오르면 다른 놈들은 모두 복종한다.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돌을 던지고 나무를 휘두르는 등 화려한 개인기를 구사한다.

30년 동안 침팬지를 관찰한 제인 구달(Jane Goodall)에 따르면 마이크라는 수놈은 깡통 굴리는 재주로 다른 놈들을 압도해 왕좌에 올랐다. 인간 사회의 정치인들이 능력을 과시하려고 벌이는 헛된 짓들을 닮았다. 힘 있는 놈 주변에서 줄을 대는 꼴도 비슷하다.

강자에겐 언제나 도전자가 있는 법, 약자들이 알파메일을 몰아내는 쿠데타도 일어난다. 고블린이란 놈은 15살에 왕좌에 올랐지만 다른 침팬지를 잔인하게 때리고 모욕하는 게 취미였다. 다른 침팬지들은 그를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어느날, 고블린은 젊은 침팬지 윌키에게 흠씬 두드려 맞고 다쳤는데, 다시 집단으로 돌아가려 하자 나머지 수놈들이 힘을 합쳐 그를 몰아냈다.

침팬지는 전쟁도 한다. 먹이를 놓고 다른 부족과 경쟁하다가 수적으로 우세하면 먼저 공격한다. 침팬지는 잔인하게 상대를 제압하면 고환을 뜯어낸다. 원수의 씨를 말리기 위해 삼족을 멸하던 우리 조상을 닮은 것 같다. 침팬지는 고기를 좋아해서 적의 시체를 먹기도 하며, 인근 마을의 아기를 납치해서 잡아먹기도 한다. 사람에게도 식인 풍습이 있었으니, 침팬지만 끔찍하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수놈은 암놈을 유혹하기 위해 고기를 선물한다. 암놈이 고기를 얻기 위해 매춘을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좀 과장된 얘기 같긴 하다. 침팬지도 인간처럼 모성애와 가족애가 있고, 종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

제인 구달은 탕가니카 호수 근처의 곰비에서 30년 동안 침팬지를 관찰했다. 그는 침팬지와 거리를 두고 연구하는 냉정한(detached) 방식을 거부하고, 감정이입(empathy)을 통해 그들의 친구가 됐다. 주류 학계의 객관적인 태도와 어긋났기 때문에 한때 비난을 받았지만, 침팬지와 우정을 맺고 교감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제인 구달이 볼 때 침팬지도 사람처럼 훌륭한 개성이 있었다. 못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못된 침팬지도 있었다.
침팬지는 사람을 만나면 장난을 치려했다. 침팬지는 사람보다 다정하고 싹싹하고 친절해 보였다. 사람처럼 침팬지도 저마다 훌륭한 개성이 있었다. 못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못된 침팬지도 있었다. 암컷 침팬지 플로는 주먹코에 귀가 째진, 못 생긴 얼굴이었지만 훌륭한 엄마였다. 플로의 아들 중 사나운 둘째 프로도(Prodo)는 알파 메일이 됐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다정하고 친절하고 출세에 관심이 없는 큰아들 프로이드(Freud)를 더 좋아했다.

제인 구달은 연구를 계속하면서 침팬지도 사람처럼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분명히 깨달았다. 어른 침팬지가 아기 침팬지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한 침팬지 집단이 다른 집단과 어둡고 슬픈 전쟁을 벌이는 것도 보았다. 침팬지는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더 사람을 닮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보다 침팬지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매스컴의 힐난에 제인 구달은 대답했다.

“침팬지는 매혹적이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보다 침팬지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역시 사람을 더 좋아한다.”

침팬지의 행태를 보면 싫든 좋든 진화하기 전의 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과학적 탐구가 아니라 문학적 상상에 가깝다. 침팬지는,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풍자시(諷刺詩)를 쓰는 시인과 같다. 침팬지는 인간을 향해 “너희들이 우리랑 뭐가 다르냐?”고 말한 뒤 혀를 낼름 내민다.

2. 보노보

보노보는 인류의 또 다른 사촌이다. 보노보는 전쟁을 하지 않는데, 평화의 비결은 섹스다. 침팬지는 오직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지만 보노보는 인사하고 화해할 때 섹스를 한다. 보노보를 촬영하러 가는 사람은 이 키 작은 사촌의 갑작스런 포옹이나 키스 세례에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참고 영상 : 다큐멘터리 <보노보> (BBC, 2006)

20년 동안 보노보를 관찰한 일본의 다케시 후루이치 박사에 따르면 보노보 집단 간의 살상은 없다. 보노보는 낯선 집단을 만나 공격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 섹스로 긴장을 푼다. 숫놈들은 극도로 긴장해서 소리를 지르고 나무를 흔들지만, 암놈은 서로 쓰다듬어 주고 함께 먹으며 친선을 도모한다. 자연스레 평화가 이뤄지면 1~2주씩 함께 살기도 한다.

▲ 보노보는 사랑이 넘친다. 인류의 사촌 보노보를 촬영하러 가는 사람은 갑작스런 포옹이나 키스 세례에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Sisterhood is power.” 보노보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연대가 곧 권력이다. 침팬지는 수컷이 지배하는 강력한 가부장제 사회지만 보노보는 암컷이 지배하는 모계사회다. 암컷들은 힘을 합쳐 수컷의 폭력을 막는다. 개체의 힘은 수컷이 더 강하지만, 그 물리력은 암컷의 단결 앞에서 별 의미가 없다. 식량을 암수가 함께 찾지만, 분배는 암컷이 한다. 높은 암컷의 자녀가 높은 지위를 갖게 되므로, 다 자란 수컷도 늙은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도움을 청한다. 어머니가 죽으면 수컷의 사회적 지위도 하락한다. 더 이상 어머니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약자를 영원히 왕따시키는 일은 없다. 3살 때 엄마를 잃은 보노보의 사례가 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어린 보노보를 철없는 친구들이 때리고 깨물자, 곧 다른 엄마가 개입해서 말렸다. 친구들은 미안하다는 듯 고아 보노보 곁에 와서 벗이 돼 주었다.

보노보는 영장류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하다. 영국 트위크로스 동물원에 살던 쿠니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7살난 말괄량이 암컷 쿠니는 유리창에 부딪쳐 다친 새를 발견하고 두 손으로 들어서 날려 보내려 했다. 새가 힘없이 땅에 떨어지자 쿠니는 높은 나무로 기어 올라가 정성스레 새의 날개를 펴서 우리 밖으로 날려 보냈다. 쿠니의 이 행동은, 보노보도 다른 개체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으며, 다른 종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헤아리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준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침팬지가 공격을 준비하면 보노보가 평화의 메시지를 보낼까? 두 족속은 전쟁을 배울까, 아니면 사랑을 배울까? 인류의 두 사촌은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따로따로 살아왔다. 북쪽은 침팬지, 남쪽은 보노보…. 그들은 콩고강의 장벽 때문에 만날 수 없었고, 서로 경쟁하거나 다툴 일이 없었다.

▲ 유쾌한 히피 보노보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왜 우리처럼 못 사시나요?”
침팬지와 보노보는 둘 다 인간 때문에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갈 때 이들도 안전할 수 없었다. 1994년 르완다 내전, 1998년 콩고 내전 등 인간들 싸움으로 숲속이 시끄러워졌고, 이들이 애꿎게 총을 맞아 개체수가 줄었다. 무분별한 벌목과 화전 경작으로 생존의 터전이 좁아졌다. 나뭇가지 위에 모여서 잠든 침팬지와 보노보들은 밀렵꾼들의 손쉬운 제물이 됐다. 이들의 개체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만 마리에서 3만 마리 정도 남은 걸로 추정되며,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혹성탈출>에서 시저는 멸종 위기의 인류를 향해 말한다. “원숭이(ape)는 원숭이를 죽이지 않는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원숭이만 못하다는 경고 아닌가. 다행히, 남을 괴롭히며 나만 잘 살자는 식의 ‘명박스러운’ 형질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은 연민(bonding)의 유전자를 보노보와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은 있는 셈이다.

보노보는 유쾌한 히피답게 아프리카 콩고의 오지에만 산다. 멸종 위기에 몰린 이 평화주의자는 인간을 향해 풍자시를 한 수 날리며 윙크하는 것 같다. “너희는 왜 우리처럼 못 사는 거야?”


▲ 책 ‘침팬지, 사람을 말하다’ⓒ자연과 치유
[참고한 책]

<침팬지, 사람을 말하다> (신동화 백종호 지음, 자연과 치유, 2008)

동물자유연대의 활동가 조희경씨는 “말 못하는 동물의 권리를 위해 일하다가 인권 문제에도 눈뜨게 됐다”고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생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제인 구달과 침팬지, 프란스 드발과 보노보, 다이앤 포시와 고릴라, 비루테 갈디카스와 오랑우탄 등 다른 영장류와 교감하며 인간을 성찰한 기록들이 무척 많다. 유투브를 조금만 검색해도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수없이 쏟아지는데, 모두 슬픔과 감동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인류의 사촌인 이 동물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류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침팬지, 인간을 말하다>(2008)는 인간의 거울인 침팬지와 보노보에 대한 방대한 관찰 기록을 요약한 책이다. 같은 제목의 SBS 창사특집 다큐를 만든 신동화 PD와 백종호 기자의 깔끔한 글솜씨와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제일 먼저 읽을 입문용으로든 제일 나중에 읽을 정리용으로든 침팬지와 보노보의 속성을 살펴보기에 손색이 없다. SBS는 <TV동물농장> 등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동물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하고 인간을 성찰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 만 했다. MBC 뉴스가 인간 사회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한 채 애완동물 이야기를 즐겨 다룬 건 물론 비판받을 행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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