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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단체 “불공정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 결국 사후 검열” 반발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등의 발언이 담긴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영상을 보도한 KBS <뉴스9>(6월 11일 방송)에 중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지난달 27일 개최한 방송심의소위원회(이하 방송소위)에서 <뉴스9>의 해당 보도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등의 조항 위반을 주장하며 법정제재인 ‘관계자 징계’(벌점 4점)를 다수 의견으로 오는 4일 예정된 전체회의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계 안팎에선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보도에 대해서까지 방심위가 기계적 균형이란 잣대를 앞세워 중징계를 하는 것은 방송심의와 관련한 최근의 법원 판결과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후 심의를 사실상 ‘검열’로 기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5인의 위원이 참여하는 방송소위에서 여권 추천 위원 3인은 <뉴스9>의 보도에 대해 “‘일제 식민지는 하나님 뜻’이라는 보도만 보면 (문 후보자가) 친일파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강연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대석 위원), “청문회에서 답하겠다는 문 전 후보자의 발언만 실은 보도는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것”(함귀용 위원) 등의 이유로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1·2항과 제14조(객관성) 위반을 주장했다.

▲ 한국PD연합회와 언론노조 등 8개 언론·시민단체가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문창극 보도 심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이날 방송소위에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한 제작진이 “보도는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는 게 아니다. 공직후보자로서의 모든 발언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문 전 후보자의 공보 담당을 통해 5~6회 연락을 취했고 전화 또는 문자로라도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야권 추천 위원 2인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역사관을 검증하는 보도에 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장낙인 상임위원), “언론의 역할이 ‘감시견’ 기능인데 그 부분을 심의한다는 것은 모순”(박신서 위원) 등 ‘문제없음’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송소위의 일련의 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6개 언론단체에서 구성한 방송심의감시단은 “방심위가 사실상 사후 검열기구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방송심의감시단은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방심위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일방적으로 전한 TV조선 보도들에 고위공직자 검증이라는 공익적 취지 아래 방송됐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가장 낮은 수위의 행정제재인 ‘의견제시’와 ‘문제없음’ 등의 결론을 내린 사례를 언급하며 “KBS <뉴스9> 보도에 대한 심의 결과와 비교할 때 누가 봐도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심위의 일련의 불공정한 보도 공정성 심의에 대해 “방심위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방송의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의를 하는 게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여당에 충성하기 위해 ‘검열’을 하고 있다”고 방송심의감시단은 비판했다.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해법으로 2기 방심위원을 지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진행한 ‘표현의 자유’ 연속 특강에서 지난 5월 대법원이 CBS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해 공정성 등의 위반을 이유로 내린 ‘주의’ 처분의 취소를 결정하며 밝힌 사유를 준용해 방송법 등의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법원은 정부의 부동산·금융·축산 정책 등을 비판하는 출연자 발언을 방송한 <김미화의 여러분>에 대해 방심위가 내린 중징계 처분 취소를 결정하며 “정부는 자신의 입장을 홍보할 여러 통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실질적 균형’을 맞추면 되는 것이지 공정성이 ‘산술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는 취지의 사유를 제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례를 준용, 방송 공정성 심의의 근거가 되는 방송법 제32조(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 심의)에 ‘정부와 산하기관, 국회 다수당이 시행하거나 시행을 추진하는 조치, 처분, 제도,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정부와 산하기관, 국회 다수당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않은 것은 공정성 위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단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련의 방송법 개정을 통해 방송심의규정 제9조 2항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방송에 대해 심의를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징계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는 조항을 마련하는 방향으로의 방송심의규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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