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세월호 눈물 닦기, 의미 짚지 못한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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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세월호 유족 “122일만에 처음 존중받은 경험”이라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이후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공항 도착 후 환영식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건넨 데 이어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도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따로 만나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미사 집전에 나선 교황의 가슴엔 세월호 유가족들이 건넨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고, 교황은 이 미사 삼종기도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며 기도를 통해 유가족들을 다시금 위로했다. 또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도 600여명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참석할 예정이다.

방한 기간 동안 빼곡한 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교황이 매일 세월호 유가족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의미는 무엇일까. 16일자 <경향신문> 2면 기사에서 교황방한준비위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교황의 일정을 보면 알겠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따로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고 행동 자체가 큰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신부는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의 설명처럼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그분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서로 지혜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말했다.

▲ 8월 15일 MBC <뉴스데스크> ⓒMBC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교황의 위로, 16초로 전달 끝낸 MBC

방한 일정 동안 매일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교황의 행보에서 읽히는 바는 분명하다. 약자와 상처받은 이들을 사회가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앞세우고도 대체 왜 이별해야 했는지 알 수 없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부모와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십자가를 짊어진 채 900㎞ 순례하면서 진실 규명을 외치게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MBC <뉴스데스크>에서 교황의 이런 메시지는 읽히지 않는다. 15일 MBC <뉴스데스크> 8번째 리포트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참사 위로·청년에 희망 메시지>에서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자신 방으로 불러 위로한 뒤 묵주를 선물했고 가족들이 전해준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아픔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교황의 기도 내용을 짧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체 1분 50초 분량의 해당 리포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한 교황의 위로는 16초로 짧게 전달된 게 전부였다. 유가족들이 전달한 세월호 십자가를 교황이 로마 교황청에 가져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나, 유가족들이 교황으로부터 받은 위로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는 해당 리포트에서 “아시아 각국에서 몰려온 청년신자 6000여명이 교황을 상대로 선교와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고” 교황의 저녁 식사 메뉴가 “자신의 고향 아르헨티나 전통음식과 비슷한 참나무 숯불갈비”였다는 소식을 이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MBC <뉴스데스크>는 <낮은 행보의 교황, 대중 속으로…시민과 격의 없는 소통>, <값싼 시계에 낡은 십자가 목걸이…‘단벌신사’ 교황, 장신구도 소박> 등의 리포트를 통해 교황의 소탈하고 검소한 면모를 전한 뒤 <광화문 광장 ‘시복식’ 준비 완료…100만 인파 운집할 듯> 리포트로 16일 일정에 대한 소개로 이날 교황에 대한 뉴스를 마무리했다.

교황의 소탈한 파격 행보 등에 집중한 건 MBC <뉴스데스크>만이 아니다. KBS와 SBS 등 다른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들 역시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주목했다. 하지만 KBS와 SBS에 있어 교황의 이런 면모를 전하는 건 세월호 유족에 대한 교황의 위로를 자세히 전한 뒤였다. MBC <뉴스데스크>와의 차이점이다.

KBS <뉴스9>는 교황의 대축일 미사 내용을 7번째 리포트에서 전한 뒤 이어 <세월호 유족 “교황님께서 안아주고 들어줬다”> 리포트를 통해 유가족들이 교황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고, 교황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달했다. 유가족들이 전달한 세월호 십자가를 로마 교황청에 가져가겠다는 교황의 의지 또한 KBS <뉴스9>에선 소개됐다.

SBS <8뉴스>도 3번째 리포트 <교황 “세월호 십자가 로마 교황청에 가져가겠다”>에서 “가족들은 교황에게 세월호 도보순례단이 가져온 십자가와 노란 리본을 전달하며 남은 10명의 실종자에 대한 기도와,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가족들이 준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기도로 화답했다”고 전했다.

▲ 8월 15일 SBS <8뉴스> ⓒSBS
“참사 122일 만에 처음으로 존중받은 경험”이라는 유족의 말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외면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매달 발표하고 있는 ‘이달의 나쁜 방송보도’에도 MBC <뉴스데스크>가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지난 12일 민언련은 지난 7월 한 달 동안 MBC <뉴스데스크>의 세월호 특별법 관련 보도를 ‘이달의 나쁜 방송보도’로 선정했는데, 보도량에서부터 다른 방송들과 차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고의적인 왜곡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유였다. 

16일자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교황의 위로를 들은 유가족들의 소감이 실렸다.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교황이)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신 걸 보니 ‘우리랑 한 가족이구나’ 싶었다. 이분이 우리를 알아주시는구나, 말할 수 없이 감동했다”(8월 16일 <한겨레> 3면)고 말했고, 단원고 학생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는 “참사 122일 만에 처음으로 존중받은 경험이었다”(8월 16일 <경향신문> 3면)이라고 말했다. 

자식을, 가족을 앞세운 참사의 이유를 명명백백 밝혀 달라고,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위해 유가족들이 한뎃잠을 자고, 곡기를 끊고, 900㎞ 길을 십자가를 메고 걸었지만 MBC를 포함한 일부 언론들은 7·30 재·보선에서 야당이 참패하자 “이제는 슬픔을 딛고 미래로 나갈 때”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부·여당이 세월호 정국의 종료를 강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렇기에 MBC는 교황을 만난 세월호 유가족의 입에서 “참사 122일 만에 처음으로 존중받는 경험”이라는 말을, 매일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교황 행보의 의미를 짚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교황이 말과 행동으로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간략하게 전달만 하는 뉴스의 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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