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신문’의 맥락 없이 ‘의도’만 가득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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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미디어]조선, ‘유민아빠’ 주치의 정치색이 문제?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은 끝났지만 <조선일보>의 ‘덧칠’ 작업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단식 막판 <조선일보>는 김씨가 이혼 이후 고(故) 유민양과 동생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며 ‘부모자격’ 논란을 제기하고, 금속노조 조합원임을 맥락 없이 강조함으로써 행간 곳곳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의 의미를 의도적인 것으로 읽히도록 하기 위한 양념을 뿌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주치의도 타깃이 됐다.

<조선일보>는 29일자 신문 4면 하단에 <김영오 주치의는 前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기사의 도입부는 왜 김씨가 광화문 농성장에서 가까운 강북삼성병원이 아닌 동대문에 위치한 동부병원으로 이송됐는지에 대한 세월호가족대책위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김씨가 단식하는 동안 건강 상태를 체크해준 이보라 내과과장이 있는 병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굳이 경찰에 이유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보라 과장의 정치색이 세월호 집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단체들과 맞아 김씨가 동부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이미 가족대책위에서 김씨를 동부병원으로 이송한 이유에 대해 주치의가 있는 병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조선일보>는 왜 김씨의 보호자도 아니고 어떤 관계도 없는 경찰에 굳이 동부병원으로의 이송 이유를 물었을까.

▲ 8월 29일 <조선일보> 4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라면 환자에 대한 진찰 혹은 치료기록이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게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통상의 모습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될 때 보호자(혹은 환자 본인)가 ‘평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니 그쪽으로 가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장면이나, 사고현장에 있던 의사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자신이 소속된 병원으로 가자고 하는 장면을 <조선일보>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걸까.

이어진 기사를 읽어보면 그건 아닌 듯 보인다. “이보라 과장의 정치색이 세월호 집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단체들과 맞아서”라는 경찰 답변에 이어진 내용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 과장은 2012년 통합진보당 서울 마포구갑 부위원장에 당선됐던 전 통진당 대의원이다. 이 과장의 페이스북엔 통진당 이정희 대표의 대형 걸개 사진 앞에서 2011년에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서울동부병원 김경일 원장도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병원 관계자는 ‘김 원장이 2011년 부임하고 나서 민주노총 간부와 좌파 인사들을 강사로 초빙해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진보 강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대체 <조선일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일까. 특정 정당에 속했던 이력이 있는 의사를 주치의로 두고 있는 환자의 행위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특정 정당에 속했던 이력이 있는 의사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환자의 주치의어선 안 된다? 합법 노조임에도 민주노총 간부 등을 강사로 초빙해 강연회를 열었던 병원장의 병원엔 세월호 유가족의 입원은 안 된다?

만약 일련의 질문들에 “아니다”라고 답한다면, <조선일보>는 설명을 해야 한다. 주치의가 속한 병원으로 김영오씨가 이송된 것이 왜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또 주치의의 과거 정당 활동 이력에 따라 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 제한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말이다. 그도 아니라면 김영오씨 주치의의 과거 정당 활동 이력을 ‘굳이’ 별도의 기사로 배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 마지막 문단 또한 마찬가지다. “동부병원은 작년 병원 리모델링을 하며 지금 김영오씨가 입원해 있는 VIP 병실을 만들었다. 당시 병원 직원들은 ‘시립병원에 VIP 병실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발했지만 묵살됐다.” 기사 속 필요없는 문장은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배웠다. 일등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이런 기본을 모를리 없을 터다. 그렇기에 <조선일보>에서 김영오씨가 입원해 있는 VIP 병실을 만들 당시 직원들이 반발했다는 내용을 ‘굳이’ 기사에 포함시킨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다보면 ‘굳이’, ‘왜’ 이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더구나 그간 <조선일보>에서 앞장서 알려왔던 ‘유민아빠’의 부모자격 논란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동참한 시민단체들을 향해 ‘시위꾼’이라고 규정했던 보도들이 겹치며 ‘이유’가 아닌 다른 게 읽힌다. <조선일보>가 유민아빠의 단식에, 그의 단식에 눈물로 동참했던 이들을 향해 행간에서 뿌려왔던 ‘의도’라는 양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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