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취재기자 45.9% 트라우마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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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270명 대상 조사, “유가족 접촉 기자가 외상 심해”

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언론인 절반 가량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실종자 구조와 수색을 취재한 경우보다 유가족들을 접촉한 경우 외상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나 유가족에 대한 감정 이입과 취재 거부 경험 등이 심리적 외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숙명여대 배정근·하은혜·이미나 교수 연구팀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을 대상으로 외상성 사건 노출, 사건충격 척도 등을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한 270명 가운데 124명(45.9%)이 PTSD 판정이 가능한 수준의 심각한 외상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참사를 취재한 기자들의 트라우마를 실증적으로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PTSD는 외상성 사건을 경험한 이후 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침습(reexperience), 회피(avoidance) 및 반응 마비(numbling), 과각성(hyperarousal) 등 세가지 주요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 세월호 취재 기자의 외상 증상 조사 결과.
연구팀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취재를 겪지 않은 취재기자와 비교했을 때 과각성과 회피, 침습 수면정애 등의 이상 증상의 척도로 구성된 사건충격척도(IES)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세월호 취재집단’의 평균 IES 총점은 25.29점으로 ‘세월호 비취재집단’의 IES 총점 20.23점보다 높았다. 과각성, 수면장애 등의 척도에서도 세월호 참사 취재기자들의 점수가 비교집단보다 더 높게 나왔다.

또 유가족을 주로 취재한 기자들이 실종자 구조와 수색 등을 맡아 취재한 기자보다 외상 증상이 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유가족을 접촉했던 기자들의 IES 점수는 27.07점, 구조와 수색 작업을 취재했던 기자그룹은 21.43점, 정부 대응과 검찰 수사 등을 맡은 비현장 취재그룹 은 25.34점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대형 참사를 겪은 기자들의 트라우마를 연구한 선행조사에서 기자가 현장에서 참혹한 장면을 목격한 경우 외상이 심할 것이라는 가정을 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연구팀은 “현장이 바다 한가운데라서 참혹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도 “유가족의 비통한 모습과 사연을 취재하면서 연민과 감정이입 같은 감정적 요인이 더 영향을 미쳤다는 추론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취재기자의 직업관과 외상과의 상관관계를 살핀 조사에서는 ‘기자는 강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거나 자신을 사건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는 직업관을 갖은 기자들이 오히려 외적 증상이 심한 것으로 나왔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를 통해 세월호 취재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강렬한 슬픔, 분노, 충격, 좌절감, 죄의식을 느겼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는 기자들 자신이 취재하는 사건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객관주의 보도원칙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나 교수는 “기자들도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 될 수 있는 직업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기자들의 독특한 직업관의 직업 환경에서 벗어나는 게 저널리즘과 취재윤리의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세월호 참사 취재 집단 270명과 비취재 집단 97명을 대상으로 세월호가 침몰한지 한달이 지난 5월 중순부터 한달간 진행됐다. 한국기자협회와 사진가자협회, 방송카메라기자협회 등 3개 언론 직능단체를 통해 설문을 배포하고 수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언론직능단체를 통한 편의적 표집으로 인한 한계가 있지만 후속 연구를 디딤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오는 12일 열리는 ‘재난보도와 트라우마 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화와 방송기자연합회 재난보도 연구분과가 주최한 세미나로 방송회관 3층 회의장에서 오호 2시부터 열린다.

이날 세미나에선 세월호 취재기자의 트라우마 이외에 ’언론의 취재보도 관행과 심리적 외상 피해자‘(이정애 SBS 기자) , ’임상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세월호 참사 취재기자의 외상성 증상‘(하은혜 숙명여대 교수), ’언론인의 외상성 사건 경험의 대처‘(이미나 숙명여대 교수)의 주제발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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