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가슴 위에 노란 리본, 세월호 유가족 위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교황 방한 둘째날... 전국 신자들 대전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 교황 가슴에 '노란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충청투데이 정재훈기자
"제가 교황님께 '파파'라고 부르며, '제의실 안에 억울하게 죽은 300명의 영혼들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교황님께 오늘 그 영혼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교황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고 김웅기 군의 부친 김학일(52)씨의 말이다. 김씨는 노란 리본이 묶인 십자가를 지고 안산 단원고를 출발, 진도 팽목항을 거쳐, 전날인 14일 대전에 도착했다.

▲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지난 14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 900km의 대장정을 마쳤다. 사진은 세월호 희생자 고 김웅기 학생의 아버지 김학일 씨가 십자가를 메고 마지막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를 비롯한 세월호 가족 대책위 대표단은 15일 오전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앞두고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났다. 이들은 교황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현장에서 가족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은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중계 됐고, 트위터엔 '교황의 노란 리본'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단원고 2-3 고 김빛나라 양 아버지)는 미사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교황을 만나) 많이 떨리면서도 감사했다"라면서 "사실 이렇게 만나게 돼 울적하기도 했는데, 미사 때 저희가 드린 노란 배지를 다신 것을 보고 굉장히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교황 보기 위해 모인 5만여 명의 사람들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님 만세!"

대전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앉은 5만여 명의 신자들이 일제히 손수건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들 들뜨고 환한 표정이었다. 전국 13개 지역 천주교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기쁨으로 그를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둘째 날인 15일은 가톨릭의 성모 승천 대축일로, 이날 오전 10시 30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는 교황이 신자들과 함께 하는 첫 공식 미사가 집전됐다. 대축일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일생을 마친 뒤 승천한 것을 축하하는 날로, 이번 미사에는 특별히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 38명도 초대됐다.

오전 10시 10분께, 교황이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자 신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교황은 오픈카에 탄 채 신자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가끔씩 멈춰 서서 어린 아기들을 받아 품에 안거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교황이 도착해 경기장 안을 한 바퀴 돌며 인사하는 동안, 신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도타기를 하는 등 환영의 뜻을 표했다.

교황은 미사 직전 제의실에서 유족 10명과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이들 가운데는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56, 고 이승현 군 아버지), 김학일(52, 고 김웅기 군 아버지)씨도 포함됐다. 교황은 전날인 14일에도 세월호 유족 네 명과 만나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사를 드리는 내내, 교황이 입은 백색 제의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표하는 노란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설레는 신자들 "교황 뵙는 건 평생에 처음... 세월호 유족 아픔 덜어졌으면"

▲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오전 4시부터 경기장에 모여든 신자들은 모두 교황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충남 계룡시에서 두 살배기 아들 이로희(15개월) 군을 안고 미사에 참석한 이상언(32), 서나영(32) 부부는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안 난다"라면서 "굉장히 설렌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온 김순희(57)씨도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천주교의 영적 지도자와도 같은 교황님을 만나는 자리는 제 평생 처음"이라며 "오늘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신다고 들었는데 이들과 함께 하셔서 유족들의 아픔이 덜어지고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들은 오전 8시께부터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와 성악가 조수미(소화 데레사) 등이 함께하는 문화행사를 보며 교황을 기다렸다. <넬라 판타지아> 등을 부른 조수미는 "심장이 너무 떨리고 어느 무대보다도 긴장이 돼서 3일 동안 잠을 못 잤다"라면서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축일 미사에는 경찰과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천주교 특별교구인 군종교구에서도 병사와 장교·부사관 등 30여 명이 군복과 베레모를 갖춰 입고 교황을 맞이했다. 이들과 함께 온 서아무개씨는 "전국에서 신청을 받아 모인 군인들"이라며 "교황을 만나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로 직접 교황을 뵈러 가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족들, 교황에게 편지... "진실만이 아픔 더는 유일한 방법"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교황께 마음을 담아 전달하려 한다"라며 노란 리본 배지 등이 담긴 선물상자와 세월호 희생자들 사진이 실린 앨범,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 쓰인 티셔츠 등을 건넨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교황에게 전했다. 유족들은 여기서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는다"며 최근 정부의 대응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다.

유족들은 "우리 요구는 단순하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라며 "수 백 명 신부와 수녀들이 함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사법기관과 국회, 심지어 언론은 가족들 요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은 행적이 불분명했다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한다"라면서 "온통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족들은 참사와 진상규명을 위해 기소권·수사권이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어 "진실만이 멈춘 시간을 흐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냉담한 이 현실 속에서 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라고 청했다.

오전 11시 40분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과 천주교인의 역할과 의무 등에 대해 강론 후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미사는 낮 12시 30분에서 낮 1시 사이 끝날 예정이다.

교황, 삼종기도 통해 세월호 유가족 위로

▲ 세월호참사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미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는 이날 낮 12시 30분께 끝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를 마치기 전 삼종기도 말씀을 통해 특별히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국가 대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성모님께 위탁한다"라면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길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고를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됐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라면서 "대한민국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이 고상한 나라를 지켜주시길 성모 마리아께 부탁한다"라고 기도했다.

또한 교황은 이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을 통해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한다"라면서 "한국 천주교인인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론 후에는 영성체 예식[신자들이 예수님의 몸(밀떡)을 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영성체 예식이 끝난 후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는 등 이토록 힘든 시기에 교황님의 방한이 이뤄져 감사하다"라고 환영사를 하자, 교황은 웃으며 유 주교의 양 볼에 입을 맞추며 화답했다.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전문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를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께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그리고 희망들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특별히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
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이 고상한 나라와 그 국민을 지켜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니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곳 대전교구에 모여온 모든 젊은이들을 성모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된 계획에 따라 평화로운 세상의 새벽을 알리는, 기쁨에 넘친 전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제공합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