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된다. 휴가철을 맞아 직장인들은 모처럼 해외 휴양지로 떠나거나 무더위를 피해 ‘도심 속 휴가지’를 찾곤 한다. 그러나 성수기로 인한 극심한 교통체증과 바가지 요금을 겪다보면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 어려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쁜 일상에 쫓겨 미뤄뒀던 독서 휴가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PD저널>이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KBS 1TV <TV, 책을 보다>(민승식·김동렬·김장환·이은형) 연출을 맡고 있는 민승식 PD를 만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와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TV, 책을 보다>는 지상파에서 현재 유일한 책 소개 프로그램이다.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TV, 책을 말하다>(2001~2009), <즐거운 책읽기>(2011~2013) 등을 방영해왔지만 매번 논란 끝에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안팎의 안타까움을 샀다. <즐거운 책읽기> 폐지 이후 KBS 내부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아져 지난해 10월 <TV, 책을 보다>가 신설돼 현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TV, 책을 보다>는 ‘딱딱한 비평’에서 벗어나 ‘말랑한 영상’을 더했다. 프로그램 도입부에 소개할 책의 간략한 줄거리를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쉽게 풀어내 시청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 것. 민 PD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워낙 오래된 현상이라 (연출자로서) 흥미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며 “애당초 영상시대인만큼 ‘책의 영상화’에 초점을 맞춰 기획했지만 예산과 같은 현실적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절반은 완성도 높은 영상에, 나머지 절반은 강독을 접목한 현 프로그램 구성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TV, 책을 보다>에서 선정된 책들을 보면 전문서보다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책들이 대부분이다. 작가 조정래의 <정글만리>, 정유정의 <28>, 만화가 윤태호의 <미생>을 비롯해 해외 문학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현재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점하고 있는 <미 비포 유>(조조 모예스)까지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른다. 민 PD는 “시대를 읽을 수 있고, 인문학적으로 재밌을만한 책, 읽는 데 어렵지 않은 책이 선정 기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앞 다퉈 책 소개 팟캐스트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TV, 책을 보다>의 입지도 그리 녹록해보이지 않는다. 민 PD는 “팟캐스트는 방송 매체에 비해 책 선정이나 표현 방식이 좀 더 자유롭기 때문에 시류를 타고 있지만, TV는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차별점인 것 같다”고 답했다.
“<TV, 책을 보다>는 다른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죠. 시청자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KBS의 공적 책무와도 부합하고요. 현실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영상 시대에 발맞춰 ‘책의 영상화’ 작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네요.”(웃음)
<TV, 책을 보다> 제작진은 독서의 계절이자 문화의 달인 오는 10월 책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5부작 특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인 고은 선생과 김훈 작가를 비롯해 <허삼관매혈기>의 위화(중국),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브라질),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의 빌 브라이슨(미국)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인터뷰 말미, 민승식 PD에게 독서 휴가를 떠난다면 어떤 책을 소개하고 가져갈 것인지 물었다. 민 PD가 <TV, 책을 보다> 연출을 맡으면서 소개했던 책들 중에서 다시 읽어볼 만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어 전개하는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파란만장한 세계 현대사를 유머 넘치게 표현해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최근 동명 영화가 상영됐고, 신간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도 출간됐다.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서현, 효형출판
‘대중을 위한 건축입문서’로 불리는 이 책은 건축가가 사회를 향해 주섬주섬 늘어놓는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사는 마을, 내가 사는 도시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건축’이라는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 책세상
책은 ‘걷기’를 ‘멈춤의 자유’,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자유’라고 하며 걷기를 예찬한다. 비록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자신과 타인에 대한 망각이 흥분과 피로로 다시 자리 잡을 지라도 걷는 동안은 소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쁨 속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과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을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