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민 PD , 정치의 풍자 풍자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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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민 PD , 정치의 풍자 풍자의 정치
[정치와 예능 ④] 정치와 예능의 만남, 그 명암-서수민 PD
  •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전 MBC PD)
  • 승인 2014.09.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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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예능, 시너지는 가능한가

TV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다. 현장 취재를 통해 여론을 일깨우는 활동은 과거엔 주로 기자와 시사교양 PD의 몫이었지만, 예능 PD들도 얼마든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표현의 자유가 피어났고, 예능 PD들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오늘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뤘고,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정치인들의 모든 행위는 TV 카메라 앞에서 이뤄진다. 선거 개표방송과 ‘대통령과의 대화’ 등 정치 이벤트를 쇼 프로그램처럼 만드는 게 대세다. 정치와 예능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실제 행동이 TV 속 이미지와 어긋나는 게 일상화되어 정치 냉소주의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예능과 정치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탤 책임이 있다.

‘정치의 예능화’와 ‘예능의 정치화’, 어떻게 볼 것인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예능과 정치가 생산적인 시너지를 이룰 전망을 찾아본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이론과 실제>(정치커뮤니케이션 학회 발행)에 실린 글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스타 PD’ 삼대(三代) - (1) 송창의 PD ☞기사읽기
2. ‘스타 PD’ 삼대(三代) - (2) 김영희 PD ☞기사읽기
3. ‘스타 PD’ 삼대(三代) - (3) 김태호 PD ☞기사읽기
4. 정치와 예능의 만남, 그 명암(明暗) - (1) 서수민 PD
5. 정치와 예능의 만남, 그 명암(明暗) - (2) ‘폴리테이너’와 ‘정치예능’
6. 연재를 마치면서 : 정치와 예능, 그 융합의 ‘무한도전’  


▲ 서수민 KBS PD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역사는 무척 오래 됐다. 1999년, 개그맨 김미화는 연극처럼 방청객을 앞에 두고 진행하는 새 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KBS 본부장을 쫓아다녔다. “한 번 녹화해 보고 재미없으면 안 내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설득 끝에 9월 4일 첫 방송이 나갔고,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개콘>의 탄생이었다. 15년 동안 수많은 PD들이 거쳐 갔지만, 스타로 떠오른 사람은 2010년부터 연출을 맡은 서수민 PD였다.

“사람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꼭 무엇이 남아야 하나? 잘 차려 놓은 놀이공원에 와서 왜 현장학습을 하려 할까?” (서수민 ; 전규찬, 한국방송학회 세미나, 2000에서 재인용)

<개콘>를 보면 남는 게 있다. ‘닭치고’ 장면이 기억나서 킥킥 웃는다. ‘감사합니다’를 떠올리며 “가난하지만 웃으며 살아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개콘>을 보려고 일요일을 기다리고, 그 웃음으로 힘든 한 주일을 견딘다. “고오오~뤠?”, “궁금하면 500원!” “사람이 아니므니다” 등 <개콘>이 낳은 유행어는 지금도 거리에서 들려온다. <개콘>은 PD사회에서도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PD저널>이 선정하는 ‘오늘의 추천방송’에 가장 자주 올랐고, 서수민 PD는 2013년 PD연합회가 주는 올해의 PD상을 안았다.

코미디 PD들은 과거 “철학이 없는 웃음, 억지 웃음, 어처구니없는 웃음, 노는 꼴이 우스워서 결국 따라 웃게 되는 그런 웃음”(유경환, 방송위원회 토론회, 1988 ; 손병우 <풍자 바깥의 즐거움 - 텔레비전 코미디>, 한나래, 2002, p.34에서 재인용)이란 비판에 볼멘소리를 내야 했다. 코미디가 ‘바보상자’란 오명의 주범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 KBS의 오락 PD들은 “몸 팔아서 남동생(교양 프로그램) 학비 대주는 누나”라며 자조하곤 했다. 그런 시절은 영원히 갔다. 저질시비를 걸거나 비속어를 골라내는 고리타분한 집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뿐이다. “코미디가 웃음을 주지 않으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라는 대중들의 인정, “정치인의 위선을 속 시원히 풍자하는 프로그램은 코미디 뿐”이라는 언론의 칭찬 등 다양한 긍정적 평가 속에서 <개그콘서트>는 TV 코미디의 대표주자가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개그에서 한 동안 사라지기도 했다. “MB는 코미디 소재로는 재미없다”고 일부 제작진이 밝혔지만, <PD수첩>, <추적60분>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철퇴를 맞는 상황에서 코미디 PD들이 덩달아 위축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PD저널, 2009. 4. 21). 개그맨들은 소심한 PD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봉원은 “수신료를 징수하는 KBS는 의무적으로라도 서민적 정서가 녹아있는 풍자 코미디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학도는 “도전을 같이 할만한 PD가 없고, ‘저랑 같이 하실래요’하는 연기자도 없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한석은 “5공화국 당시에는 소재의 제약은 많았지만 ‘네로25시’ ‘변방의 북소리’ 등 사회 풍자개그가 넘쳐났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는 넘쳐나는데 정작 이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이는 코미디언의 연기력까지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개그맨이 이야기 하는 풍자개그>, PD저널, 2009. 4. 21) 

서수민 PD는 이 시점에 등장하여 <개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비결은 역시 거침없는 정치 풍자였다.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통령의 교회가 등장했고, 최근 신설한 ‘닭치고’에서 박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됐다. 7월 20일 방송분 중 “다같이 ‘근(根)의 공식’ 외워 보죠”란 대사에서 ‘근의 공식’은 ‘그네공식’으로 들린다. “다시는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도록 수업시간을 없애버리겠어요”란 교장 ‘꼬기오’의 말은 세월호 이후 해경을 없애버린 대통령을 풍자했다. 

  

6월 29일 방송분도 통렬하다. 뭔가 얘기하고 뒤돌아서면 딴소리하는 닭의 모습이 영락 없이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연상시킨다. “지난 일은 잊자”는 교훈(校訓)은 세월호 정국을 신속히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권력자의 본심을 비꼬고 있다. 양호선생님 ‘후다닭’이 등장, “배가 아프다”는 학생의 머리를 꽝 때린 뒤 “이제 배는 안 아프지?” 하는데,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여 상처를 덧나게 하는 청와대의 무능을 속 시원히 풍자했다. 시청자들은 “저래도 될까?” 조마조마 하면서도 <개콘>에 환호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최근 몇 년간 겪은 수난을 보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에 의구심이 든다. MBC 파업 당시 <개콘>은 “<무한도전>을 보고 싶다”고 방송했지만 <추적60분> 데스크는 이를 취재하지 못하게 했다. <PD저널>은 <개콘>만 못한 KBS 뉴스를 질타하기도 했다. “KBS 뉴스가 사학비리, 금융비리를 외면하고 기획보도 기능을 축소하는 동안 <개그콘서트>는 병역 비리, 쌀직불금 비리를 풍자했다.” (PD저널, 2008. 11. 3)

<PD수첩>의 앵커를 지낸 송일준 PD도 <개콘>을 즐겨 본다고 했다. 그는 <개콘>이 “중국 동포들을 가난하고 촌티나고 무식하고 덜떨어진 범죄자들로 전형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강자들의 위선에 대한 풍자, 규범과 억압에 대한 조롱과 야유, 그것이 긴 역사를 통해 발전해 온 코미디의 정신이고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씁쓸하게 한 마디 던진다. “요즘엔 코미디가 더 저널리즘 같지 않은가.” (송일준 <개그콘서트에 대한 단상>, PD저널, 2013. 7. 4)

대통령은 서 PD를 청와대에 초대하는 우호적 제스처를 보냈고, 서 PD는 이에 응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이 사실을 알리며 “<개콘>이 14년간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실패해도 되는’ 시스템”이라는 서 PD의 말을 인용했다. 서 PD의 청와대 방문에 대해 “창조경제가 개콘이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쿠키뉴스, 2013. 4. 18) 굳이 사시(斜視)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화와 소통의 네트워크가 어느 때보다 촘촘해진 요즘, 누가 어디 가서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는가?

서 PD는 이 시스템에선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며 “(자유가 있기 때문에) 박성광씨 같은 개그맨도 담당 PD가 못생겼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개콘>을 그냥 둠으로써 일종의 정치를 했고 서수민 PD는 이를 활용하여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려 노력한 셈인데, 이 또한 갈등과 타협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이론과 실제>(정치커뮤니케이션 학회 발행)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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