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벼랑 끝 모성애가 허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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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김원 대중문화평론가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아이를 택했던 한 엄마가 있다.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화가로도 성공했는데 어느 날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고국에 돌아온다. 이유는 단 하나, 13년 전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나 아들에게 ‘아빠’를 찾아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당연히’ 아들의 생부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다. MBC 주말연속극 <마마>의 설정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60년대식 ‘미워도 다시 한 번’ 류가 저절로 연상될 정도다. 그야말로 모성애의 지고지순함과 새로 발견된 부성애의 각성으로 인한 눈물의 홍수를 작심한 드라마일 것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별로 눈물이 안 난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오랜 세월 쌓인 겹겹의 비밀과 거짓말로 조마조마하기는 한데, 슬픔으로 빠져들기에는 현재의 설정들이 꽤나 복잡하다. 우선 주인공 한승희(송윤아 분)의 자체적 모순이 있다.

▲ MBC <마마>. ⓒMBC
그렇게 독립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해 부와 명성을 거머쥔 여성이 삶이 6개월 남았음을 알았을 때 갑자기 ‘1960년대’로 돌아간다는 게 설득력이 약하다. 한승희의 경력은 젊은 여성들이 멘토 삼을 만한데다, 혼자 힘으로 아들 그루(윤찬영 분)를 잘 키웠다는 사실은 부러운 일일 수 있다. 능력이 있어 ‘글로벌하게’ 자유롭고 멋지게 살았을 법한 여성이, 갑자기 비녀 꽂고 한복 입은 흑백TV 시절의 종부(宗婦) 스타일로 물러앉은 격이랄까.

 엄마의 사랑 속에 풍족하게 자랐을 성 싶던 잘생긴 아들은 돌연 ‘결손’과 ‘결핍’의 세월을 보낸 듯한 모자란 기억을 애써 연기해야 한다. 승희의 아이가 아들이고 옛 남자 태주(정준호 분)의 아이는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드라마의 모든 인물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와 연쇄 반응들은 가히 태풍에 가깝다. 이런 반응 또한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종갓집 스토리의 귀결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출생의 비밀과 병까지 숨긴 승희는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도록 ‘까칠한’ 작가로 살았다. ‘현대성’을 강조하느라 심지어 연하의 남자친구도 있다. 이렇게 2014년적인 장식은 고루 갖췄는데, 어쩐지 속은 그저 역할놀이 같다. 의외로 그루와 엄마의 사이는 별로 튼튼하지 않다. 따뜻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하다. 서먹하다. 아이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극단적 상황만을 힘겹게 살아내야 한다.

태주와 한 동네 살다 보니 그만 그의 아내 지은(문정희 분)과도 친구가 된다. 문제는 등장하는 여성들이 주체적이며 생활력 강하다 보니, 남자 주인공 태주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는 도구적 인물로 그친 듯하다. 결말이 뻔히 정해져 있다 보니 결국 태주는 극의 전개와 시청률을 위해 망가진 인물이 됐다. 외도를 저지르고 이 여자 저 여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미숙한 상태다.

시청자들도 신파를 편히 못 받아들일 테니, 극은 점점 우연에 기대고 진실이 발각될까 줄타기만 하게 된다. 차라리 과거의 관계가 모두 낱낱이 드러난 이후에, 이 난감한 현실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서로 위하는 과정을 정성껏 보여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게 애초의 의도와 부합할 듯하다. 이 상처 많은 사람들이 원망과 슬픔을 딛고 사랑으로 채워가는 일상이 섬세하게 그려져야 한다. 이제 엄마와 아들에겐 사랑할 시간도 얼마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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