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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대중은, 사람은, 이상과 현실에서 늘 갈등한다. 정치사회라는 거시적 범주에서부터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를 고르는 일상적 범주까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 중 어느 쪽에 좀 더 방점을 찍을 것이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게 물적, 정신적 ‘여유’다. 여유가 있으면 좀 더 도전적(과감한) 선택을 하게 되고, 여유가 없으면 안전한(수세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여유가 없음에도 도전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전제가 붙는 것이지 즉자적으로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선택은 아니다. ‘의지’라는 것을 통해 극복해내는 건 일반적인 선택의 ‘경향’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물적, 정신적 여유는 오롯이 내적인 힘만이 아니라 주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판단되어지는 ‘자신의 처지’에 크게 좌우된다. 내가 주위와 비교해 그다지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 때, 나아가 현재는 부족하더라도 노력하면 미래에는 충분히 만회 가능하다고 생각이 될 때 사람들은 ‘여유’를 갖게 되고 이는 도전적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 고속성장기에 체감했던 경제적 성장, 그리고 계층 상승이 비교적 가능했던 시절에 미래에 대해 품었던 설렘과 희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 상태에서 체감되어지는 건 양극화와 그로 인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극도의 ‘불평등’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와 비교해 스스로를 매우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노력을 해봤자 그 처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이건 저소득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중산층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데, 실제로 중산층 규모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고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중산층 귀속의식은 심지어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낮은 상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살기 힘들어 죽겠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빠질 것 같다는 게 대중들이 체감하는 사회 현실이란 뜻이다. 전자가 흔히 ‘경기가 나쁘다’라는 걸로 표현되어진다면, 후자는 계층 간 이동이 꽉 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만 보면 과거에 비해 현재의 경제 수준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고속성장기에 체감했던 경제적 성장, 그리고 계층 상승이 비교적 가능했던(흔히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표현되는) 시절에 미래에 대해 품었던 설렘과 희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체감되어지는 건 빈익빈 부익부와, 양극화와 그로 인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극도의 ‘불평등’이다.

그래서 취업에 허덕이는 젊은층은 386 선배들을 향해 ‘그래도 그 땐 취업 기회가 있었잖아요!’라며 절규하고, 연일 구타사고로 장병들이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장노년층은 <진짜 사나이>를 보며 ‘그래도 군대는 평등하다’며 추억에 빠져든다. 한쪽에선 ‘변호인’을 보며 ‘만인 앞에 평등한 법’을 했던 전 노무현 대통령을 추억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공무원 연금 등 국민연금보다 더 받는 이들에 대해 적개심을 내비친다.

얼마 전 한 일본인 교수와의 세미나에서 ‘반지성의 시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일본 최저임금 수준이 ‘어디 우리나라와 같나’라는 의문과 함께 ‘반지성’이란 말은 우리 사회엔 너무 사치스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불평등의 시대를 해결해 내야할 주체인 정치권이 좌우파 이념 프레임에 허덕이는 걸 보며 깊은 한숨이 밀려왔다.

▲ 김진혁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특히 새정치연합의 우클릭 논란, 이상돈 교수 영입등을 지켜보면서 과연 대중들의 불평등에 대한 심각한 고통과 트라우마에 우클릭과 이상돈 교수가 얼마만큼의 직접적 연관성이 있을지 의아했다. 지난 대선 가장 큰 이슈였던 경제민주화를 통해 불평등에 대한 개선이 이미 시대적 요구사항이란 게 확인이 된 마당에 말이다. 한편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시대 정신은 격차해소’라고 밝히며 ‘격차해소 특위’를 구성했다고 하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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