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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담아낸 ‘쌀집 아저씨’ 김영희

[정치와 예능] ② ‘스타 PD’ 삼대(三代) 김영희 PD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 MBC PD)l승인2014.09.05 11: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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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예능, 시너지는 가능한가?

TV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다. 현장 취재를 통해 여론을 일깨우는 활동은 과거엔 주로 기자와 시사교양 PD의 몫이었지만, 예능 PD들도 얼마든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표현의 자유가 피어났고, 예능 PD들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오늘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뤘고,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정치인들의 모든 행위는 TV 카메라 앞에서 이뤄진다. 선거 개표방송과 ‘대통령과의 대화’ 등 정치 이벤트를 쇼 프로그램처럼 만드는 게 대세다. 정치와 예능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실제 행동이 TV 속 이미지와 어긋나는 게 일상화되어 정치 냉소주의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예능과 정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탤 책임이 있다.

‘정치의 예능화’와 ‘예능의 정치화’, 어떻게 볼 것인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예능과 정치가 생산적인 시너지를 이룰 전망을 찾아본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이론과 실제>(정치커뮤니케이션 학회 발행)에 실린 글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스타 PD’ 삼대(三代) - (1) 송창의 PD (☞ 기사읽기)
2. ‘스타 PD’ 삼대(三代) - (2) 김영희 PD
3. ‘스타 PD’ 삼대(三代) - (3) 김태호 PD
4. 정치와 예능의 만남, 그 명암(明暗) - (1) 서수민 PD
5. 정치와 예능의 만남, 그 명암(明暗) - (2) ‘폴리테이너’와 ‘정치예능’
6. 연재를 마치면서 : 정치와 예능, 그 융합의 ‘무한도전’


  ▲ 김영희 MBC PD ⓒMBC  
▲ 김영희 MBC PD ⓒMBC
 “오락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을 흑백으로 나누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20세기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와 교양의 이분법적 분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김영희 PD 인터뷰, PD저널, 2001. 11. 2)

김영희 PD는 <!느낌표>를 통해 ‘공영적 오락’을 선보였고, 교양과 예능 두 장르의 벽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예능 PD들은 과거 교양 프로그램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소재들을 과감하게 건드렸고, 시사교양 PD들도 이에 자극을 받아 취재에 예능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장르 파괴를 시도했고, 전통적인 장르 구분을 고집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태도로 여겨졌다. 교양의 예능화, 예능의 교양화가 낳은 새로운 트렌드를 방송가에서는 ‘쇼양’, ‘에듀테인멘트’라 불렀다. 송창의 PD가 90년대 예능의 흐름을 이끌었다면 김영희 PD의 새로운 실험은 21세기 트렌드의 문을 활짝 열었다.

“<!느낌표>는 21세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을 주요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다. 환경, 청소년, 노인, 책 등을 주요 아이템으로 다룰 것인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오락프로그램에서 이런 문제들을 거창한 담론을 끌어들여 설파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지름길이다. 작고 사소한 문제로부터 진지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같은 인터뷰)

김영희 PD의 <!느낌표>는 정치를 포함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공감’과 ‘소통’의 어젠다를 누구보다 먼저 제기했다. 그가 아이디어를 낸 ‘칭찬합시다’는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됐고, ‘신동엽의 하자하자’는 교육 현장의 개혁을 촉발했고, ‘아시아, 아시아’는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김 PD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통일에 기여할 꿈도 꾸었다. 내친김에 ‘기적의 도서관’을 북한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는 프로그램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쳤고, 변화하는 현실을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도록 소통과 공감을 확산시킨 그의 연출 행보는 현실 정치가 추구해야 할 따뜻한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프로그램은 정치인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느낌표> 제작진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는데, 김영희 PD는 오찬을 사양하고 노 대통령의 프로그램 참여를 요청하여 성사시켰다. 김 PD는 “프로그램의 코너 모두가 국가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해 대통령과 각 코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포맷을 정했다”며 “메시지가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꼴찌도 살맛나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격려는 정작 제작진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확답을 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김 PD는 “오락 프로그램이 가지는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라고 대답했다(PD저널, 2003. 7. 23).

이 프로그램에서 김 PD는 연출을 했고, 노 대통령은 정치를 했지만, 연출과 정치의 경계는 무의미했다.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일을 했을 뿐이지만, 정치와 예능이 만나서 시너지를 이룬 좋은 사례였다. 김 PD의 의지는 정치와 예능의 경계선에 닿았지만, 그는 PD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았다. 2003년 <!느낌표>로 방송대상 TV 프로듀서상을 받은 그는 2005년 MBC 예능국장을 맡으면서 대중들의 시야에서 조금 멀어졌고,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기 시작할 때 한국방송PD연합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볼 때 PD는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라디오, 편성, 스포츠 등 각 분야로 분산된 기술자”가 아니라 ‘연대하는 장인’으로서 뭉쳐야 했다. PD연합회 취임사에 그의 PD관이 응축되어 있다.

“제작현장에서 갖는 치열한 고민들이 하나씩 둘씩 모아져서 거대한 강물을 만들어 내고, 그 강물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담아낼 때 우리들은 비로소 기술자가 아니라 장인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회를 중심으로 강철같이 뭉칠 때, PD들은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위상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PD저널, 2008. 7. 23)

그는 2009년 침체에 빠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살려내는 특명을 받고 제작 현장에 돌아와 ‘공익적 웃음’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취향은 더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새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일밤〉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가 성공시켜 온 ‘공익적 예능’과 큰 틀에서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평을 받았고 “<!느낌표〉‘시즌3’ 같다”(PD저널, 2009. 12. 7)는 지적과 함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는 데 실패했다.

  ▲ 공익성을 표방한 느낌표 ⓒ홈페이지 캡처  
▲ 공익성을 표방한 느낌표 ⓒ홈페이지 캡처
김 PD는 특유의 장인정신을 살려 <나는 가수다>를 히트시켰다. ‘김건모 파동’은 그의 PD 경력에서 뼈아픈 대목으로 남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가수 김건모가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자 고심 끝에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고, 그게 문제가 되어 연출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는 2013년 MBC 사장에 도전하여 실패했지만, 그 뒤 현역 PD로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의 중국판 자문을 맡는 등 한류 수출의 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소탈한 외모와 어눌한 말투로 ‘쌀집 아저씨’란 별명을 얻은 김영희 PD는 대중, 특히 청소년의 사랑을 받은 최초의 ‘스타 PD’일 것이다. 그의 치열한 장인정신은 예능과 교양의 벽을 무너뜨렸고, 강퍅한 시대의 현실과 마주쳤고, 예능과 정치가 만나 시너지를 이룬 훌륭한 선례를 보여주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일이 필요하며 가능하다는 점을 그가 스스로 의식하고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가 열어놓은 21세기 예능 프로그램의 새 지평은 다시 축소되는 일이 없겠지만, 예능의 트렌드는 그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 이 글은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이론과 실제>(정치커뮤니케이션 학회 발행)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엮은 것입니다.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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