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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인문학 생중계]

삼복 더위에 지치는 요즘,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개들은 덥다고 불평할 여유도 없을 것 같다. ‘꿩 대신 닭’은 옛말, 요즘 복날엔 ‘개 대신 닭’이다. 삼계탕집 앞에 늘어선 차들이 교통체증을 빚어서 짜증을 더한다. 조류 독감으로 수백만 마리를 죽였다는데, 그래도 저 많은 닭들이 살아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우리 사회에 대량의 육식문화가 뿌리내린 건 겨우 3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육식에 대한 생각은 우리 안에서도 편차가 크다. 2011년 6월 <MBC스페셜>을 통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고기랩소디>에 포함된 1분가량의 시민 인터뷰만 봐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 <고기랩소디> 중 명동 거리 인터뷰 (링크 5:30부터)

PD : 고기 즐겨 드세요? / 남자 : 네, 잘 먹습니다.
PD : 어떤 고기 잘 드세요? / 남자 : 쇠고기, 돼지고기 잘 먹습니다.
PD : 개고기는요? / 남자 : 개고기는 즐겨먹지 않습니다.
PD : 왜 그러죠? / 남자 : 개는 가족 같은, 친구 같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PD : 고기 먹을 때 불쌍하단 생각 안 들어요?
남학생 1 : 먹을 땐 안 들고요, 잡을 때 좀 불쌍해요.
PD : 잡을 때 불쌍하면 먹을 때 생각 안 나요?
남학생 2 : 먹을 때만은 잊어요. 잊어야죠.

PD : 개고기는 안 먹으면서 쇠고기는 왜 먹어요?
여학생 1 : (고민하다가) 소는 별로 안 불쌍해요.
여학생 2 : 소는 다른 사람들도 다 먹는 거고….

PD : 개고기는 안 드세요? / 여자 : 먹어요.
PD : 개 키우신 적 있나요? / 여자 : 키운 적도 있어요.
PD : 보통 개고기 안 먹는 이유가 반려동물이라 그렇다는데, 괜찮아요?
여자 : 식용으로 키우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애완 동물이랑 다르죠. 괜찮아요.
PD : (함께 있던 남자에게) 어떠세요? / 남자 :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PD의 질문이 좀 짓궂지만, 모두 공감이 가는 대답들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대답, 정말 대박이다! 사람이 고기를 생각하는 방식은 철저히 ‘사람 중심’이다. ‘사람 중심’은 ‘돈 중심’과 반대되는 뜻이라면 좋은 말이지만, 다른 동물과의 관계에서 보면 이기적이고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다. 말 못하는 짐승들이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인터뷰에 응한 선남선녀들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원칙도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 MBC 스페셜 ‘고기랩소디’ⓒMBC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개고기 먹는 한국 사람들을 야단치고 나서 거위간을 맛있게 먹었다. 원숭이 골을 먹는 게 자연스러운 나라가 있는 반면, 인도에서 쇠고기를 먹거나 이라크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큰일이 난다. 다른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결코 일관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이렇게 맘대로 다른 동물들을 대하는 걸 보면 인간이 ‘이성적 동물’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얌전히 먹고 군말 없이 살다 가는 다른 동물들이 더 이성적이지 않을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 교수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란 책을 펴냈고, 내용 중 일부를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고기에 대한 일종의 인식실험이다. 집주인은 손님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고기 요리를 대접한다. (위 링크 7:15초부터)

여자 손님 : (맛있게 먹다가)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요?
집 주인 : 먼저 골든 리트리버 고기 3파운드를 양념에 재운 다음…

(손님들, 모두 식사를 멈춘다)

남자 손님 : 골든 리트리버요?
집 주인 : 아니, 농담일 뿐입니다. 그냥 평범한 쇠고기에요.

(손님들, 식사를 계속할 수 없다)

집 주인 : 이제 안 드실 건가요?
남자 손님 :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기가 쉽지 않네요. 골든 리트리버, 개…. 역겨워요, 정상적이지 않군요.

고기 자체는 변한 게 없다. 맛, 냄새, 감촉이 똑같지만 고기에 대한 손님들의 인식이 극적으로 바뀐 것이다. 미국인들은 ‘개고기’ 하면 그 개가 살아있을 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골든 리트리버’ 하면 벽난로 옆에 누워 있거나 공을 갖고 노는 개를 상상하며 쉽게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쇠고기의 경우는 살아있는 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음식으로만 생각한다. 미국인들이 쇠고기, 돼지고기 등 ‘정상적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소, 돼지에 대한 감정 이입이 차단되어 혐오감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고기랩소디’에 출연한 멜라이 조이 교수. ⓒMBC
멜라니 조이는 고기를 먹을 때 동물들을 떠올리며 불편해 하지 않는 이유로 ‘정당화의 3N’을 든다. 육식은 정상적이며(Normal), 자연스러우며(Necessary), 필요하다(Necessary)는 견해가 어느새 보편적 진리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 ‘3N 이데올로기’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고기가 다른 생명의 살이라는 사실을 잊게 됐다.

젖소 에밀리는 미국 동물 권리의 상징이다. 1995년 도축장 울타리를 넘어 도망친 이 젖소는 한달 넘게 인간에게 잡히지 않고 버티면서 에밀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멜라니 조이는 피스 애비의 에밀리 동상 앞에서 책의 한 구절을 읽어 주었다.

“피 냄새 때문이었을까, 앞서 들어간 녀석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을까. 에밀리는 갑자기 줄에서 뛰어나와 1.5m 높이의 울타리 위로 700Kg 가까운 몸을 날렸다. 이름 없는 젖소였던 에밀리는 이리하여 많은 이들의 삶에 공감과 연민을 불어넣는 존재가 되었다.”

멜라니 조이는 다른 동물의 살을 먹는 행위를 ‘카니즘’(Carnism), 곧 육식주의라고 불렀다. 육식주의는 폭력으로 약자를 지배하고 억압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와 똑같다. 생명체를 물건으로, 동물을 생산단위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힘있는 자가 언제나 옳으며, 힘없는 자의 삶과 죽음을 맘대로 좌지우지해도 좋다는 사고방식이다. 멜라니 조이의 책은 계속된다.

▲ 프레히트의 대중철학서 ‘나는 누구인가?’ⓒ21세기북스
“에밀리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고기 먹기를 그쳤다고 한다. 에밀리가 택한 삶의 여정은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운다. 육식주의라는 폭력적 시스템이 우리를 진실에 눈감게 하는 걸 거부하라고.”

인간은 지구의 모든 생물 중 최고의 포식자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다른 종들을 편의에 따라 취해 왔다. 문화와 습성에 따라 각각 선택한 동물을 잡아먹었다. 열등한 동물들은 우월한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인간은 지성이 있으니 다른 동물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는 게 가능할 것이다. 인간보다 강한 존재가 맘대로 인간을 잡아먹는 상황을 가정하면 어떨까? 다큐멘터리는 외계인이 인간을 잡아먹는 엉뚱한 상상을 보여준다. 독일 저널리스트 프레히트의 대중철학서 <나는 누구인가?>에서 따온 이 아이디어를 예고편에서 구연동화로 꾸며보았다.  

“예쁜 동물들이 어울려 살던 옛날옛적 지구별에, 아뿔사! 잘난척 대왕 인간이 나타났어요. 다른 동물들을 마구마구 잡아먹었죠. 동물들은 고통에 아우성쳤지만 인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에게 인간은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어요. 더 많이 먹으려고 인간들을 많이많이, 빨리빨리 길렀어요.”

나는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며, 만약 그들이 인간을 만난다면 폭력으로 지배하려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동물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 위해 외계인을 끌어들인 발상이 재미있는 것 같아서 프로그램에 넣었다. 미국 최대의 동물권 단체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잉리드 뉴커크 대표는 취재진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 행동해 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동물들과 이 지구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다른 인종들을 지배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와 다른,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알게 되었죠. 그들은 지능이 있고, 존중할 만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고기랩소디>를 방송한 뒤 한 시청자가 의견을 올렸다.

“잘난 PD놈아, 그렇게 생명이 소중하면 식물도 먹지 마라.”

못난 PD는 혼자 속으로 변명했다.

“에구구, 저는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여느 인간처럼 잡식입니다.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봤기 때문에 그렇게 살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먹는 일에 공을 들일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니, 그냥 앞에 있는 것을 먹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저도 생명이니 먹어야 살고, 게으르지만 먹을 권리가 조금은 있습니다.”

수많은 인간이 엄청난 동물을 먹어치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시스템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프로그램이었다. 공장식 축산이 나쁘다는 것 정도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60억 인구가 지금처럼 먹고 살려면 공장식 축산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상태가 계속되면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동물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는 마르크스주의가 실패한 것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다른 동물에 대한 연민을 포함, 존재 전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혁명이 가능할 거라고 지적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혁명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고, 이를 위해 이기심을 버릴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이성적 동물’답게 생각이라도 합리적으로 해야 살아남을 텐데,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여서 문제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숲이 목장에게 자리를 내주며 해마다 좁아져서 170년 후에는 아예 사라질 거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기후 변화의 주범인데, 세계 온실가스의 51%를 가축이 방출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얻으려면 가축에게 6배~12배, 닭의 경우 20배의 식물성 단백질을 먹여야 한다. 미국 곡물의 70%, 전세계 곡물의 30%가 가축 사료로 쓰이는데, 이 곡물이면 전세계 인구 20억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동성애자보다 더 외롭고 힘든 투쟁을 해야 한다. 채식주의가 아닌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낼 뿐인데, ‘자유육식연맹’이란 듣보잡이 나타나서 채식에 반대한다며 으스대고 있으니 참 피곤하다. 세계화된 축산업체과 제약업체의 이익 추구를 막을 힘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는 없다. 무엇보다, 성장에 목을 매고 있는 대다수 국가와 회사들의 거대한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겠다고 덤벼들 돈키호테는 이 세상에 없다. 난파하는 배에 탄 채 가만히 있는 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나 역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으니 남 탓할 일도 없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팔불출처럼 자기 프로그램 얘기했는데, 주워 담을 기운도 없다. 이래저래 우울한 복날이다.

PS. 그래도 즐거운 생각 하나! <고기랩소디>의 대본을 쓴 이아미 작가는 세계관, 공감력, 상상력, 글솜씨 등 어느 모로 보나 정말 훌륭한 작가다. 이 작가는 다큐를 만들면서 그 좋아하던 삼겹살을 끊었다고 하니, 그를 찬양하기 위해 2박3일 동안 세상을 향해 떠들어도 모자랄 것 같다.


▲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모멘토
[참고한 책]
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옮김, 모멘토, 2011)

<고기랩소디>를 만들 때 팀장이었던 MBC 정성후 부장이 권해준 책이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다른 동물의 생명을 맘대로 좌우한다. 원칙과 기준은 “우리 맘대로”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은 인간의 불합리한 처우에 저항할 수 없다. ‘카니즘’(Carnism, 육식주의)은 강자의 뜻대로 약자의 생명을 좌우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인종주의나 가부장제의 폭력 이데올로기와 똑같다는 게 멜라니 조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얇고, 쉽고, 재미있다.

이 책을 알려 준 정성후 부장은 철저히 채식을 실천하는 분이다. 한탄만 하고 있는 나에 비해 얼마나 훌륭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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