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프란치스코 외치며 ‘세월호 건너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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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교황 메시지 오독 혹은 오도하는 언론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교황은 이어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한 뒤 “(이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방한 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간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가 ‘교황앓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로 대표되는 사회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교황이 던진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의 말이나 평화와 정의에 대한 화두는 커다란 울림으로 남았고, 이는 한국 사회의 결핍된 공간을 돌아보게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방송·언론들도 교황이 남긴 메시지에 주목하며 성찰의 지점을 찾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교황이 지난 5일 동안 말과 행동으로 보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보도 역시 눈에 띈다.

이 중 적잖게 마주할 수 있는 건 바로 ‘세월호 건너뛰기’ 보도다. 지상파 방송 중에선 MBC가 두드러졌다. MBC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식장으로 가던 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단식 중인 김영오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한 모습을 누락한 것이다.

▲ 단식 36일째를 맞은 세월호 유족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교황 이한에 즈음한 유민아빠의 입장표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김영오 씨는 방한 기간 중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를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했다. ⓒ연합뉴스
이날 MBC의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는 시복미사를 포함해 교황 관련 소식을 여섯 개의 리포트로 전했다. 교황의 다양한 언어 구사력부터 시복미사 후 광화문광장을 깨끗이 청소한 시민의식에 대한 찬사까지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소개한 교황 관련 소식은 여럿이었지만, 이날 주목받은 장면 중 하나였던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만남은 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KBS <뉴스9>와 SBS <8뉴스>가 각각 여섯 번째와 두 번째에 관련 소식을 단독 리포트로 전한 것과도 비교되는 모습이다.

<뉴스데스크>의 이런 모습은 교황 방한 기간 내내 눈에 띄었는데, 지난 18일 교황이 한국을 떠나기 전 진도 팽목항의 세월호 참사 실종자 10인의 가족 앞으로 편지를 남기며 끝까지 소외되고 낮은 곳에 위로를 전한 것도 보도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뉴스데스크>가 이날 보도한 “굿바이 파파…행동이 곧 ‘메시지’였던 교황의 4박 5일 정리”라는 제목의 리포트는 “평화는 ‘정의의 결과’”, “깨어 있으라” 등 교황의 어록과 일정을 피상적으로 ‘정리’하는데 그쳤다.

같은 날 JTBC <뉴스9>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버림받은 장애인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까지, 교황은 낮은 곳을 향해 두 팔을 벌렸고 그런 교황의 리더십에 천주교 신자든 아니든 환호했다”며 “교황은 우리 사회 문제의 근원이 소통 부재에 있다는 걸 꿰뚫어 봤지만 교황이 던진 화두를 풀어가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한 것과 차이가 있다.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교황이 방한 기간 내내, 한국을 떠나면서도 마음에서 놓지 않았던 ‘세월호’라는 열쇳말에 대한 건너뛰기는 MBC만이 아니라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7·30 재·보선 이후로 ‘탈(脫) 세월호’를 강조했던 언론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교황 방한 사흘째 날이었던 지난 16일 주요 아침신문들의 1면 기사와 사진들이 주목한 장면은 전날이었던 지난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이 가슴에 세월호 참사 가족들로부터 받은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날 미사에 앞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유가족들을 만난 교황은 이들을 위로했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교황은 또 강론에서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길 빈다”고 했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그리하여 304명을 어이없이 죽음으로 내몬 세월호 참사는 안전보다 탐욕이 우선하는, 무자비한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그대로 드러내는 단면일 것이다.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라는, 간결하지만 단호한 행동을 요구하는 교황의 메시지가 울림으로 남는 이유다.

이는 “파파의 노란 리본 세월호 눈물 닦다”(<한국일보> 1면), “노란 리본 단 파파, 고통받는 한국을 위로하다”(<서울신문> 1면), “노란 리본 단 교황, 세월호로 고통받는 이들 위해 기도”(<한겨레> 1면) 등 대부분의 아침신문들에서 교황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과 그 의미에 주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중앙·동아일보는 1면에서 어린 아이에게 입 맞추는 교황의 모습, 시민들의 환호 속에 퍼레이드를 하는 교황의 모습, 아시아 청년들을 만나 셀카를 찍는 교황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내보내고 노란 리본에 대한 부분은 기사 안에서 짧게 언급만 하는 데 그쳤다.

방한 일정 내내 세월호 유가족들을 챙긴 교황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해석될까 우려하는 글도 중앙·동아일보엔 실렸다. <중앙일보>는 18일자 신문 30면에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기명 칼럼(“교황까지 편 가르는 두 개의 시선”)에서 “보수신문들에는 교황과 박근혜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따뜻한 시선으로 맞거나 손을 맞잡는 장면이다. 반면 진보신문들은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 박 대통령은 교황 옆에 가려 있거나 찾아보기 어렵다. 중립적인 신문엔 교황만 등장했다”고 문제 삼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교황의 위로를 정치적으로 읽지 말라는 의미로, 해당 칼럼은 “그(교황)는 (방한 기간 동안)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집중했으며 AYD엔 개막식과 폐막식 모두 참석했다. 이번 방한 목적이 아시아의 교세확장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팬서비스 차원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에 따라 저마다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19일자 신문 31면 사설에서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벌써 교황의 순수한 배려와 위로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정치사회적 대립이 심해질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또 “어제(8월 18일) 교황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만나 ‘서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자’며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며 “교황이 떠난 자리에 뿌려진 화해와 평화의 씨앗을 울창한 숲으로 키우는 일, 우리에게 남겨진 선물이자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교황의 메시지가 화해와 평화임을 강조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을 경계하는 사설이다. 하지만 교황이 강조한 화해는 무조건적인 게 아니다. 방한 첫 날 교황이 강조한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는 말에서, 그리고 방한 기간 동안 가장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곳에 대해 시선을 거두지 않은 것에서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교황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에 집중하자고 말하고 있는 이들 방송·언론이야말로 그 메시지의 의미를 오독한 것인지, 혹은 오도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반문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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