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의 흥행세가 무섭다. 개봉 7주 차인 9월 22일 현재 250 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고, <메이즈 러너>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서운 뒷심이다. 24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지금은 225개 스크린으로 확장됐다. 293만 명을 기록한 <워낭소리>에 이어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 순위 2위인데 이 기록도 곧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긴 어게인>은 어떻게 이렇게 흥행할 수 있었을까. 일단 작품 내적으로 보면 화제가 되었던 <원스>를 잇는 영화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원스>는 한국 관객에게 음악영화에 대한 리터러시를 장착해 주었다. <비긴 어게인> 전에 코엔 형제가 만든 <인사이드 르윈>도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나름 선전했다.
영화 내적으로 보면 <비긴 어게인>의 두 주인공은 루저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니 음악천재’ ‘알고 보니 기획천재’였다. 마찬가지로 여기 출연한 배우들도 ‘알고 보니 유명배우’다. 여자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남자주인공 마크 러펄로는 <어벤져스>에 출연했다. 여주인공 옛 애인으로 등장하는 애덤 리바빈은 미국 록그룹 마룬5의 보컬로 요즘 최고의 팝스타로 꼽힌다. 비유하자면 다양성영화의 탈을 쓴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우회 상장이라 할 수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관객들의 자발적 홍보도 흥행 비결로 꼽힌다.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비긴 어게인>의 감상평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영화가 뒷심을 발휘하는데 있어 마케팅의 힘이 아닌 입소문의 힘이 절대적으로 컸다는 점이 특징이다.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비긴 어게인>의 흥행은 <워낭소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혹은 <색, 계>의 흥행과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 한 편 이상의 흥행 현상이 아니라 다양성 영화 전체의 흥행세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전반적으로 다양성 영화가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 10만 명 이상 관객이 든 다양성영화는 <로마 위드 러브> <지슬> <블루 재스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마지막 4중주> <일대종사> 6편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로마 위드 러브>에 18만 명 정도가 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9월22일 현재 10만 명 이상 관객이 든 다양성영화가 벌써 11편이다(<비긴 어게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신이 보낸 사람> <그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한공주>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도희야> <인사이드 르윈>). 지난해 최고 기록을 기록한 <로마 위드 러브>보다 관객이 더 많이 든 영화만도 7편이나 된다.
그동안 악전고투하며 버틴 서울과 지방의 다양성영화 상영관과 CJ의 무비꼴라쥬 등 다양성영화 지원프로젝트 그리고 정부의 다양성영화 지원정책이 조금이나마 성과를 거둔 것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 독점이 관행화 된 우리 영화계의 희망의 증거인 셈이다.
<비긴 어게인>을 특이한 사례로 보고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으로만 평가하면 다양성 영화가 새로 개척한 길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제2, 제3의 <비긴 어게인>이 나올 수 있는 길에 주목해야 한다. <비긴 어게인>의 흥행은 다양성영화를 살리려는 끈질긴 노력의 결과물로 봐줄 필요가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SNS를 통한 입소문이다. SNS를 통해 ‘이슈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졌듯이 ‘취향의 패자부활전’도 가능해졌다. <나는 꼼수다>를 발굴해 냈듯이 숨은 콘텐츠를 다중에게 노출시키는 새로운 채널이 되었다. 매스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문화 콘텐츠말고도 이제 대중이 함께 흥행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필요할 것은 미디어 보도 시스템과 영화 배급 시스템의 정비다. 다양성영화가 이런 조짐을 보였을 때 미디어가 함께 조명해주고 배급사가 유연한 개봉관 정책으로 스크린을 확대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다양성영화가 관객과 만날 기회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비긴 어게인>의 흥행을 특이한 현상으로 보고 흘려보내지 않고 그 흥행 메카니즘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